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숲 곶자왈 자연유산으로 2. 돌인가 생명인가

제주어 사전부터 조례 등 법률·시사용어로 정의 확대
보전 목적성 따라 개념 변천…기존 정의 수명 다해가

곶자왈의 정의는 곶자왈 보전의 목적성과 직결된다. 돌인지 생명인지,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인지 그 위에 형성된 생태계인지에 따라 곶자왈의 정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곶자왈'의 정의는 방목·채집·사냥·숯생산 등 경제활동의 터전으로 여겼던 옛 제주사람들의 인식을 벗어나 지질학 등 학문은 물론 행정·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각각 정립되고 있다. 곶자왈의 '무엇'을 보전할지에 대한 판단이 시급하다.

△시사·법률용어로 확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이라고 하는 제주어사전의 말 풀이가 곶자왈을 정의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사실 이 말은 같은 책에 나오는 바와 같이 '숲' 또는 '산 밑의 우거진 곳'을 나타내는 '곶'과 곶자왈의 풀이와 똑같은 의미의 '자왈'이 합쳐진 말이기도 하다.

'곶자왈'이란 제줏말은 '나무' '덩굴' '수풀' 같이 생명 자원이 중심이 되는 개념이다. 곶자왈이란 가꾸지 않은 상태의 숲, 어쩌면 자연림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기처럼 모락모락 시사용어로 피어오르더니 이제는 법률용어로까지 확대돼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곶자왈 보전 및 관리 조례'에서 '제주도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이라고 한 것은 이런 개념의 변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문분야로 들어가면 이 정도는 약과다. '토양이 거의 없거나 그 표토층의 심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얕으며, 화산 분화시 화구(오름)로 부터 흘러나와 굳어진 용암의 크고 작은 암괴가 요철 지형을 이루고 있는 곳' '거력이상의 암괴가 우세한 연장성을 갖는 용암유역'으로 정의하자는 제안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정도가 되면 곶자왈이란 둥지에 토양, 화산, 용암, 암괴 같은 말들이 들어와 본래 품고 있던 나무, 덩굴, 수풀이라고 하는 말들을 완전히 밀어낸 셈이다.

△언어학적 수명 소멸

이처럼 곶자왈이란 말은 제주도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나고 죽은 사람들과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전문가 집단 및 행정·법률가들과 어쩌면 미래의 제주 사람들까지도 서로 통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나무하고, 고사리 꺾고, 방목하고, 숯 굽고, 사냥도 하는 곳을 나타내던 곶자왈이란 말이 이제 그 언어학적 수명을 다하고 소멸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학문적 연구 결과로 새로운 개념이 수립되면 이를 담을 수 있는 용어를 새롭게 만드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곶자왈에서 만큼은 기존에 널리 쓰고 있는 말의 개념을 바꿔 쓰자고 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진원지는 곶자왈 보전의 목적성 때문이다. 

곶자왈에서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돌을 보전할 것인가 생명을 보전할 것인가.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인가 아니면 그 용암 위에 형성된 생명인가.

△광물 존재 가능성 전무

우선 용암의 보전가치는 어떤 것인가를 볼 필요가 있다.

용암이란 지질학사전에 의하면 '암석 구성물질이 용융상태에 있는 것으로 마그마와 대체로 비슷하지만 마그마는 지하에 있는 것이고 용암은 지표로 분출한 것' 또는 '용융상태에 있던 것이 냉각 고결되어 만들어진 암석으로서 흔히 화산활동에 의해 지하의 마그마가 지표나 지표 가까이로 분출해 급격히 냉각돼 형성된 암석'을 말한다.

곶자왈의 용암은 당연히 후자를 지칭하고 있다.

그럼 이 용암은 어떤 보존가치가 있을까.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거나 만들어지고 있는 용암은 지구상에 지천으로 많다. 지금도 바다 속의 해령을 제외하고라도 환태평양화산대를 위시해서 아프리카 대지구대와 같은 광대한 지역에서 용암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여기에서 분출한 용암의 90%는 곶자왈의 용암처럼 현무암인데 그 양도 엄청나다.

예컨대 후지산의 경우 지난 2000년 동안 두 번의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그 중 서기 864~866년의 첫 번째 분화 때 14억㎥의 용암이 분출했다. 이것은 605㎢ 넓이의 서울을 2.3m 높이로 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그러니 희소가치는 없는 셈이다.

용암에는 어떤 광물이 들어 있을까? 화산지형인 일본의 큐슈지방에는 금, 은, 구리, 안티몬 같은 광물을 산출하는 광산들이 꽤 많다. 그럼 제주도에도 이런 광물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광물들이 마그마에서 분리된 뜨거운 물인 열수가 암석균열 등에 침입해 주위의 암석과 반응하거나 냉각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것은 마그마에 여러 원소들이 녹아있기 때문인데 이 원소들이 냉각되면서 결정으로 바뀔 때 온도나 압력에 따라 다양한 광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원소광물 즉 원소주기율표에 기재돼 있는 원소가 단일체로 된 광물로서 금, 은, 황 등이 산출되고 있다.

금속원소가 산소와 접합하면서 만들어지는 산화광물로는 자수정과 주석 등이 산출되며, 그 외에도 탄산엽 광물인 백운석과 규산염 광물인 탕하원비석 등 다양한 광물이 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제주도에서 이런 경제성이 있는 광물은 발견된 적이 없으며, 현무암에는 더욱 이런 광물이 존재할 가능성조차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제주도에 있는 용암은 경제성으로서도 큰 가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생태문화 지켜낸 파수꾼

용암이 지니는 돌 자체의 자원 가치가 무시해도 될 만큼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다.

경관가치를 포함해 다양한 건축 또는 건설자재로서의 가치는 매우 높은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지하수함양지대로서 가치는 더욱 크다. 용암으로서의 가치는 앞으로 더욱 자세히 다루겠지만 용암동굴, 압력돔, 요철지형, 궤, 용암구, 부가용암구, 새끼줄구조, 용암수형, 화산탄, 송이, 용암원정구 등 수많은 지질자원 내지는 지질학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보존가치가 충분한 자원들이다. 하지만 이 속성들은 위에서 말하는 크기와 형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곶자왈을 보전해야 하는 필요성은 무엇 때문일까?

곶자왈의 요건이 암괴의 크기가 문제가 되는가, 구성하고 있는 암석이 아아용암이라야 하고, 지형이 요철이어야 하는가. 이런 것들은 예부터 제주인이 곶자왈이라고 불렀던 지역의 속성의 일부 아닌가.

최근에 제안하고 있는 이런 곶자왈의 정의들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어떤 지형을 지칭하는 지질학적 용어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사실 이런 용암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은 용암 자체의 보존 필요성이라기보다는 곶자왈이 품고 있는 생태 문화적 요소들을 지켜낸 파수꾼으로서의 가치로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앞으로 생명을 배제한 돌무더기가 왜 보존 대상이 돼야하는지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특별취재팀=한 권 정치부·고경호 경제부 기자,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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