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15. 젠더 폭력을 고발하다

영화 '노스컨츄리' 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불공평과 차별에 대한 저항을 다룬 작품이다.

불공평과 차별의 현실…당연한 저항에 박수를
뒤틀린 사회·상처의 순환, 수치 아닌 드러내기

최근에 남양주군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 사건으로 여성 피해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면서 이른바 '데이트 폭력' 문제의 실태와 그 심각성이 공론화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발생한 데이트 폭력건수는 4565명이라 하니 그 심각성을 알만하다. 급기야 정부 차원에서 내년까지 젠더폭력방지기본법(가칭)을 제정하고 다양한 젠더 폭력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폭력에 대한 불감증은 그 실효성에 의문부호를 제기한다. 

데이트폭력은 이른바 '젠더폭력'이라는 범주 속에 포함되는 폭력의 한 양상이다. 이른바 가정폭력, 성폭력, 성추행, 성적 비하발언, 데이트폭력, 스토킹, 온라인 성범죄 등이 젠더 폭력에 해당된다.

'마누라는 사흘에 한번 북어 패듯', '자식은 때리면서 키워야 한다'는 말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전해지듯 우리 사회는 폭력에 대해 지나치게 허용적이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대중의 인권감수성에 달려 있다. 폭력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느끼고 대처하느냐가 그 척도이다. 그렇다고 본다면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꼭 우리만이 아니더라도 젠더폭력의 문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돼 왔다. 대중들로부터 수많은 사랑을 받은 고전영화를 비롯한 드라마가 폭력 정당화의 기수 노릇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 부쩍 여성영화 상영 편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변화의 조짐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얼마나 폭력을 두둔하고 또 묵인해왔는가를 여성영화들이 고발하고 있다.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컨츄리'(2006)는 1984년 미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소송 승소 사건인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감독의 말을 빌리면, "허물없는 장난과 악의적 괴롭힘의 한계, 어디까지가 악의 없는 장난이고 어디부터가 성적 학대일까?"하는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넓은 어깨, 굵은 팔뚝, 거친 피부를 위하여!".

영화 속에서 여성 광부들이 외치는 건배사다. 미국의 미네소타 북부에서는 1975년부터 여성광부를 채용했다. 물론 1989년까지 여성의 비율은 30대1에 불과했다.

주인공 조시 애임스(샤를리즈 테론)는 남편의 폭력에 못이겨 친청으로 돌아온 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광부로 취직했다.

영화 '엘르'는 젠더폭력과 치유에 대한 고민을 다뤘다.

광산에서의 일은 고되고 힘들었다. 여자들을 밀어 내기 위해 무리한 작업량을 배정하는 등 부당한 대우도 많았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남자들의 성추행, 조롱 섞인 비하 발언, 이혼녀를 바라보는 부당한 시선, 사생활을 침범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였다.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온 딸에게 아버지는 "바람피다 들켰니?"라며 비아냥거린다. 아버지 친구는 "술 취한 김에 때렸을 거야"라며 남편의 폭력을 옹호한다. 직장의 남자동료들은 성적 비하 발언을 아주 대놓고 한다.

수많은 왜곡된 시선, 조롱은 조시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일과 사생활 모두에서 실패를 맛보게 된 조시는 변호사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 분)와 함께 성차별에 관한 '집단 소송'을 제기하기로 마음먹는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아무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끝까지 홀로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갈등의 대상이었던 가족, 친구, 동료들은 뜻밖의 동지가 되고, 결국 '최초의 직장 내 성폭력 소송 승소'라는 성취를 안겨준다. 

영화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 '파고'의 프랜시스 멕도먼드, '광부의 딸'의 시시 스페이섹 등 아카데미상을 받은 연기파 여배우 세 명이 온몸으로 펼쳐낸 열연이 빛난다. 그들은 스크린 속에서 여자답다기 보다는 인간다움, '넓은 어깨, 굵은 팔뚝, 거친 피부'에 더해 거침없는 연기로 젠더라는 편견의 벽을 허문다.

'젠더폭력은 특수하고 병적인 남자들이 불특정한 여성에게 저지르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병적인 남자의 짓으로 치부해버리면 답이 없다. 병이라는데 어쩌란 말이냐.

영화 '엘르'(2016)는 젠더폭력에 대한 우아하고 서늘한 복수를 펼치는 영화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서스펜스 스릴러로 범주화한다면 큰 오류다.

영화는 시종 '욕망', '여성', '묻지마 폭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과거와 현재',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긴장감 있게 넘나든다. 

'로보캅' '토탈 리콜'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폴 버호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젠더폭력에 대한 새로운 시선, 진실한 고백과 적극적 연대를 강조한다. 

주인공 미셸(이자벨 위페르 분)은 어느 날, 괴한으로 부터 성폭력을 당한다. 범인은 다름 아닌 앞집 남자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 미셸은 조용한 복수를 준비한다.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상황은 하나같이 부도덕하거나 진실하지 못하다. 아버지는 연쇄살인범이고, 애인은 그녀를 성적 도구로만 생각한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 아이 아빠가 되어 경제적으로 그녀에게 의존한다.

상처로 얼룩진 삶 속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지킨다. "수치라는 감정은 행동을 막을 만큼 강하지 않아".

자신을 둘러싼 폭력 앞에서 단호해진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폭력에 대항한다. 자신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친구에게  남편에게 나는 낯선 향기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드러내고 마주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냉정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하지만 카메라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처의 깊이를 객관적으로 드러낸다.

결말을 먼저 말한다면 영화에서 여성들을 유린한 모든 남성들은 모두 죗값을 치른다. 미셸의 아버지는 자살하고, 성폭력을 행사한 앞집 남자는 다시 한번 성폭력을 시도하려다 미셸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믿었던 친구의 배신을 알게 된 미셀의 친구 안나는 외도를 한 남편을 내쫓는다. 그렇다면 미셸과 안나는 어떤가. 둘은 우정을 회복하고 당분간 함께 지내기로 한다. 앞집 남자의 아내는 이삿짐을 싸고 나오며 미셸에게 말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어두운 영혼을 지녔었죠"라고. 시종 냉정하고 불편하지만 결론을 마주하면 결코 불쾌하지 않다.

어두운 영혼들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여, 죽지말고 살아내자!.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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