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17) 문명은 어떻게 여성을 빼앗았는가

토착민 향한 무차별적 폭력에 희생 강요
정신·육체적 학대 앞에 모두가 '피해자'

신문물 전파의 이면

G.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부엔디아 집안이 100년 동안 겪은 흥망사이다. 고향을 떠나 '마콘도'라는 곳에 정착한 부엔디아 집안은 집시들이 갖다 준 자석, 확대경, 얼음 등의 신문물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낀다. 집시들은 얼음을 만져보는 데도 돈을 내게 하였다. 두려움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부엔디아 가족은 돈을 내면서라도 얼음을만져보고 싶어 했다. 얼음을 만지고 나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다."라고. 

그들에게 신문물의 경험은 삶의 어떤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무분별한 개발을 서두르고, 금기시 하던 것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한 시장의 형성, 종교와 학교의 설립, 정부의 통제, 전쟁, 급기야 조상의 전설을 영원히 잊어버림으로 인해 '돼지 꼬리 달린 아이'를 낳으면서 부엔디아 가문은 몰락한다. 

신화 같기도 하고 역사 같기도 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인류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신화의 정신을 회복해야 함을 강조한다. 신화가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들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대지의 신에 대한 경외감, 보이는 것(물질)과 보이지 않는 것(정신)에 대한 동등한 믿음, 근친상간으로 상징되는 부도덕한 강간, 이상교배, 전쟁의 금지 등과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인류는 신화의 세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배반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은 침략과 전쟁을 일삼고, 종교와 교육의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해 왔다. 유럽의 제국주의 침탈은 이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사례이며,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종족과 생명체들이 죽어 갔고, 지금도 사라져가고 있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카리브해 연안이 그렇고, 하와이가 그 예이다. 

'오만'이 만들어낸 비극

솔베이그 안스팍 감독의 영화 '루이즈 미셸'(2009)은 여성의 시선으로 뉴칼레도니아 카낙 부족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영화이다. 영화의 주인공 미셸(실비 테스튀 분)은 프랑스 여성혁명가이다. 파리 코뮌을 지키기 위해 조직된 국민군에 가담하여 베르사유 국방정부군에 대항하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당한다. 1873년의 일이다. 
 1774년 제임스 쿡이 발견하여 자신의 고향칼레도니아를 닮았다 이름이 붙여진 뉴칼레도니아는 원래 카낙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1883년 뉴칼레도니아는 프랑스 정부에 의해 인공쓰레기 처리장으로 낙인찍혀 범죄자들을 그곳에 수용하였다. 미셸도 파리 코뮌 동지들과 함께 그곳에 수용되어 3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미셸이 유배지에서 발견한 것은 카낙 부족에 대한 제국주의의 무차별적인 폭력이다. 카낙 부족은 자신들의 터전에 외지군대가 들어오고, 사람들(범죄자)들이 들어오면서 심한 공포에 시달린다. 도망자들을 사살하는 군대의 총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웃음소리마저 그들에게는 공포였다. 아무리 이상적인 혁명 사상을 가진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행동은 무분별하고 무례하기 까지 하였다. 예를 들어 카낙 부족이 신성시 여기는 참마를 함부로 캐서 동료에게 선물하기도 하는 등 이들 땅에서 나는 것들은 자신들의 향유거리 혹은 소유물이 돼버리고 만다. 

"백인들은 카누를 타고 이곳에 왔어요. 그들은 우리 여자들을 시중을 들게 하고, 땅을 빼앗았지요. 백인들은 천국과 희망을 약속했지만 슬픔만 주었어요". 카낙 부족의 추장이 미셸에게 한 말이다. 미셸은 동료인 클레망소에게 편지를 쓴다. "국경은 결국 사람이 만든 거예요. 카낙 부족이 원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해요.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것을."이라고.

미셸의 편지는 카낙 부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또한 오만이다. 카낙 부족은 백인들로부터 무엇을 원한다기 보다 그냥 그들이 살던 방식 그대로 보존 되고 계승되기만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무단 점유한 백인들은 마치 미개인들을 계몽하러 들어간 사람처럼 그들을 대한다. 복음을 전파하고, 교육시설을 만들고, 너른 땅을 이용해 그들에게 필요한 식물을 재배하고, 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다. 토착민들은 그들이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노동에 동원되고 때에 따라서는 성적 노리개가 되거나 강제 결혼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도 모자라 흑인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정책화해서 토착민 여성들을 강제?감금하여 전 인류의 백인화를 추진하는 등의 몰지각한 행위를 저지른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가 <토끼 울타리>(2002)이다.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

"나는 '엄마'가 그리웠고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영화 '토끼 울타리'의 실제 주인공인 몰리 크레이그의 말이다.  이 영화는 1931년 호주의 서부, 지가롱 (Jigalong)에서 있었던 실화를 다룬다. 몰리(에블린 샘피 분)와 크레이시(로라 모나한 분), 데이지(티아나 산스부리 분) 등 세 명의 여자 아이는 영국 정부의 고위 관리인 네빌(케네스 브래너 분)에 의해 강제 연행 된다. 그가 야심차게 벌이고 있는 정책은 토끼 울타리 내에 사는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 여자 아이들을 가족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이었다. 명분은 미개한 혼혈인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져 나온 세 명의 여자아이들은 집단거주지에 머물며 영어로만 말을 해야 했고, 식사 때마다 유일신에게 감사 기도를 해야만 했다. '의무, 봉사, 책임'이라는 명분아래 수녀들은 폭행을 일삼고 도망쳐온 나온 아이는 수색자에 의해 곧바로 붙잡혀 왔다. 하지만 몰리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과감히 탈출을 감행한다. 1,500마일이나 되는 '토끼 울타리'를 따라 집으로 향하지만 끝도 없이 열린 사막의 길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호주는 190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원주민 강제 입양정책을 편다. 영화의 실제 인물인 몰리 크레이그도 그 피해자이다. 호주 정부의 백인화 정책에 의해 정부 관리와 기독교 선교사들은 원주민 여자 아이들을 부모 품에서 빼앗아 감금한다. 여자아이들은 백인 가정에 입양시켰고, 아이 중 상당수는 보육원이나 백인가정에서 성적ㆍ육체적으로 학대를 당했다고 한다. 이렇듯 유럽 제국주의의 우열분리 정책은 백인과 유색인종을 가르고, 이념과 감정마저 백인의 것으로 바꾸려고 하였다. 확실히 백인의 것으로 바꾸기 위한 최선책은 백인의 씨를 받도록 하는 거였다니 가히 엽기적이다. 문명은 그렇게 여성을 유린해왔다. 지금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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