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공동체를 엿보다 5. 잠수회 Ⅰ

사회·경제적 목적 아닌 상호신뢰 바탕 둔 인간적 조직 구성
어촌계 편입돼 자율성 축소…유네스코 등재 후 움직임 활발

해녀 공동체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 철저하게 개별 작업을 하면서도 흩어지지 않는다. 지난 경험을 축적해 필요한 것(민속지식)을 만들어 내며 오늘까지 그 형태를 유지했다. 자율적으로 만든 규약과 관습을 중요히 여길 줄도 안다. 그 중심에는 '잠수회'가 있다.

# 노동력 관리 목적

해녀 공동체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구한말 구체적인 형태를 갖췄다는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증명할 자료는 없다. 당시 관련 문서나 신문기사 등을 통해 유추하는 것이 전부다. 당시 '계'형태로 자생적인 공동체를 이뤘다는 것이 설득력을 얻기는 한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니 이후 지역조사에서는 그 형태를 찾지 못했다. 대신 작업권 확보나 권익 보호 등의 목적으로 어업공동체가 조직되는 일련의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공출 등의 명목으로 해녀와 그들의 작업량을 계량화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 근거다. 또 하나 이유는 출가물질이다. 작업할 바다를 놓고 종종 현지 어업인들과 다툼이 생기면서 힘을 합쳐 대응할 필요가 생겼다.

좀 더 자료를 뒤져보면 잠수회의 전신 격이 것을 '잠녀안(潛女案)'에서 찾을 수 있다. 1700년대 기록에 나오는 이 문서는 국가에 바칠 조공품 생산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제주해녀를 관리하기 위해 작성됐다.

'조직'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1919년 10월 김태호(제주 조천리) 등 제주 유지들이 발기해 만든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이 있다. 1930년 4월16일 정식 발족한 조합은 당시 제주읍 삼도리에 본부를 두고 면마다 12개 지부를 뒀다. 부산과 목포, 여수에 출가 해녀 보호를 위한 출장소도 설치했다. 당시 제주에 적을 둔 해녀 8200명이 이 조합에 가입했다.

이 모든 것은 해녀의 노동력을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정리된다. 자생적 공동체를 제외하고 해녀가 직접 공동체를 이룬 경우는 제한적이다. 시대 상황만 다를 뿐 해녀들의 작업량을 파악하고 이를 경제적 이익으로 바꾸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 심지어 해녀조합은 권익 보호라는 설립 취지가 어용화하면서 해녀항일항쟁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민회 성격의 잠수회는 그런 의미에서 보다 인간적이다. 마을어장 관리나 입어자격에 대한 기준은 물론이고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바다라는 작업 공간을 공유하면서 이해득실을 따져서는 서로를 의지하기 어렵다.

# 민회와 계의 복합적 성격

제주해녀가 지닌 해양문명사적 가치로 '고유 직업으로서 세계성' '해양지역 민회문화(Citizen Assembly)의 원형(잠수회)과 해녀항쟁' '경제적 개척주의' 등을 꼽는다.(이경주·고창훈 '제주해녀의 문명사적 가치와 해녀문화의 보전과 계승' 「제주의 해녀와 일본의 아마」 민속원, 2005)

'민회'라는 단어를 쓰기는 하지만 잠수회는 '계'의 특성을 보태 특별해진다.

민회는 '특정한 구역 안에 사는 구성원들이 정치, 사회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조직한 모임'을 뜻한다. '계'는 지연·혈연에 따른 상호협동조직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적인 질서를 만들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 방식을 따른 셈이다. 이런 형태의 민속지식을 해녀 공동체의 특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32년 3개월 동안 연인원 1만7000명이 참가한 국내 최대의 여성 집단 항일 투쟁이자 최대 어민 봉기라 불리는 해녀항쟁을 일으킨 힘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특유의 조직적 저항과 희생적 투쟁의 배경에 '잠수회'가 있다는 얘기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잠수회 규칙이 갑오농민전쟁의 집강소 못지않은 민회문화의 모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통합 조직 출범 기대

한 때 나라를 긴장시킬 큰 힘을 발휘했던 공동체지만 광복 이후 수산업법 제정으로 '잠수회'란 이름을 부여받으며 그 역할이 위축된다. 물질이란 것이 시작되고 '불턱'이란 공간을 공유하며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62년 수협법 시행령 제4조에 따라 어촌 계원의 공동 이익과 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조직된 어촌계 내의 하부 조직으로 편입됐다. 경제적 측면이 부각된데 따른 변화다.

한정된 마을 어장의 효율적인 이용이나 작업 또는 어업권의 획득에 의한 회원 자격 등을 규정하기 위해 해녀들의 목소리를 모을 장치가 절실해졌다. 이런 사정들과 달리 이후 1975년 수산업법 개정으로 공동 어장 관리권이 어촌계로 위임, 잠수회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어촌계로 편입되면서 잠수회의 자율성이 완전히 사라지고, 해산물 생산과 판매 등에 있어 어촌계의 지시에 따르게 되는 등 수동적으로 바뀌었다.

다시 시대가 바뀌고 해녀가 제주 전체 어업 인구 중 70% 이상이 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 도내 어촌계장 102명 중 21명이 여성이다. 역대 최대다. 이중 현직 해녀가 19명, 나머지 2명은 전직 해녀다.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이후 해녀문화 전승·보존을 위한 해녀들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사상 첫 해녀 통합 조직이 추진되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제주도해녀협회'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는' '지속가능한'이란 해녀·해녀문화의 특성을 대표하게 된다.

적어도 사회 활동은 하지만 법률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정들이 바뀔 것이란 기대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해양국립박물관
전시 1개월 연장
한국작가 김형선
미카일 카리키스
국경 초월한 공감

해양문명의 대영제국이 제주해녀에 빠졌다. 특유의 길고 깊은 숨비소리에 반한 현지의 뜨거운 반응으로 영국에서 진행 중인 전시가 무려 한 달이나 연장됐다.

영국국립해양박물관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3월6일 개막한 '해녀 : 바다의 여인(Haen-yeo:Women of the Sea)' 전시 일정을 당초 4월 초에서 5월1일까지로 연장했다.

김형선 작가의 해녀 사진과 영국의 사운드 아티스트 미카엘 카리키스의 작품이 콜라보 전시다.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적 접근으로 제주해녀를 읽어온 김형선 작가의 '해녀'는 아마조네스를 연상시키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국내보다는 미국와 유럽 등 해외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달 22일 끝난 제주도립미술관의 '해녀의 시간-물 때'에서도 소개된 미카엘 카리키스의 '해녀'는 바다와 바람, 숨비소리에 녹아든 생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과 현실에 수긍하는 삶이 국경을 초월한 공감으로 이어진다.

영국국립해양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공간을 무료로 내준데 이어 한 달 연장 진행으로 제주해녀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표시했다는 평가다. 함께 전시에 참여했던 고희영 영화감독은 "낯설 수도 있는 해녀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뜨거운 관심을 느꼈다"며 "자연스럽게 제주해녀와 해녀문화의 우수성을 유럽에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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