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공동체를 엿보다 6. 잠수굿

초정월부터 3월까지 규모 큰 잠수회 등에 전통 이어져
해녀 어르신 경험 바탕으로 준비…가족위한 역할 확인
여성 주도로 결속 다지는 행사…심방의 사설을 지혜로

"…진 한숨 모른 한숨 숨비애기소리 속 깊이 맺힌 거 풀어줍서. 요왕에 인정 걸엄수다. 물 아래서 숨차게 하지 맙서. 들물에 썰물에 여에 치게 맙서.이 바당 망사리 고득 고득하게 해줍서. 뭐랜 고라도 가슴 아프게 맙서" 심방의 사설에 해녀들이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아이고 옳다" "다 막아줍서" 굿청 한쪽에 자리를 잡은 노해녀들의 추임새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 사해용왕님 전에 비옵니다

지난 4일이었다. 음력 3월8일 동김녕리 잠수굿이 열렸다. 초정월부터 잠수회 규모가 큰 곳에서는 이미 잠수굿이 치러졌다. 청하는 심방이 다르기는 하지만 하나 같이 요왕수정국 사해용왕님 전에 올 한해 무사안녕과 풍요를 빈다. 

무속이니 뭐니 해도 하늘을 명정포 삼고 바다를 칠성판 삼아 하루에도 수 십 번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해녀들에게 있어 '의지'를 확인하는 오래된 의식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나 와서 사진 찍거나 하는 행사가 아니"라며 거절받기 일쑤였다. 승낙을 받아도 "최소 3일전부터 돼지고기도 먹지 말고 궂은 일도 보지말라"는 당부가 따라왔다.

지금은 '어디로 오라'는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잠수굿이 언제부터 열렸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학자들은 영등굿의 본래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녀들이 많은 지역에서 많이 행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천읍.구좌읍은 물론이고 안덕면 사계리와 성산읍 신양리 등지에서 잠수굿 또는 용왕제라는 이름의 의식이 치러진다. 방식도 조금씩 바뀐다. 기본적으로 해녀회장을 중심으로 굿 준비를 한다.

해녀들은 굿 하루 전날 방울떡, 방애떡, 사발시루떡, 돌래떡 등을 직접 빚는다.  '해신제물'에 들어 작업한 해산물을 신선한 상태 그대로 상에 올린다. 해녀들이 준비하고 치르는 행사지만 마을은 물론이고 바다와 관련된 기관·단체들도 다 찾는다. 물질을 하는 시어머니를 뵈러 며느리가 찾아와 인사를 하고, 친정어머니를 챙기느라 양팔 가득 떡을 해 올리는 딸도 있다. 오랜만에 아들 얼굴을 봤다고 좋아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정도면 굿이 아니라 잔치다.

해녀들의 무속 의례라고 보기에 잠수굿은 가장 큰 마을 행사다. 굿이 치러지는 동안 지역이나 해녀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다 찾아온다. 온전히 해녀들이 판을 만들고 또 운영한다. 

이번 동김녕잠수굿만 해도 해녀들이 직접 해산물을 고아 만든 육수가 일품인 성게국수와 소라적이 나왔다. "어디 가서도 이런 것은 못 먹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내 며느리가 왔다" "둘째 아들이다"하고 인사를 시키고 손자·손녀 이름까지 열명해 한해 무탈과 건강을 빈다.

# '어깨 너머' 채운 문화

언제 어떻게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 다 '어깨 너머' 배운 것들이다. 잠수굿의 하이라이트에 심방이 제관 역할을 맡은 해녀회장들을 중심으로 듬돌을 지고 직접 용왕길을 닦게 한다. 요왕질침이다. 지도 싼다. 용왕밥이라고도 부르는 지는 해녀들이 각자 차린 제물을 조금씩 나눠 올린다.

예를 들어 하도리 해녀들은 밥(메)과 과일, 삶은 계란, 과자 등을 싼다. 상에는 온갖 해산물을 다 올리지만 각자 준비하는 것에는 구운 생선 외에는 바다와 관련한 것을 피한다. 

식구 수에 맞춰 10원짜리 동전을 준비하기도 한다.

마을마다, 잠수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공동체 연대를 단단히 하는데 있어 잠수굿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해녀문화의 특성을 '여성 중심'으로 읽을 수 있는 것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여성들이 하는 작업이라는 설명을 넘어 모든 일을 여성(해녀)이 주도한다. 가족들의 액을 막고 올 한해 벌이에 대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자존감을 높인다. 잠수회 전체가 공동 작업한 해산물 등을 나눠먹으며 결속을 다지는 공식적인 자리기도 하다.

심방이 액막이를 한다지만 전체 진행 과정에 있어 노해녀들의 '참견'은 필수다. 제관들의 역할이며 상에 올릴 수 있는 제물을 살피는 것들 모두 먼저 해봤거나 본 적이 있는 삼촌들의 허락을 받는다. 별 일 아닌 것 같아도 상가에도 가지 않고 외출도 삼간다. 행여 좋지 않은 것을 볼까 노해녀의 충고를 듣는다.

심방의 사설 역시 허투루 듣기 어렵다. 적어도 둘 이상 짝을 지어 작업을 하고, 물숨 들이키지 않게 욕심을 부리지 마라 충고한다. 직접 물질을 하지 않더라도 해녀들에게 귀동냥해 들은 이야기를 매년 하나 둘 엮어 그들을 대신해 풀어낸다. 특정한 사회와 문화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민속지식, 이른바 '토착지식'이라 부르는 영역이다. 

이렇게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해녀문화의 힘이다.

내달21일까지 「애기해녀…」 원화전…28일 '작가와의 대화'

2009년 칠순을 넘긴 노해녀의 기억 속에 독도 바다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갔지. 그 먼 길을". 

4월이라고 해도 한 계절이 늦은 바다는 아직 겨울이다. 독도 물질을 떠올리던 박옥랑 할머니가 부르르 몸을 떠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물에 젖은 몸에 물에 젖은 몸에 칼 같은 바닷바람이 닿을 때마다 독도에 온 것을 후회했다는 박 할머니는 "드랑드랑 전복이 붙어있어도 돈이 되는 미역 작업만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19살이었던 아기 해녀는 여든이 넘어서야 독도 이야기를 털어놨다. 일본 순시선이 반가운 적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의 기억속에 순시선은 단 한 번도 독도에 접안한 적이 없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10여년을 살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해온 김금숙 작가와 제주 허영선 시인을 만나 「애기해녀 옥랑이 미역따러 독도가요」그림책이 됐다.

제주도립미술관은 5월21일까지 이 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그림책 원화 41점은 당시 박옥랑 해녀가 독도에서 봤던 전복처럼 튼실하게 전시장을 지키고 있다. "이어싸나 이어싸나/바람일랑 밥으로 먹고/구름으로 똥을 싸고…/물결일랑 집안을 삼아/설운 어머니 떼어 두고/설운 아버지 떼어 두고/ 부모 동생 이별하고…/쳐라 쳐라" 노젓는 소리에 눈물부터 올라온다.

"울라탕울라탕" 독도에 경비소를 지으려 통나무를 잔뜩 싣고 온 배가 산더미 파도에 뒤집혀 선원들이 발만 동동 구를 때도 제주 해녀들이 "풍덩" 뛰어들어 둥둥 뜬 통나무를 뭍으로 날랐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전해진다.

전시연계프로그램으로 오는 28일 김금숙 작가와 허영선 시인을 만나 직접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