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 산책 39.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늙은 어부의 불굴 정신, 고상한 모습을 힘차게 표현
인간이 가져야 할 용기·믿음·인내가 담긴 백과사전
이른 시간 주택가를 거닐다 보면 각자의 방법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 알람소리, 텔레비전에서 전해지는 알 수 없는 왕왕거리는 소리, 누군가의 바쁜 발자국 소리,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 다들 다른 듯 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늘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다 어떠한 연유로 이런 일상이 의미 없는 반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노인과 바다」를 펼쳐든다. 산티아고의 삶에서 위안을 얻고 싶어서다. 이 책은 '생전에 쓰기를 벼르다가 끝내 쓰고야 만 작품'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십여 년간 특별한 작품이 없었던 헤밍웨이에게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작가로서 재평가 받게 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사사로운 일상에서 위로받기
노인은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84일 간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85는 재수 좋은 숫자'라고 말하며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말 85일째 되는 날 바다에 나가서 청새치를 잡는다. 긴 시간 사람들에게 가장 운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세. 그리고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고 말하며 바람을 알고, 바다를 알고, 새를 보고 상황을 예측하는 자연을 보는 눈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는 먼 바다로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청새치와의 사투는 체계적이고 노련하다. 하나가 된 것처럼 공감하고 그러면서도 쉼 없이 낚싯줄을 살피고, 작은 움직임에도 청새치의 상태를 파악해서 대비하고, 버티기를 하며 고기잡이를 한다.
도망가야 하는 청새치도 잡아야 하는 노인도 서로에게는 그저 필사적 투쟁이고 각자의 일상인 것이다. 어찌 보면 노인에게 고기잡이란 가난과 외로움에 대한, 실패라는 좌절감, 그로인한 사람들의 조롱에 대한 도전이고, 성공하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을 보여주는 개인의 사소한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상이 늘 바쁘게 움직이고 경쟁하는 우리 각자의 일상과 닮아 있으니 노인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 청새치 잡이를 성공하는 모습에 위로를 받고 희열을 느낀다.
'싸움이 끝나고 나니 이제 노예처럼 뼈빠지게 해야 할 일이 잔뜩 기다리고 있군'이라며 노인은 말한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나면 또 그만큼의 과제가 남아있다. 모든 것은 힘듦의 연속인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리고 삶이란 내가 준비한다고 모두 그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여 행운이 나에게 주어지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최초의 상어가 습격해 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뒤의 일이었다. 상어는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예견된 것이고 상어가 올 것을 알고 있었으나 상어떼의 공격은 지쳐있는 노인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노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희망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또다시 불굴의 의지로 상어떼와 싸운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라고 말하지만 혼자 싸워야 하는 매순간 소년을 생각한다. 소년이 옆에 있었다면 도움을 받았을 텐데, 상황이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수없이 생각하지만 결국 혼자다.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혼자이듯이.
노인은 '지금은 갖고 오지 않은 물건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지금 갖고 있는 물건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란 말이다.' 라며 스스로를 다그치며 자신의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너는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녹초가 되어 항구로 돌아온 노인은 큰소리로 말한다. 무엇인가 큰 것을 바라고 나갔던 노인에게 바다는 너무도 공격적이었다.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다. 그렇게 좌절과 고통으로 돌아온 노인에게 소년의 위로는 따뜻했다. 마눌린은 노인에게 고기에게 진 것이 아니라고 위로해준다. 실패한 사람이라 말하던 마을 사람들도 먼 바다에서 무사히 돌아온 노인을 가족처럼 염려하며 같이 아파해준다.
바닷가에서는 조류를 타고 바다로 밀려 나가기를 기다리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멋진 꼬리를 달고 있는 엄청나게 큰 고기의 등뼈를 상어뼈라 말하며 구경하는 관광객의 모습에서 노인의 도전정신과 노력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선택한 순간을 소중하게
「노인과 바다」는 성실한 일상이, 누군가의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거칠고 때론 비정하게도 느껴지는 바다 같은 삶에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가. 선택에서부터 행동하는 모든 것은 결국 나의 의지인 것이다. 이제는 그 선택의 순간에 조금은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조금은 기본에 충실한 행동을 하자.
망망대해에서 오롯이 나와 만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런 시간들을 미리 준비하자. 요즈음처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사회문제로 시끄러울 때 개인의 문제부터 해결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혼란스러워지지 않기 위해서 나부터 중심을 잡자. 그리고 소년처럼 누군가의 어려운 순간에 생각나는 사람이 되도록 평소에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에도 정성을 드려보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는 없어도 어려운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 큰 힘이 될 것이다.
바다는 망망대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근해의 작은 물고기 한 마리에도 관심을 가져보자. 아니 낚시에 허탕을 친다면, 해변의 모래사장을 맨발로 거닐고 그 순간에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날도 가져보자. 잠시 가벼워져보자. 우리 열심히 살고 있으니.

어니스트 헤밍웨이 (1899-1961)
고교시절에는 풋볼 선수였으나, 시와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8년 의용병으로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이 되어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 중 다리에 중상을 입고 밀라노 육군병원에 입원, 휴전이 되어 1919년 귀국하였다. 전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지의 특파원이 되어 다시 유럽에 건너가 각지를 여행하였고,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3년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를 출판한 것을 시작으로, 1929년 전쟁의 허무와 비련을 테마로 한 전쟁문학의 걸작이라 평가 받는『무기여 잘 있거라』를 완성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일생 동안 헤밍웨이가 몰두했던 주제는 전쟁이나 야생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선천적인 존재 조건의 비극과, 그 운명에 맞닥뜨린 개인의 승리와 패배 등이었다. 본인의 삶 또한 그러한 상황에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드라마틱한 일생이었다.
「노인과 바다」(1952)로 1953년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