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12. 여성혐오에 맞선 투쟁을 그린 영화

영국의 여성 참정권 인정 과정을 담은 영화 '서프러제트'중 한 장면.

이견 대립 속 차별적 처별의 대상으로 그려져
기본권 주장에 대한 강박적 억압의 부당 강조

패션의 용어 중에 '블루머(bloomers)'라는 게 있다. 블루머는 예전에 체조, 경마, 수영 등을 할 때 여자가 입었던 바지를 말한다. 미국의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Bloomer)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용어이다. 아멜리아 블루머는 미국의 패미니스트로서 1849~54년까지 월간 여성신문 '릴리 Lily'를 발행했고, 의상 개혁에도 관심을 쏟아 블루머는 신종 패션을 선도했다. 그녀가 개발한 블루머리는 옷은 무릎 위나 아래 길이의 품이 넓은 바지에 고무줄을 넣어 잡아 매도록 된 것을 말한다. 아멜리아 블루머는 1849년, 월간 여성신문 '릴리'를 통해 무릎길이의 헐렁한 바지 입기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 사회는 여성의 바지 입기를 허용하지 않았고, 반블루머파의 집회까지 열릴 정도였다고 하니 박장대소할 일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여자들이 바지 입은 것이 자연스러워졌을까? 여자가 바지 입는 게 자연스러워진건 최근의 일이다. 적어도 1970년 이후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66년 이브 생 로랑이 여성용 바지정장을 입은 컬렉션을 선보이기까지 여성에게 바지는 흉물이었다. 당시 프랑스에선 판탈롱법이라고 하여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는 법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옷 입는 것마저도 여성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하니, 여성에게 기본권 운운하는 것은 사치처럼 들릴 수 있겠다. 인류 역사에서 여성이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오명과 누명의 덫을 놓아 누군가를 음해하거나 죽음으로 몰아갈 때 '마녀 사냥'이라는 말을 하겠는가. 여성은 마녀였던 것이다. 

사전적으로 '마녀사냥(witch hunt)'이라는 말은 정치적·종교적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하여 화형에 처하던 일을 말한다. 1450~1750년에 이르는 시기 유럽 및 북아메리카 일대에서 행해졌던, 마녀(魔女)나 마법(魔法) 행위에 대한 일련의 재판 및 처형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여성에게 가한 마녀사냥은 흔하게 있었다. 그 대표적인 여성이 잔 다르크이다. 1431년 잔다르크는 프랑스를 정복하려던 잉글랜드 군에 맞서 영웅적인 승리를 이끌었으나 프랑스내란의 소용돌이 속에 이단으로 몰려 화형 당한다.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종교적 희생양이 된 것이다. 잔 다르크의 죄목은 '이단'과 '남장'이었다. 잔 다르크는 전투지휘를 위해 상의는 남성용 재킷, 하의는 반바지를 입었다. 물론 반바지를 고정시키는 끈을 20개나 둘러서 묶을 정도로 당시 여성이 갖추어야 할 의복의 예를 갖추느라고 했다. 결국 잔 다르크는 재판장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더불어 여성으로서 몸을 보이고 만 것에 대한 해명을 해야만 했다. 물론 결론은 화형이었다.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La Passion de Jeanne d'Arc'(1928)은 무성영화 황금기에 만들어진 칼 드레이어(Carl Theodor Dreyer)의 작품이다. 『잔 다르크의 생』을 쓴 조세프 델테이유(Joseph Delteil)와 칼 드레이어가 시나리오로 공동 각색한 작품으로 영국에서 재판과 고문, 화형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 영화의 미학은 분절된 몸 이미지에서 풍겨 나오는 감정의 깊이다. 인물들의 얼굴에 존재하는 잔주름들과 살결을 디테일하게 잡아내는 클로즈업, 로우 앵글 숏을 이용하여 심문자들을 위협적이고 흉물스럽게 보이도록 한 이미지 구성 전략은 관람자의 시선과 감응을 일으키는데 유효하게 작용한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마리아 팔코네티의 감정 연기는 배우와 관람자의 감정거리를 최소화시킨다. 그녀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진지함, 놀라움, 두려움, 비애감, 호소, 결연한 의지, 무기력감, 순진함…등은 보는 이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듦과 동시에 처연한 슬픔에 젖게 한다. 

