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올해 '3·8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3월7일 새벽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소녀상 하나가 기습적으로 설치됐다. '두려움 없는 소녀상'이라 이름붙은 이 조각상은 키 130㎝, 무게 110㎏의 작은 몸이었지만 두 손을 양쪽 허리에 올려놓고 미국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의 월가를 상징하던 3.5t의 '황소상'을 당당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녀상은 당초 한달만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관광객 등의 큰 인기를 얻고 핫 포토존 이 되면서 뉴욕시는 내년 2월까지 소녀상을 월가에 세워놓기로 했다.

'두려움 없는 소녀상'은 한 투자자문회사가 여성의 날을 맞아 남성 중심의 월가에 경종을 울리고 여성들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취지로 만들었다. 소녀상의 명판에는 "여성지도력의 힘을 알아라. 그녀는 차이를 만들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유리천장은 1970년대 미국에서 여성 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986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기고문 제목에 '유리천장'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면서 대중화됐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세계 각국의 '유리천장지수'를 발표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유리천장지수'는 100점 만점에 25점으로 OECD 29개국 중 29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2013년 이후 4년 연속꼴찌다.

유리천장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한다. 무엇보다 여성과 남성의 능력 차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이 입사를 하더라도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느끼는 일이 많다. 어느 정도까지는 다같이 올라가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고위직으로 올라갈 때가 되면 '같은 조건이면 여성보다 남성'이라는 차별이 은연중에 나타나기도 한다.

여성에게 집중되는 출산, 육아 부담도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여성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지난해 결혼, 임신, 출산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다. 경단녀 즉, 경력단절여성들이다. 출산, 육아를 위해 직장을 떠났던 경단녀들이 다시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취업을 해도 대부분 단순직이나 임시직에 그친다. 설령 이전 직장에 복귀해도 가정과 일을 병행하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성들이 직장에서 높은 자리로 오르기란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우리나라 금융권이나 주요 기업 등의 여성 고위직 비율은 채 3%가 되지 않는다.

공공부문이라고 썩 낫지도 않다.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5급 이상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12.1%에 불과하다. 전체 지자체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이 34.2%에 이르는 것을 볼 때 적어도 너무 적은 수준이다. 3급 이상 고위직으로 가면 더욱 심각해서 6%뿐이다. 제주도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제주도의 5급 이상 여성 공무원 비율은 13.1%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에서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 장관 30% 시대가 열린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급 여성 공직자는 강경화, 김현미, 김은경, 정현백 장관과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5명이다. 여기에 김영주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새 정부 초대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은 31.6%가 된다. 역대 최대다. 이것이 단순히 대통령의 공약 이행이나 정부의 성평등 홍보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공공기관 여성 임원 확대 및 일반 기업의 성 격차 해소로 이어져 유리천장을 깨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지역에 검사장이나 국가 공공기관장 등으로 여성이 임명되면 언론에서는 사상 첫 여성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대서특필하곤 한다. 이런 일들이 결코 특별한 뉴스가 아닌 일상다반사가 되고, 여성들에게 의무적으로 비율을 정해 자리를 할당하는 것이 아닌 능력을 합당하게 평가받고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머지 않았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