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산책 35. 파스칼 키냐르 「혀 끝에서 맴도는 이름」

타인과 어울려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 담긴 걸작
'말하기'보다 '드러내기' '나타내기'로 자아 확인

'나 혼자'의 시대

"이따금 엄마는 느닷없이 우리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셨다. 엄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선이 우리에게서 떠나 막연한 곳을 헤매었다. 침묵 속에서 엄마는 한 손을 들어 우리들 머리 위로 내밀었다. 어떤 단어를 찾고 계신 거였다. 갑자기 모든 게 정지했다. (중략) 이윽고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단어를 찾아내신 것이다"라며 파스칼 키냐르는 엄마의 모습을 묘사한다. 가끔 의도하지 않게 침묵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 있다. 어느 순간부터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기가 어렵다.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아 고민하다 결국 침묵해버리는 나를 보면, 단어 하나가 문장 전체를 좌우하고 말하기를 멈추게도 하는구나 싶어 멋쩍게 나이 탓을 한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같은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무엇인가 혼자 하는 일상에 익숙한 요즈음, 약속이 없는 날은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가끔 통화할 때만 말을 한다는 누군가의 인터뷰 기사를 보기도 한다. 믿기 힘들지만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젊은 세대가 침묵하고 있다. 혼자 살고, 입시를 위해 또는 취업을 위한 공부만을 외치다 보니 타의적으로 침묵하게 된다. 혹자는 말 많은 이미지가 싫고, 사람을 만나기보다 손가락만으로 가능한 소셜네트워킹서비스상의 대화가 더 편할 때가 많다고 자발적인 침묵을 선택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우리나라가 침묵해도 되는 사회가 된 것은 '나 혼자 문화'가 확산되고,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킹서비스 등에서의 만남이 훨씬 많고 수월함으로 인해 도리어 서로 만나서 소통하는 것이 어색하고 감정소모라고 생각하는 의식변화가 크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고집의 두려움

요즈음 학생들 사이에서는 친구들이 사용하는 미디어서비스를 같이 사용해야 소통이 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 이야기하고 마주보기보다 소통을 위해 각자의 침묵을 선택한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위해 소셜네트워킹서비스로 '친구'를 맺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서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이라 착각하고 행동하며, 파워유저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 의견에 함께 하지 않으면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경우를 너무도 쉽게 보니 더욱 침묵하게 된다.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노엘레-노이만은 인간에게는 '고립의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소수의 의견에 속한다고 느낄 때는 자신의 의견을 감춰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 침묵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생존, 철학적 사유

우리는 분명 소통하기를 원한다. 온라인상에 끝없이 자신의 일상을 글로 남기고 매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서 공개하는 것은 자신을 나타내고 소통하기를 원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그것의 목적이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나타낸다는 것의 의미가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인간적인 마주함, 소수의견의 침묵이 아닌 소통과 공감, 공동체의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다. 온라인상에서도 따뜻한 사람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무차별 공격, 책임 없는 말들의 남김이 아니라, 따뜻한 말들이 오고가는 곳이 되도록 사소한 것이라도 각자가 지킬 수 있는 것부터 찾고 노력할 때이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에서 작가는 '나는 생존을 위해서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썼던 이유는 글만이 침묵을 지키며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말을 거부하며 말하기, 말없이 말하기, 길목에 지켜 서서 결여된 단어를 기다리기, 독서하기, 글쓰기, 이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가끔 사람들은 사회적인 또는 개인적인 여러 이유로 침묵을 선택한다. 그 침묵의 순간 작가는 글쓰기, 독서하기 등이 침묵하는 방법이었다고 하니 참 새로운 접근이다. 어쩌면 이 책 자체가 작가에게는 침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제목만큼이나 표지가 인상적이었던 책이다. 표지로 이용된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 '노래하는 소년'의 모호한 눈빛과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입모양은 독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작가는 세 항목으로 나눠 이야기한다. 

첫 번째 '아이슬란드의 혹한'에서는 동화를 쓰게 된 배경을 말한다. 두 번째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은 동화이고, 마지막 '메두사에 관한 소론'은 두 번씩이나 실어증을 경험했던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사유를 들려준다. 

작가는 "인간의 얼굴을 한 메두사의 머리는 얼굴 없는 머리 중에서 특히 속이 빈 머리, 시선이 없고 말이 없고, 움직임이 없으며, 피골이 상접한 머리가 되지 않으려고 울부짖는다. 얼굴 없는 머리는 죽은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을 찾고 있는 여자의 앞면에는 더 이상 얼굴은 없다"라며 단어를 찾으려 정지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탈을 쓰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잃어버린 언어의 탐색보다는 침묵에 더 적합한 운명이라고 이야기하며 "음악이 내게는 그런 것이고, 글쓰기가 그런 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나'에 가까이 가는 기회

"혀끝에 있는 단어가 하나씩 죄다 종이 끝으로 옮겨질 만큼의 시간이 있으면 가능해진다. 그것은 글쓰기다. 글쓰기란 잃어버린 것의 시간을 취하기. (중략) 앞면은 얼굴을 되찾는다"라고 하는 본문의 내용은 작가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 한다.

"언어의 결여를 발견한 순간부터 나는 침묵 위로 떠오르는 진짜 단어들의 꿈을 발견한다. 진짜 단어들은 그것을 말하는 자를 욕망으로 떨게 하거나, 목소리를 터무니없이 쉬게 만들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게 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도 침묵 속에서 진짜 단어들을 발견하길 바란다. 각자가 어떤 이유에서 시작한 침묵일지 모르나 그 속에서 아파하고 정지해 있기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자신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분명한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침묵이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나만의 침묵의 방법을 찾아보자. 글쓰기, 독서, 음악듣기, 노래하기, 춤추기, 산책하기, 영화보기 등. 그래서 우리 모두 일상의 침묵이 건강하길 바란다.

■ 작가 소개

파스칼 키냐르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열기, 에마뉘엘 레비나스, 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 이 모두가 그의 작품 곳곳의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은밀한 생」 「로마의 테라스」 「세상의 모든 아침」 「음악 혐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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