해녀공동체를 엿보다 3. 불턱 공동체 Ⅱ

특유의 집단 문화 바탕
수평적 삶의 가치 나눠
상·하군 등 능력 중심 위계질서
배려의 리더십으로 '신뢰' 쌓아
멘토링 기반 '배양 시스템' 주목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지)' 간난(艱難)한 해녀들의 삶을 한숨처럼 털어내던 말이 있었다. 세상이 바뀌고 그나마 사정은 나아졌다지만 간난의 정도만 달라졌을 뿐이다. 해녀들이 주목받는 것은 그런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는데 있다. 흔한 돌을 모아 얽기 설기 쌓아올린 불턱만 해도 그렇다. 보기에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민속지식 안에는 사회경제는 물론 정치, 복지 등 다양한 이론이 함축돼 있다.

#  살암시민 살아진다

이제는 유산으로 용도변경 수순을 밟고 있지만 '불턱'에서 해녀들은 젖은 옷과 언 몸만 말린 것이 아니다. 가슴 속 밑바닥 한(恨)도 꺼내 말렸다. 의지와 위로의 공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쉼터 개념으로 설명되는 불턱은 대개 바닷가의 오목한 곳에 돌담으로 사방을 막아 만들었다.

바다 작업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불을 쬐어 몸을 말리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동네 일'이 모이고, 갖가지 정보가 교환되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지역사회 안전망의 '플랫폼'기능을 했다. 물과 바람에 철저히 순응하면서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다 살게 된다)'는 철학을 새기고 전하는 공간이 됐다.

물질은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작업이다. 그 흔한 안전장비 하나 없이 바다에 뛰어든다. 바다에서는 함께 작업하는 '동료'가 유일무이한 보험이다. 적어도 둘 이상 작업을 나가야 한다는 철칙도 여기서 나왔다.

대상군부터 하군까지 나뉘었다고 하지만 이 것이 능력에 대한 인정이었을 뿐 상하 구분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수평적 삶의 가치를 나눴다.

'불턱'가는 길에는 누구든 손이 무거웠다. 현대식 탈의실이 생기기 이전에 질구덕에 태왁과 망사리, 비창, '호멩이' 등 물질 도구와 함께 불을 피울 '지들커'(땔감)를 가지고 갔다. 일종의 학습비다. 지들커를 많이 가지고 가면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었고, 지들커가 시원치 않았으면 쓴소리가 돌아왔다. 책임을 묻는 과정이다. 대신 물질 후 망사리가 가볍다고 뭐라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서툰 해녀의 망사리에 슬쩍 소라 따위를 보태준다.

# 알아서 체득한 민주주의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조건 아래 함께 작업을 하면서 해녀들이 만들어낸 것은 단순한 공동체 문화 이상이다.

그 중 하나가 '불턱 민주주의'다. 흔히 원탁회의(圓卓會議)라 부르는 것을 해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다. 참가자들이 서열 등에 집착하지 않고, 대등한 관계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위 공정한 소득배분의 원칙에 입각한 공동체의 규정에 기반을 둔다. 능력을 우선했지만 위계질서 역시 분명했다. 

단합과 헌신이 절실했던 해녀 공동체에 '대상군'이라는 리더는 솔선수범을 통해 완성된다. 예를 들어 잠수굿 등 큰일을 치를 때 상군이 앞서서 작업을 하고 일정 물량을 내놓는 등 역할을 맡는다. 갯닦기 등 공동작업에 있어서도 상군이라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들을 찬찬히 살피고 난 뒤 모두의 합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추대된다.

마을일 개인 일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의논하고 토론하고 모아진 의견을 실천에 옮긴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꾸려갔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을 알아서 체득했다.

# 선순화 구조의 모델로

에코페니미스트, 환경보호를 염두에 둔 지속가능경영자 같은 수식어도 '불턱'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불턱 시스템을 기업내 커뮤니케이션에 접목하라는 주문도 그래서 나온다.

모든 일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여기서 '휴식'이란 쉬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충전 기능이 있다. 해녀에게 대입해보면 불턱이 그런 역할을 했다.

상하 구분 없이 자유로운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신뢰를 쌓는 역할이 늘 먼저였다. 불턱을 덥히는 일은 순서가 아니라 먼저 일을 끝낸 해녀가 한다. '나 혼자만'은 없다. 작업 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죽이나 누룽지, 국수 같은 가벼운 음식을 챙기는 일도 누구나 한다.

조금 더 깊은 물에서 작업을 해도 되겠다는 판단도 불턱에서 받는다. 대상군일지라도 체력과 판단력이 저하됐다고 판단되면 내려오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 것이 전체 조직의 안전과 성과를 지키는 일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뒤로 물러난다고 해서 조직 기여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작업 등에 '삼촌'을 부르는 것으로 지식을 전승한다. '할망바다'도 있다. 일종의 선임자에 대한 배려다. 요즘 조직들에서 많이 요구되는 선순환 구조 중 하나다.

경영학 등에서는 이를 멘토링(조직 내에서 상급자(Mentor)와 하급자(Protege 또는 Protegee)간의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관계발전을 조정하거나 유지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지속가능한 해녀문화를 위해서는 이런 시스템이 충실하게 가동돼야 한다. 물론 제주라는 이름의 지역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장치다.

창작곡 발표 잇따라…무대용 아닌 활용 방안 주문도

"바다가 삶이고 바다가 생명이며 바다가 기쁨이요 희망인 여인들/숨비소리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제주 안현순 작곡가의 창작곡 '해녀의 길'이다. 악보에는 특별한 메모가 있다. '신비로운 바다 속의 모습을 그리며' '물숨에 대한 아픔을 생각하며 긴장감을 가지고' 등 다른 연주곡에는 볼 수 없는 주문에는 해녀에 대한 경외가 담겨있다.

'이어도 사나'하고 토하듯 풀어냈던 해녀들의 삶이 음악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합창총연합회 제주도지회 주최로 열린 '2016 제주창작합창페스티벌'에 이어 지난달 8년 만의 제주국제합창제 부활로 관심을 모았던 '2017 국제합창축제 앤 심포지엄'에서도 천상의 화음으로 빚어낸 해녀가 무대를 유영했다.

1971년 해녀노래가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될 때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해녀 노래라고 해봐야 고령의 해녀가 노젓는 소리를 주고 받으며 부르던 노동요인 까닭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문화의 서사성 측면에서 음악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 해녀노래에는 물질 작업에서부터 당시 사회현상, 문화 등이 반영됐다. 

지난 2013년 제주가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인 양방언과 소설가 현기영이 손을 잡고 만든 '신(新) 해녀노래'는 지나간 시간 보다 오늘을 살고 있는 해녀들의 목소리가 실렸다. 

그리고 지금 오선지에 오른 해녀는 '문화유산'이다. 해녀의 삶에 다양한 의미가 부여된다.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 그리고 존경까지 다양하다.

올해 제주국제관악제에도 '해녀'를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 기쁘나 걱정이 되는 것은 불리거나 듣지 못하는 음악은 장식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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