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9. 조선통신사 기록물

정부차원 공동등재 추진하다 외교경색으로 민간 주도
양국 오가며 최종합의 거쳐 작년 3월 등재신청서 발송

영원한 맞수, 한국과 일본이 같은 목표를 위해 손을 잡았다. 바로 선린우호의 상징인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다. 외교 분쟁과 문화적·언어적 차이 등 험난한 장애물을 넘어 '공동 목표' 달성이라는 마침표를 찍기 위한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가 눈앞에 있다.

△조선통신사란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절을 조선통신사라고 한다. '통신(通信)'이란 '신의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한양에서 쓰시마까지의 행렬에 일본과 조선은 '통신'이란 말처럼 신의를 나눴다.

조선통신사를 통한 교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선과 일본의 평화와 선린우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은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이 났지만 이 전쟁은 조선을 황폐하게 만든다. 조선으로 출병하지 않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명대사 유정과의 교섭을 통해 조선과의 국교를 회복한다. 이후 도쿠가와 바쿠후는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쇼군 일대의 의식'으로 매우 중요시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년간 조선통신사는 일본을 12번에 걸쳐 방문한다. 도쿠가와 바쿠후의 경사나 쇼군의 계승이 있을 때마다 방문해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고 도쿠가와 쇼군의 답서를 받았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출발해 일본의 수도인 에도까지 조선통신사 길은 반년 이상이 소요되는 왕복 3000㎞의 대장정이었다. 긴 여로의 곳곳에서 통신사는 일본의 많은 문인들과 필담을 나누고 노래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선단과 행렬은 일본의 민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일본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기록유산 등재 추진 과정

부산문화재단은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조선통신사 한일 문화교류사업'을 추진하던 중 일본측 파트너 기관인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에 지난 2012년 5월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에 등재하자고 먼저 제안한다.

당초 민간에서는 등재 분위기만 조성하고 양국 정부 차원에서 공동 등재 추진을 목표로 했지만 한·일 외교 경색 등으로 인해 정부 차원의 추진이 어렵게 되자 지난 2014년 민간 주도로 전환해 같은 해 6월에 한·일 양국에서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이후 2014년 8월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열린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1차 한·일 공동 추진위원회의'와 같은 해 부산에서 진행된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1차 한·일 공동 학술위원회의'를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모두 12회에 걸쳐 공동 학술회의를 진행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부산문화재단과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는 지난해 3월30일 유네스코 사무국에 최종 합의를 거쳐 작성된 기록유산 등재 신청서를 발송한다.

지난달 10일 유네스코 사무국 추가자료 제출 서신을 접수해 같은 달 18일 긴급 한일 공동학술위원회의를 갖기도 했다.

양 기관은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물로 등재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유산 등재 신청 기록물

신청기록물 수는 한국 63건·123점, 일본측 48건·209점 등 모두 111건·333점이다.

한국 기록물은 부산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등 9개 기관에, 일본측 기록물은 교토대학 종합박물관과 야마구치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료는 1641년에서 1811년까지 통신사와 관련된 공문서를 예조에서 등사해 유형별로 묶은 문서인 '통신사 등록'과 1598년 겨울부터 1841년까지 조선 후기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기록한 '번례집요' 등이 있다.

일본 자료는 조선통신사를 통해 도쿠가와 장군이 접수한 '조선국와명의 국서'와 조선통신사 기록화인 '조선통신사 행렬도' 등이다.

△4·3에 주는 교훈

이 같은 조선통신사의 기록유산 등재 추진 과정은 제주4·3에도 시사점이 크다.

조선통신사의 경우 '국제공동 등재'로 등재 신청을 마쳤다. 일본과 협력한 조선통신사의 경우 문화재청 공모와 한국위원회 심사 과정이 생략된 셈이다.

다른 기록물은 문화재청 공모를 거쳐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 자문 및 세계유산분과 심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심사 및 등재 권고 등의 과정을 거쳐 기록유산으로 등재된다.

이는 대만2·28과 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연구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한 제주4·3이 참고할 부분이다.

또 정부 주도의 기록유산 등재 추진이 어렵게 되자 부산문화재단과 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라는 민간단체가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점도 중요하다.

제주4·3의 경우 아직 구체적 추진 주체나 대상, 방법 등의 제시가 부족한 상태다. 도민 동의를 얻어 유족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가칭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를 구성, 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부산시가 예산과 인력 등을 적극 지원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70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음지에서 숨죽여 지내야 했던 제주4·3이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이제 양지로 나온 제주4·3을 '세계인의 역사'로 만드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어둠의 역사로 누구도 입 밖에 내기를 꺼렸던 제주4·3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그날 제주는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노래하는 평화의 섬으로 남을 것이다. 

[인터뷰] 유종목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제주4·3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구심점이 될 조직을 먼저 구성해야 합니다"

유종목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쉽지 않은 만큼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유 대표이사는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각 계 전문가로 구성된 추진위원회와 등재를 실질적으로 추진할 사무국이 있어야 한다"며 "또 4·3 관련 기록에는 어떤 기록이 있는지와 기록유산 등재 기준인 진정성, 유일성, 보존·관리의 안정성에 부합하는 지를 학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국적인 학술 전문가 그룹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추진위원회에서 등재 추진을 위한 큰 방향을 잡고 예산을 확보해 사무국을 중심으로 실무준비를 진행하고 학술전문가 그룹에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해 가는 방향으로 준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문화재청에서 추진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예비목록 공모에도 응모해 정부 차원의 추진 결정에 대비를 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이사는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예산과 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조선통신사의 경우 부산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기록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제주 4·3의 경우도 행정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통신사 기록의 경우도 '조선통신사학회'를 구성해 학술적 뒷받침을 했다"며 "제주4·3도 가칭 '4·3사건연구회' 같은 단체를 구성, 학술적 지원은 물론 4·3 자료를 보관 중인 기관이나 개인과도 꾸준히 접촉해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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