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21. 시대와 성(性)의 금기를 넘보다

영화 퍼Fur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 일대기 그려내
재능 있어도 권위있는 남성에 기대야만 빛 보게돼

"사진은 비밀에 관한 비밀이다. 사진이 더 많이 말할수록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아는 것은 적어진다." 미국의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의 말이다. 그녀가 한 말은 사진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시도, 영화도, 삶도 그렇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 삶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그 만남은 어떤 비밀의 장소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마치 그와 나만이 아는 장소에서 서로의 비밀을 주고받는 듯한 느낌. 영화 <퍼 Fur>(2006)의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비밀 하나만 말해줄래요?". 비밀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영화는 거기서 툭 끊긴다. 그래서 뒷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 디앤 아버스는 누구인가. 그녀는 왜 기이한 사람들만 찍었을까.

영화 '퍼Fur'는 미국의 사진가 디앤 아버스(Diane Arbus, 미국, 1923~1971)의 삶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패트리샤 보즈워스의 책 <디앤 아버스: 전기>를 원작으로 각색한 것이다. 영화 <퍼>는 디앤 아버스의 일대기를 그릭나 역사적 사실을 다루지 않았다. '아줌마 디앤'으로부터 어떻게 '사진작가 디앤'으로 탈바꿈하게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그녀의 전환기적 삶 일부를 클로즈업 하고 있다.

'디앤'이라는 이름은 영화 <제7의 천국>(프랭크 보저지, 1927) 의 원작인 브로드웨이 공연에 나오는 여주인공 '다이앤'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다이앤은 상처받기 쉬운 여린 영혼이면서 동시에 씩씩하고 강인한 여성 캐릭터이다. 실제로 디앤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그 공연을 보고 '다이앤'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 뱃속 아이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의 삶은 '퇴폐적 우아함을 지닌 나르시시스트'라는 이중 이미지로 평가받는다. 다천재와 괴물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았던 사진작가 디앤 아버스.

사진사인 남편을 도우며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던 '디앤'(니콜 키드먼)은 어느날 파티에서 "당신은 뭘 하죠?"라는 질문을 받고 충격에 빠진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디앤은 가족 소개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거대 모피상이고, 남편은 아버지를 도와 회사광고를 찍고 있다고 소개하던 차에 그 질문을 받은 것이다. "광고 모델의 손톱도 깎아주고…이것저것 많이… "라며 얼버무리고 돌아와 그녀는 자신의 삶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갖게 된 것이다. 평온하지만 답답한 일상, 부유한 가정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막대한 부는 동물들을 죽여 그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들과, 가방, 목도리, 신발을 만들어 벌어들인 돈이다. 생명을 죽여 그것들을 몸에 걸치고 사람들은 부드럽다고, 이보다 행복할 수 없다고 떠들어댄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서 끝없이 켜지는 플래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화장에 똑같은 표정. 개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아 그것이 상품이 되는 세상. 디앤은 그런 세상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디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하수구가 막혔다. 하수구가 막힌 이유는 위층 남자의 머리카락 때문이다. 기이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라이오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원래 다모증 환자이다. 선천성 다모증으로 인해 전신이 긴 털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디앤이 라이오넬을 보는 순간, 묘한 흥분으로 자신의 가슴을 열어젖히게 된다.그것은 일종의 동일시에 의한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평소에 디앤은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는 여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들에게서마저.

디앤은 이웃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핑계를 대어 위층 나들이를 수시로 한다. 라이오넬을 찾아온 손님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이한 듯 슬픈 듯 행복하다. 그녀가 찍은 사진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 몽환적인 사람들, 기괴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볼 때 디엔은  딱히 뭐라 결정할 수 없는 감정들에 휩싸인다. 난장이, 거인, 나체, 쌍둥이, 벽돌공, 수류탄을 든 소년… 등. 그녀의 사진 속 괴이함, 비정상, 닮은 듯 다른, 슬픈 듯 행복한 표정. 그 사진들의 키워드는 '노출' 혹은 '폭로'이다. 가려진 사람들의 노출, 아름답고 괴이한 내면의 노출,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무관심에 대한 폭로, 획일성이 진리라고 평가받는 것에 대한 저항. 그것은 어쩌면 꽁꽁 싸매며 살았던 과거의 삶에 대한 극도의 수치심의 반로인지 모른다. 영화에서는 라이오넬의 질문이 그것을 자극한다.

라이오넬은 질문한다. "엘리베이터에서 해봤어요?", "왜 못 벗죠?", "교양인들이라 하는 사람들은 벗지 못하는 게 문제예요." 라이오넬의 질문은 디앤을 당황스럽게 하고, 동시에 자신의 자아를 들여다보게 한다. '나는 왜 벗지 못하는 것일까?'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로 확장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험난한 항해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디앤 아버스는 살아생전 세 번의 사진전을 열었다. 미국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비엘날레에 참가했으며 그녀의 회고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녀의 사진은기형이라는 이름으로 폄하 당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그들의 삶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내부에 잠재했던 예술의 씨앗은 뒤틀린 현실과 조우하면서 폭발적인 굉음을 일으킨다.

영화 '퍼Fur'를 감독한 스티브 세인버그(Steven Shainberg, 1963~ )는 말한다. "디앤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녀는 어른들의 세계 어딘가에 속한 신비롭고 흥미로운 존재였다. 그 사진들은 지금까지 내 시각적 상상력의 모태가 되어왔다."고. 스티브 세인버그가 그리고 싶었던 건 일개 예술작가의 삶이 아니라 그 안에 싹트고 있던 아티스트가 어떻게 내면을 예술의 새싹을 틔워 올리는 지였을 것이다. 어릴 적 삼촌의 친구였던 디앤에 대한 인상이 시나리오 작가 크레시다 윌슨(Erin Cressida Wilson)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만나면서 영화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명암을 만들어낸다.

온 몸에 털이 자라는 남자, 그는 태생부터 상처를 안고 태어났고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음지만을 따라다니며 살다 간다. 디앤이 보았던 것은 그가 몸에 새기고 있는 수치와 두려움과 경외의 '틈'이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기다리는 천형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디앤의 사진은 동굴이 비친 햇살과도 같았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평균율 또는 황금율을 근거로 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거인, 알비노 증후군의 여인, 난쟁이, 기형아, 성전환자들… .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과감히 무엇이 아름다움인가 묻는 것이 디앤의 사진들이다. '금기'를 넘어 정상적인 것들의 비정상적인 것의 구분을 희석시키고, 아름다움과 추함은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라는 것을 직시하게 하는 것이다. '상품'이 아닌 '사람'을 찍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작품인 '쌍둥이Twins'는 경매에서 25만 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어느 시대나 예술이 예술로서 온전히 인정받기는 어렵다. 예술인의 삶도 그러하다. 더욱이 여성인 경우에는 일과 양육이라는 중첩된 삶의 무게에 대중의 편견과 싸워야 한다는 무게가 더해진다.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권위 있는 남성에 기대어야만 빛을 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간신히 빛을 보게 되더라도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야만 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하여 무너지고 마는 경우는 허다하다. 까미유 클로델이 그렇고, 조르주 상드, 진 세버그가 그렇다. 그들은 모두 누구의 연인으로 통용되는 예술가들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싶었으나 끝내 제 이름을 갖지 못한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억울함을 죽음으로써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게 여전히 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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