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6. 조선왕조 어보와 어책

570년간 왕조 책보 제작·봉헌
세계 유일무이한 사례 '주목'
올해 기록유산 최종심사 앞둬
동양문화 이해시키는 일 관건

광주5·18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통해 '우리의 것'을 넘어 '세계의 것'이 된 것처럼 제주4·3도 기록하는 작업을 통해 '제주의 기억'을 넘어 '세계인의 기록'으로 발돋움 할 수 있다. 올해 기록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조선왕조 어보 및 어책'의 사례를 통해 제주4·3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다.

△ 어보와 어책이란 

조선시대 국왕이 공식문서에 날인하는 행정 실무용인 국새와 달리 어보는 전례를 치를 당시의 명칭만을 새겨 왕실 의례용 인장으로 사용했다.

어책은 어보에 새긴 명칭의 사연과 의미 등을 보다 상세하게 문장으로 정리해서 만든 책이다.

어보의 보문과 어책에 쓰일 문구는 당대의 문장가가 짓고 명필이 한자로 글씨를 쓰면 각장(刻匠)이 새겼는데 어보는 전문서사관이 구첩전으로 쓰고 각장이 새겼다.

어보의 크기는 가로와 세로의 규격이 동일하며 재료는 금이나 은, 옥 등을 썼다. 손잡이와 보수 등 장식물이 달렸다.

어책은 재료로 금, 은, 옥, 대나무, 비단 등을 사용했다. 

이러한 책보를 제작해 봉안하는 과정은 의궤(儀軌)로 발간해 남김으로써 그 신성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한편 후대 이와 같은 사례에는 매뉴얼로 참고가 되도록 했다.

조선왕조시기를 포함해 이후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570여년이라는 장시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책보를 제작해 봉헌한 사례는 한국이 '유일무이'하다.

△ 기록유산으로서 가치

책보는 그 용도가 의례용으로 제작됐지만 거기에 쓰인 보문과 문구의 내용, 작자, 문장의 형식, 글씨체, 재료와 장식물 등은 매우 다양해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의 시대적 변천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책보만이 지닐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는 크다.

인장인 어보와 그것을 주석한 어책은 현재의 왕에게는 정통성을, 사후에는 신성성을 부여함으로서 성물로 숭배됐다. 이처럼 책보는 왕실의 정치적 안정성을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것은 인류문화사에서 볼 때 매우 독특한 문화양상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기록문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책보는 역대 왕과 왕비를 위해 유일본으로 제작됐으며 대부분 제작 초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기록유산 등재될 경우 의미

이처럼 기록유산으로 가치가 큰 어보와 어책이 올해 기록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갖는 의미 또한 상당하다.

우선 종묘(세계문화유산)와 종묘제례(무형유산) 등 종묘를 위주로 한 세계유산들이 있는데 이번에 어보와 어책이 기록유산으로 등재가 되면 종묘 신실에 봉안돼 있던 것이 세계기록으로 또 등재돼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의 '만루 홈런'을 치게 된다.

세계기록유산의 대부분은 종이에 기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어보와 어책은 옥, 금동, 대나무, 비단 등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기록돼 있어 독창성을 갖는다.

△ 지금까지 추진 과정

국립고궁박물관은 소장품 중 가장 세계적이고 전 인류가 공통으로 길이 보존해야 할 대상을 검토해 어보와 어책을 기록유산으로 등재키로 결정한다.

또 국립중앙박물관(11점)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2점), 고려대학교박물관(4점), 서울역사박물관(3점) 등 모두 4개 기관에 분산 소장된 등재 대상을 관계자 협의를 거쳐 등재키로 의견을 모은다.

이후 2015년 7~8월 진행된 '2016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 기록물 공모'에 응모한다.

이어 같은 해 10월 전문가 사전 검토회의와 11월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등을 통해 2017년 등재 신청대상 후보에 추천된다. 어보와 어책은 조선시대 500년간 전 시기에 걸쳐 제작·보관돼 문화재적 가치뿐 아니라 세계사적 가치도 우수해 등재 가능성이 높은 점 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조선왕조 어보와 어책은 올해 열리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최종 심사 등의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 제주4·3에 남긴 메시지

조선왕조 어보와 어책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숙제는 지정신청서 작성이었다.

세계기록유산 심사는 현지에 대한 실사가 없고 완전히 신청서 내용만을 검토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보와 어책의 가치가 뛰어나 국내 심사는 무난하게 통과했다.

하지만 앞으로 문화유산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사람들이 아닌 도서관장 등 단순히 기록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다수인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와 함께 동양문화보다는 서양문화에 익숙한 심사위원들을 고려해 유교나 성리학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가급적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이런 장애물은 제주4·3에도 메시지를 주고 있다.

아직 제주4·3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목표만 거론될 뿐 등재 대상이나 계획, 방법, 추진 주체 등은 물론 신청서를 작성하고 검토·보완할 인적·물적 구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금기의 역사로 어둠 속에서 인내의 시간을 보냈던 제주4·3이 다시 어둠에 갇히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인터뷰] 서 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사

서 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제주4·3은 실제 발생한 사실"이라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보고서를 진정성 있게 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은 성격이 비슷한 5·18민주화운동 기록물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 선행사례를 참고하면 기록유산 등재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학예연구사는 "준비과정에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신청서를 유네스코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맞도록 작성해야 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특히 "기록유산이다 보니 유산문화 전공자들보다는 도서관장 등 기록물 전공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는 사실과 동양권보다는 서양권의 평가위원이 대다수라는 것을 고려했다"며 "유교나 성리학 등의 용어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한국 문화를 서양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서 학예연구사는 "당장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집착하지 말고 이 자료의 성격과 내용을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해 성격을 명확히 규명하고 또 이 기록물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립고궁박물관은 어보와 어책을 등재하기 위해 10여년간 깊이 있게 조사하고 기록해 신청서를 작성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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