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숲 곶자왈 자연유산으로 1. 프롤로그

관속식물 총 750종 서식...도내 전체 38.6% 이르러
옛 주민들 집·농기구·테우 제작에 쓸 나무 등 조달
국제적 가치 제고 위한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필요

화산분출 용암류가 만들어낸 암괴지대인 곶자왈은 수많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자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 저장고 역할을 한다. 생태·지질 특성 뿐 아니라 선조들의 생활상이 투영된 역사·문화 유적도 다수 발견되면서 곶자왈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제주의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인 곶자왈을 개발의 광풍에서 지켜내 후세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는 법적 지위 확보를 통한 지속가능한 보전과 함께 세계적 자연유산으로써의 인식 확산과 공감대 형성이 요구된다.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

지난 2013년 제주도 한라산연구소가 발표한 '곶자왈 환경자원 조사'에 따르면 곶자왈에 서식하는 관속식물상은 750종류로 제주도 전체 1990종류의 38.6% 이른다.

특히 제주고사리삼 등 양치식물은 111종류로 제주에 서식하는 197종류 중 56.3%를 차지하고 있다. 곶자왈이 '양치식물의 보고'인 이유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과 공통으로 분포하는 식물은 총 221종류다. 곶자왈이 한라산과의 중요한 생태 통로로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식지가 제한적이고 개체수가 적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식물은 제주고사리삼을 비롯해 개가시나무, 으름난초, 백운란 등 8종이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기준 희귀식물은 푸른개고사리, 여름새우란, 호랑가시나무 등 67종류다.

또 한정된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특산식물은 가시딸기, 솔비나무 등 20종류, 곶자왈 한정 분포식물은 밤일엽아재비, 빌레나무, 제주방울란 등 13종류로 대부분 함몰지형 등 독특한 지형에서 자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곶자왈이 제주도 전체 면적의 5.9%에 불과하지만 '생명다양성 천국'으로 역할하는데는 독특한 지질구조와 온도·습도 등 환경적 요인이 크다.

함몰지, 요철지형, 튜물러스, 용암돔, 궤, 습지 등 다양한 지질구조는 여름과 겨울의 경계를 없애는 항온기능을 가능케 하면서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을 형성, 제주자연의 보물로 만들었다.

△생활 자원의 산실

곶자왈은 자연과 공생해 온 옛 제주사람들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문화적 자산이다.

제민일보는 지난 2015년 '곶자왈의 고유 이름을 찾아서' 기획보도를 통해 고문헌과 고지도에 명시된 곶자왈의 옛 이름과 다양한 생활유적들을 발굴·조사했다.

또 지난해에는 수많은 중산간 마을에 둘러싸여 농경·사냥·채집 등 지역 주민들의 경제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쳐온 곶자왈의 '생활사'를 조명하기 위한 '마을과 살아 숨쉬는 곶자왈'을 연재했다.

곶자왈은 옛 제주사람들에게 생활 자원의 산실이었다.

초가집은 물론 농기구, 테우 등에 쓸 아름드리나무와 해안마을 사람들과 물물 교환에 사용할 숯과 장작도 곶자왈에서 조달했다.

선흘곶자왈과 무릉곶자왈 등에는 지금도 대형 '숯가마'와 숯을 구우며 휴식을 취했던 '숯막' 등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제주사람 특유의 강인한 생활력은 곶자왈의 척박한 땅을 조·보리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 경작지와  소·마를 키우는 방목지로 바꿔놓았다.

산나물과 약용작물인 칡·오미자·더덕·마를 비롯해 종가시나무 열매 등을 채집하는 등 곶자왈은 마을 주민들의 식량 창고로도 이용됐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의해 조성된 군사시설과 제주4·3 당시 주민들이 몸을 숨겼던 은신처 등 역사적 아픔을 고스란히 품은 유적들이 곶자왈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법적 지위 확보 절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제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환경 분야 공약을 발표하면서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곶자왈, 오름 등은 귀중한 생태자원"이라며 제주를 동북아시아의 환경수도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지난 2012년 9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주최로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제주형의제로 '제주도 용암 숲 곶자왈의 보전·활용을 위한 지원'이 채택되기도 했다.

곶자왈은 제주의 환경자산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보존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에 제주도는 제주형의제 후속조치로 2014년 2월 곶자왈 보전관리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한데 이어 같은해 4월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이어 2015년 7월에는 제주특별법 5단계 제도개선을 통해 곶자왈 정의와 보전 책무를 부여하는 한편 국가나 도가 곶자왈을 보전·관리하는 단체에 소요 경비의 일부를 보조할 수 있도록 근거를 뒀다.

이와 함께 2015년 8월부터 곶자왈지대의 체계적인 보전·관리를 위해 실태조사와 보전관리방안 수립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업내용은 곶자왈지대 분포현황과 자연생태계·지형·지질·역사문화유적 및 훼손현황, 토지이용실태 등 실태조사, 경계 설정 작업을 통한 보호지역 지정, 곶자왈지역의 지하수 보전·관리방안 수립 등이다.

곶자왈은 제주특별법상 생태보전지구나 지하수보전지구 등으로 분류돼 관리되고 있지만 보호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가 제정됐지만 상위법의 근거가 없어 개발행위로 인한 훼손을 금지하는 등의 실효성 있는 보호수단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곶자왈 보호지역 지정 근거 마련을 위한 제주특별법 6단계 제도개선을 비롯해 경계설정에 따른 보호지역 지정, 관리보전지역 등급 조정, 사유곶자왈 매입을 통한 국·공유화 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도가 유네스코 제주도 생물권보전지역 확대 타당성 조사 및 관리계획 수립 용역에 돌입하면서 곶자왈의 국제적 가치 제고를 위한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특별취재팀=한 권 정치부·고경호 경제부 기자,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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