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공동체를 엿보다 4. 불턱 공동체 Ⅲ

경험 중심 기술 사용하는
동료 집단의 '약속' 바탕
정보 공유로 해결방법 축적
공동체 의식 단단하게 묶어
다양한 접근통한 정체성 완성
학술적 확장으로 활용법 모색

"당신이 열등감 때문에 괴롭다면, 그것은 당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열등감에 괴로워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당신을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용기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말을 곱씹어 보면 '살암시믄 살아진다'는 해녀들의 충고가 새어나온다. '불턱'이라는 공간에서 응축된 특유의 공동체 문화가 단단해진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셀프 헬프 그룹 전형

'불턱 공동체'는 정신심리학 측면에서 접근하면 자조 모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어로 'self-help group'이라고 하는 자조모임은 말 그대로 스스로를 돕는 모임이란 뜻을 갖는다. 흔히 자조모임이라고 하면 알코올의존증 환자들의 금주를 돕는 그룹형 조직이나 도박 중독자들을 위한 단도박 모임과 우울증이나 각종 불안장애 치료를 위한 모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이혼이란 경험을 하거나 또 그 가족을 위한, 전쟁 또는 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자립을 돕거나 '가정위탁'이나 '입양' 등의 특별한 경험이 매개가 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이 만들어진다.

자조 모임의 목적은 정신적인 상처의 치유와 회원 간의 지지와 격려를 얻는데 있다. 어떠한 정치적인 이슈가 있거나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회적 지지'라는 효과에 반해 우리나라에는 이런 형태의 자조모임이 발달하지 못했다. 전통적 관습과 정서 때문에 개인이나 집안의 문제를 집 울타리 밖으로 내놓는 것을 가능한 숨기고, 안에서 해결을 하려고 했다.

해녀들에게 있어 '불턱'은 특별한 공간이다. '안의 일을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한다'는 기준이 있지만 그것은 부끄럽다거나 회피하는 것과는 다르다. 문제행동이나 상황을 통제 할 수 있는 경험 중심의 기술을 사용하는 동료집단의 약속과 같다.

# '동료애'의 산실

해녀 공동체에 있어 '동료애'는 목숨과 연결된다. 관련 자료를 수차례 뒤져봐도 물숨을 들이켜 목숨을 잃었다는 사연은 있어도 시기·질투나 외면으로 인한 사고는 없다. 있어도 곤경에 처한 동료 해녀를 돕다 함께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 정도다. 오랜 세월 나름의 공동체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불턱은 힘든 바다 작업을 전후해 해녀들에게 '안식'의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바다에 나가기 장비며 마음까지 채비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물질을 마치고 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감을 확인하는 장소다. 그 역할만 놓고 보면 무미건조한 '플랫폼'에 불과하다. 

매일같이는 아니지만 해녀들끼리 모여 앉아 끊임없이 정보를 공유하고 해결방법을 찾던 전통이 공동체를 단단하게 묶었다.

섬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바다에서 사고가 나거나 바깥물질 이후 마을 안에 다양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아내 자리가 바뀌거나 본처를 두고 심지어 같은 마을 내에 다른 살림을 차리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당장 너 죽고 나 죽자 싸워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 불턱 안에서 정리되곤 했다. 불턱 안에서는 남편 흉을 보고, 소리를 지르고, 울고, 싸워도 되지만 '가지고 나가지 마라'는 불문율이 있었고 또 지켜졌다.

힘든 바다 작업에 아이를 잃거나 또 출산 후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채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 고단함도 불턱 안에서 만큼은 이해받았다. 바다에서 가족이나 가까운 동료를 잃고도 다시 물질을 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실력이 뒤지거나 그날 머정이 좋지 않아 망사리가 비어도 "그럴 수도 있다. 다음엔 더 나아질 것"이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공간도 불턱 뿐이었다.

이런 상황은 바깥물질 과정에서도 살필 수 있다. 독도 물질을 갔던 해녀들이 고립과 우울증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도 집단생활을 하며 서로의 상태를 살피고, 역할을 부여했다.

사실 이렇게나마 풀고 해결하지 않았다면 '살암시믄…'의 주문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일이다.

# 자아 존중 특성 부각해야

이런 과정들은 '자조모임'의 그것과 100%에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인다.

자조모임의 특성을 보면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사실과 지식을 얻게 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상황에 대한 대처 기술을 학습 할 수 있다.

유사한 인생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서 동기와 지지를 획득하게 되며 집단 내에서 이뤄지는 성공적인 문제해결 행동을 모방 할 수 있다. 구성원 개인이 갖고 있는 문제 상황에 대한 지식이나 대처 기술 등에 관하여 집단 구성원들 간 공유와 상호 환류(feedback)를 통해 스스로의 변화를 쉽게 인식하고 평가하게 된다는 점도 닮았다.

개인과 모임을 동일시하고 구체적인 소속감을 확보함으로써 소외와 고립을 최소화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이타적(利他的) 관심과 상호 작용의 경험을 얻게 된다.

제주해녀문화에서 얻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이런 '자조모임'적 특성이다. 유사한 성격을 가진 타 지역이나 다른 나라의 그것에 한참 앞선 지식을 유네스코는 인정했다. 이를 물질기술의 세대간 전승이나 여성의 경제적 활동 인정이라는 일부로만 읽는다면 '정체성'이란 큰 틀을 완성할 수 없다.

다시 아들러의 심리학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제주해녀문화, 그 중 공동체성의 기반은 '자아 존중'에 있다. 제주해녀는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 성장 배경에 있는 근면성과 장인정신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 선택에 의해 삶을 결정했던 용기와 치유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해녀에 대한 연구나 접근 방식을 양성이나 자료 수집, 기록 등에서 여러 학문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해녀 꿈꾸는 여성들 전문 물질 배워봐요

한수풀·법환해녀학교 등
전문해녀 육성 강좌 열어

제주 해녀문화의 보전을 위한 전문해녀 양성이 추진된다.

제주시는 올해 1억7200만원을 투입해 한수풀해녀학교 운영 개선을 통해 전문해녀 양성을 강화한다.

그동안 한수풀 해녀학교는 단순한 수중체험과 레저 위주 해녀체험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실제 어장에서 수산물을 포획·채취 등은 경륜과 기술의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전문해녀 육성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교육진입로 등 기반시설을 확충, 교육생 이용불편과 안전을 도모한다.

또 한수풀 해녀학교 신규 해녀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수협을 통한 신규 가입을 추천 지원하고, 어촌유치 지원센터와 연계해 귀어·귀촌 컨설팅도 지원할 예정이다.

단순 카페 온라인 운영 홍보에서 한수풀 해녀학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전문인력(사무국장, 사무장)을 채용해 지속적인 홍보도 실시한다.

이와 함께 법환해녀학교도 오는 27일부터 4월7일까지 직업해녀양성과정 수강생 30명을 모집한다. 대상은 해녀를 직업으로 하고자 하는 신체와 정신이 건강한 60세 미만의 여성이다.

신청은 홈페이지 또는 방문, 팩스(739-7507)로 가능하다. 어촌계추천자 및 연고지, 연소자는 우선순위다.

직업해녀 양성과정 교육은 오는 5월23일부터 7월23일까지 2개월간 주말을 이용해 총 80시간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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