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10. 일제 강제징용 기록물

대한민국 피해 정부차원 조사…피해자·유물 등 유일
2015년 유네스코 기록유산 도전 고배…올해 재도전
제주, 4·3 등재 위한 인력채용 등 국비 신청 '걸음마'

△강제동원이란

강제동원은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이기 위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실행한 인적·물적 동원 및 자금 통제를 말한다.

전면적인 강제동원은 중일전쟁(1937년) 이듬해인 1938년 4월1일 '국가총동원법'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법은 의회의 동의 없이 일본 본토와 식민지, 점령지 등 모든 지배 지역의 사람과 물가, 자금을 총동원해 전쟁에 투입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한 전시 통제 기본법이다.

일본은 다음 해인 1939년 7월에는 '국민징용령'을 공포했고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할 계획도 세운다. 모법(母法)인 '국가총동원법' 아래 '국민징용령' 등 각종 통제 법령을 제정, 시행한다.

노무자는 1939년 7월부터는 '모집'이라는 이름으로 광업, 토건 현장 등으로, 1942년 2월부터는 '관알선'이라는 이름으로 철강 관련 군수공장 등으로 동원된다.

1944년 9월에는 '징용'이라는 형태로 조선인을 동원한다. 먹을 것은 턱없이 부족하고, 일본인보다 낮은 임금, 이직이 불가능하거나 임금을 거의 모두 억지로 저금을 하게 하는 등의 열악한 대우는 다를 바 없었다는 점에서 이름만 다를 뿐 '강제동원'이라고 할 수 있다.

군인은 처음에는 말뿐인 지원병으로 모집하다가 이후에는 징병령으로 동원했고, 군무원도 동일하다. 일본군 '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는 속임수와 기만에 의한 동원이 대부분이었다.

△용서 통한 평화 모색 의미

'아시아태평양 전쟁기의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이하 강제동원 기록물)'은 대부분 1938년 1월부터 1945년 8월 해방 전 까지 강제동원 피해당사자와 희생자들이 직접 생산한 것들로 세계적으로 유일한 대규모 강제동원 실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기록물 원본으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피해조사서와 지급심사서는 2004년 11월부터 현재까지 한국정부가 예산과 인력을 직접 투입해 피해자 당사자 본인의 체험 증언과 목격자, 동행자, 가족 등 피해자 주변인물의 증언으로 피해 실태를 기록한 한국정부의 입증 기록물이기도 하다.

특히 강제동원 기록물은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희생자들이 손으로 직접 생산한 자료와 일본정부, 전범기업들이 직접 확인하고 작성한 기록물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기록물의 진정성을 스스로 보증하고 있다.

강제동원 기록물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성을 갖는다.

강제동원 기록물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수행목적으로 자행된 불법 노동과 인권유린의 피해를 총체적으로 조사한 세계 최초의 사례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일본, 조선과 타이완, 중국, 태평양, 동남아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치러진 전쟁이었지만 그 피해 상황을 정부차원에서 조사한 예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또 이 기록물은 당시를 기억하는 피해자 본인, 생존 목격자의 육성의 증언과 유물, 기록 등 유형·무형의 자료들로 구성돼 있으며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보존가치와 희소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 당시의 인권유린 실상을 확인하고 연구하는데 유용한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강제동원 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 추진은 강제동원이라는 비인도적인 실태를 규명해 희생자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는 것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는 동시에 피해자인 한국민은 가해자를 용서하되 그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됨을, 그리고 가해국 일본은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동북아의 평화가 구축되는데 일조하기 위함이다. 

강제동원 기록물은 이렇듯 가해자에게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피해자에게는 용서를 통한 평화를 모색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 위한 도전

이처럼 우리 민족은 물론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강제동원 기록물은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 위한 도전에 나선다.

기록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강제동원 기록물은 일본 행정기관의 한국인 동원 관여 기록물(1건)과 한국인의 강제동원 실태 기록물(1282건), 한국인 강제동원을 주도한 일본 정부·기업 기록물(57건), 한국 정부가 작성한 동원피해 기록물(2002건) 등 모두 3342건이다.

앞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지난 2015년 문화재청이 2017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 기록물 선정을 위해 진행한 대국민 공모에 응모한다.

하지만 심사에서 "1차 피해기록물 비중이 적고 대다수 기록물이 근래에 작성된 수십만명의 개인조사서, 피해조사서 지급심사소로 구성돼 있어 유네스코 차원에서 세계사적 가치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는 이유로 아쉽게 고배를 마신다.

이에 재단은 지난 공모에서 지적된 사항을 보완하고 자문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이달 10일 문화재청의 '2018년 세계기록유산 및 2017년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 등재신청 대상 기록물 공모'에 다시 응모했다.

△기록유산 도전 4·3의 첫 걸음

제주4·3은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 위해 이제 첫 걸음을 뗐다.

제주4·3 기록물 중 세계기록유산 등재 검토 대상은 문서 2만3838건과 사진 1046건, 영상 1932건, 단행본 8건 등 모두 2만6824점에 이른다.

검토 대상물 중에는 4·3희생자 신고서 원본과 후유장애자 사진 등은 물론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도 포함됐다.

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지자체 차원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제주도는 최근 행정자치부에 4·3 전문인력 채용과 기록물 조사 및 수집 등 4·3 세계기록유산 등재 준비에 소요되는 국비 2억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난관도 산적해 있다.

방대한 자료 가운데 세계기록유산 등재기준을 충족하는 기록물을 선정해야 하고, 아직도 각종 기록들이 국내·외에 분산돼 있어 기록물 수집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의 역사로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4·3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빛을 보낸 데까지는 성공했다. 어렵게 양지로 나온 4·3을 세계인의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통해 화해와 상행의 4·3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제주가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인터뷰] 주영민 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학예연구부장

"제주4·3 당시의 참상을 알려주는 생생한 자료와 각종 기록물, 증언, 사진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해야 합니다"

주영민 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학예연구부장은 "제주4·3사건은 정부에서 국가기념일로 정해 매년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지만 제주도민을 제외한 대다수 국민들은 사건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에서 좌우의 대립으로 인한 모순과 갈등으로 인해 민족적인 비극이 발생한 사건으로 알고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수년 전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넓은 공원 안에 돔 형식의 기념관이 있고 그 내부에 희생자들의 명단과 위패가 안치돼 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4·3과 관련한 다양한 교육 등을 통해 도민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4·3의 아픔을 이해하고 기록유산 등재를 지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학예연구부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 기록물은 자료 자체가 워낙 방대해 당시 기록물 등을 고증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며 "혼란스러웠던 4·3 당시의 참상을 알려주는 기록물을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기준에 맞게 준비하고 다시는 이념대립으로 이런 비극의 참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세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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