'잔다르크의 수난' 중

영화는 잔 다르크(마리아 팔코네티 분)가 심판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재판관인 그리스도교 정통파의 신학자들은 그녀에게 남자 옷을 입은 죄를 추궁한다. 또한 신의 부름을받았다는 그녀 자신의 믿음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잔 다르크가 이교도성을 부인하자 재판관들이 고문과 회유를 감행한다. 국왕의 편지를 들이밀며 진실을 말하라고 종용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계략이었다. 결국 잔 다르크는 고문실로 끌려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 잔 다르크는 화형당하고, 이를 지켜보는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 군인들의 무차별적 처벌로 영화는 끝이 난다. 

1431년 프랑스에서 국민적 영웅 잔다르크라는 여성은 이렇게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종교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녀가 죽임을 당한 이유는 신이 자신 안에 있다는 믿음과 여자가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였다. 그것도 전쟁터에서 말이다. 

인류 역사에서 마녀사냥은 빈번하게 있어 왔고 현재도 유효하다. 권력자들이 제 권력을 유지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의견, 저항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자행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반하거나 종교적 신념, 정치적 이견에 대해서라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성평등 혹은 성소수권 주장 등에 대해서도 강박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소위 도덕적 공황상태를 이용,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죄를 뒤집어씌우는 행위 전반이 마녀사냥에 해당될 것이다. 이견에 대한 대립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필연적이며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공동체 전체를 뒤흔드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도 높은 억압은 더러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 기본권에 대한 주장에 대해 강박적으로 억압하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나 타당하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늘 위반해왔다. 영화 <서프러제트>(2015)가 그 증거이다.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벌어진 여성참정권 운동을 그린 영화다.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1920년대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년 ~ 1928)를 주축으로 하여 벌어진여성참정권 운동을 말한다. 에멀린이 활동하던 당시 영국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1928년, 모든 영국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가하는 국민 대표법이 통과되기까지 영국에서의 참정권 투쟁은 많은 여성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서프러제트' 영화는 1912년 런던의 한 세탁 공장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는 세탁 노동이다. 어느 날,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며 거리에서 투쟁하는 '서프러제트' 무리, 그 안에 동료 바이올렛이 있는 걸 보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족과 일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던 그녀에게 서프러제트의 시위,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묵묵히 참아 왔던 불합리한 현실을 목도하게 한다. 모드는 동료를 대신해 저임금노동자의 삶을 발표하게 되는 일을 계기로 좀 더 적극적으로 서프러제트에 개입, 결국 그녀에게 다가온 건 가족과의 이별, 경찰들의 구타와 감옥행이었다. 함께 투쟁을 하던 동료가 죽음에 이르는 등 참정권을 얻기 위한 투쟁은 참혹하기만 했다. 

영화에서 남성들은 말한다. "여성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균형 감각이 없어서 정치적인 일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고. 그것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은 남성 권력자들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여성이 투표할 경우 사회 근간이 흔들린다.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면 국회의원, 정부 관료, 판사가 될 권리를 또 요구할 것이다."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투표권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일 뿐이다. 여성에게도 자유와 평등을 위한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 또한 부당한 처우와 법에 대해 당당하게 철회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것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권리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남성 권력자들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저지했다. 기본권리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선 여성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처벌하였다. 

서프러제트를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그의 세 딸도 모두 참정권 투쟁으로 감옥에 가야만 했다. 가난만이 대를 이은 것이 아니라 감옥살이도 대를 잇는 여성의 삶이 있었다. 열악한 노동 조건, 성적 착취, 가난의 대물림 등으로 점철된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은 참정권 투쟁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 문제를 자각한 여성들이 먼저 발걸음을 움직이고, 이를 미디어가 알리고, 뒤따르는 많은 여성들이 힘이 보태져 결국 1928년, 영국은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가하는 국민 대표법이 통과되었다. 이를 주도한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국민 대표법이 통과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여성참정권 투쟁은 1881년에 뉴질랜드를 시작으로 2015년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그렇다고 세계의 여성이 자유롭고 평등해졌는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제도적 법이 바뀌었다고 현실법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물살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떠밀려오듯이 역사도, 진보도, 약자에 대한 시선도 앞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물살이 과거로 거슬러온다고 노 젖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법. 법이 밥이 되고, 혐오의 시선이 연대의 꽃을 피울 때까지 잔 다르크도, 모드도 종횡무진 복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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