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2. 영화, '일상성 발견'으로 부터

삶에 희망과 영향을 제공해주는 영화 집중 탐구
최근에는 솔직한 일상성·다중적 캐릭터에 주목

인간, 이중성 혹은 다중성 캐릭터

흔히들 어떤 상황이나, 인물, 스토리의 결과를 가치평가하면서 "영화 같다"라고 말한다. 이때 "영화 같다"의 의미는 "환상적이다" "초월적이다" "희망하던 것이 이뤄졌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영화는 삶의 어떤 가능성, 존재들의 희망이 구체화된 결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면, 허구 그 자체 혹은 비현실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영화는 허구이면서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현실세계를 보여주려 한다. G. A. 드 카이야베가 말한 것처럼 "영화는 현대 생활을 기록한 일기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기장의 특성이 그렇듯이 일상성, 부끄럽지만 진실한 내면, 역사성, 존재의 시간 등을 섬세하게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 

1911년 2월25일, 보헤미안에 다녀온 카프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간단한 소식 몇 가지를 전한다. 그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막스, 국민공원에서 지빠귀새 우는 소리를 사람들이 벌써 들었다 한다. 왕궁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 물체를 뒤에서 꽉 잡아줘야 한다. 탄력장치가 너무 잘 돼, 오늘 여기까지 오는 길에 오리 한 마리가 강가에서 헤엄치는 것을 봤다. 나와 같이 전차에 탄 어떤 여자는 '백색 노예'에 나오는 노예상인과 무척이나 닮았더군." 

카프카는 영화에서 본 인물의 캐릭터와 비슷한 사람을 전차에서 만났나보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그가 전에 봤던 영화는 '백색 노예'다. 어떤 젊고 가난한 여인이 광고를 보고 고향을 떠났다가 낯선 곳에서 매춘부 신세가 됐는데, 그녀의 연인이 노예상인이 관리하는 감옥에서 구출해낸다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노예상인은 겉으로는 배려 깊은 인상이지만 실제로는 가학증세가 있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카프카는 '영화 속 얼굴'을 현실의 어떤 인물과 겹쳐 읽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를 닮았다는 게 아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인물이 현실성 있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 즉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중성 혹은 다중적 캐릭터가 숨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감각적이면서 통합적 이미지 예술

영화가 다른 매체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감각적이면서 통합적 이미지 예술이라는 점이다. 하나의 장면에 소리, 색깔, 분위기, 냄새, 움직임, 구도, 비율, 농도, 속도, 거리감 등이 통합된 이미지가 연출된다. 한마디로 관람자는 하나의 통합된 감각으로 어떤 이미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와 더불어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위 영화의 이탈리아 원제는 '자전거 도둑'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자전거를 훔친 도둑과 결국 어쩔 수 없이 자전거 도둑이 되고 마는 주인공 리치와 그의 아들 브루노의 이야기다. 전후 이탈리아 민중의 삶의 현실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생계수단을 위해 자전거 한 대를 마련해 겨우 일자리를 얻는가 싶었는데 그만 자전거를 잃어버린 리치. 그는 아들과 함께 경찰서, 교회, 노동조합 등을 방문하며 자전거를 찾아보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자전거를 찾아줄 수 없거니와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다. 리치와 그의 아들 브루노는 하염없이 도시를 헤매야만 한다. 결국 리치는 자전거를 훔치게 되고, 아들 앞에서 모욕과 창피를 당한다. 브루노는 땅에 떨어진 아버지의 모자를 주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아버지 옆에 앉는다. 

영화에서 스토리는 뻔하다. 결국 자전거를 잃어버렸으나 자신이, 그리고 아들마저도 자전거 도둑의 공범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전후 이탈리아 민중의 어려운 처지와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 이미지들이 주는 무게감과 속도가 인물의 상황과 처지를 더 잘 말해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두침침한 하늘, 왁자지껄한 도시, 무거운 담배연기, 느리고 빠른 발걸음, 헐떡거림, 아빠의 얼굴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아들의 눈빛, 군중 속에 파묻힌 아들의 작은 키, 두 손을 똑같은 모양으로 포갠 아들과 아버지…. 두 손을 똑같은 모양으로 포갠 아들과 아버지의 모습에서 둘은 이제 도덕적·심리적 측면에서 똑같아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스토리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말을 하는 것이다. 영화의 문법을 안다는 것은 이미지의 배치 즉 각 이미지들의 질감, 각도, 비율, 농도, 속도, 심도 등을  읽어내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그것은 "감동적이거나 지루하고 시시하다"이다. 열린 결말이 어떤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하지만 허무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감상의 결과가 다른 것은 누구나 동일한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하거나 사유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맥락, 역사를 이해하는 관점, 영화문법에 대한 상이한 견해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의 시대, 삶의 메커니즘

이 영화가 주는 영화 문법적 성과는 스토리가 아닌 이미지를 통한 '틈'의 발생에 있다. 사유의 자리는 '틈'이 생성한다. 느리게 흘러가는 이미지의 흐름 속에 인물의 표정에 클로즈업되고, 미장센이 자아내는 분위기, 거리감을 통해 '사는 게 이렇구나' 하는 삶의 심연에 가 닿는 것이다. 

과거 고전영화의 관습적 문법은 "그래서 행복하였답니다"로 끝나는 닫힌 결말이다. 이런 관습적인 문법이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그것이 관객의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과장'보다는 솔직한 '일상성'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의 영화들은 지극한 평범한 인물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또한 인물 캐릭터의 순수성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갖는 다양한 본성, 중첩된 사회적 위치와 역할, 문제 근원의 다층성, 행동에 대해 관계 혹은 맥락적 해석이 뒤따르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문법이다. 

박은형 감독의 영화 '그녀가 부른다'(2012)에 등장하는 진경(윤진서 분)이라는 인물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살 필요는 없잖아요"를 주장하며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직업이 매표원임에도 영화를 보러 온 손님들에게 무심한 표정으로 표를 나눠준다. 자신을 흠모하며 따라다니는 경호(오민석 분)에게도 까칠하게 대한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몸짓이다. 그러면서 유부남과의 의미 없는 만남을 갖고, 그의 아내로부터 뺨을 맞는 사태까지 벌어진다. 그도 그녀도 그냥 심심해서 만나는 사이인데, 삶 전체를 도둑질한 사람처럼 모두들 그녀를 모욕하고 훈계한다. 좋은 삶은 그런 게 아니라고. 급기야 매표소 소장으로부터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고, 그 와중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다. 사실 어머니는 그녀와 그나마 가장 말이 통하는 사이였다. 어머니는 그녀를 낳은 게 아니라 키워준 새어머니였다. 다들 떠나가고 결국 남는 것은 드높은 하늘, 공허한 구름의 정지, 매미소리와 선풍기 바람, 잉크 묻은 손, 고장난 TV, 하릴없이 바르는 매니큐어…. 이 영화가 말하려는 메시지는 노래가 대신한다. 김종찬의 '산다는 것은'이 흘러나오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어디로 가야하나. 분명하지 않은 갈 길에 몸을 기댔어"라고 읊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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