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제주형 도시재생의 키워드로 3. 강원 정선 삼탄아트마인

'문화'라는 말을 골라 쓰기는 했어도 지금까지의 문화적 도시재생은 산업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도시재생 연구가 이윤 창출과 자산 가치 상승을 염두에 둔 산업화의 틀에서 연구된 까닭이다. 문화적 도시재생이라 해도 재건축과 재개발 중심의 주거 환경 개선을 우선하면서 공동체 붕괴라는 최악의 결론으로 이어지는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강원도 정선 삼탄아트마인은 사람들이 삶을 일구는 터전이란 의미의 '도시'를 말한다.

△ 문화 예술을 캐는 곳

산업 환경의 변화로 빚어진 도시 공동화 현상은 경제적 불평등 해소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각 지역이 가지는 역사적 특성과 장소성, 가치를 문화콘텐트로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이 지역민과 외부인의 협업으로 도시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대안으로 부각됐다.

정선 삼탄아트마인은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 시설을 다시 꾸며낸 문화예술단지이다. 삼척탄좌는 1964년 채광을 시작해 1980·90년대를 거치며 '동네 개도 1만원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가던 무연탄 생산지였다. 3000명이 넘는 광부들이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곳으로,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폐광되기 전까지 정선 지역을 먹여 살린 삶의 터전이었다. 폐광 후 급속도로 기울었던 도시는 정부의 폐광지역개발지원정책에 따라 
 '대한민국 문화예술광산 제1호'로 2013년 5월 부활했다. 이후 추가 준비 작업을 거치며 2015년 7월 그랜드 오픈했다. 삼탄아트마인(Samtan Art Mine)은 삼척탄좌의 줄임말인 '삼탄'과 '예술'(art)과 '광산'(mine)의 합성어로 '문화·예술을 캐는 곳'이란 뜻이다. 

'흔적과 소생'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폐광에 예술을 입히는 작업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삼탄아트마인은 4층 규모의 삼척탄좌 본관을 바꾼 삼탄아트센터, 장비를 수리하던 시설을 개조한 레스토랑 832L, 탄광에 공기를 불어 넣던 중앙 압축기실을 꾸민 원시미술박물관, 광원들이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사용한 권양기 시설을 이용한 레일바이뮤지엄 등으로 이뤄져있다. 폐광산 시설을 그대로 활용한 까닭에 이동 경로가 4층에서 1층으로 이어진다.

아트센터 4층은 레지던시 공간으로 예술가를 위한 장기 프로그램 외에 1박2일, 또는 2박 3일로 일반인이 예술 체험을 하며 머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층·2층으로 내려가면 탄광의 역사를 간직한 삼탄 뮤지움 자료실과 마인갤러리, 세계미술품 수장고를 만날 수 있다.

△오래지 않은 과거가 상품으로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 각 지자체 관련 공무원들의 벤치 마킹이 끊이질 않는다는 공간이지만 번듯하다기 보다 다소 불편한 것이 이 곳의 특징이다.

삼탄아트마인의 대표공간인 레일바이 뮤지엄은 광부들이 장화를 씻던 세화장에서 연결 통로를 따라가면 삼척탄좌에서 캐 올린 모든 석탄을 집합시키던 조차장을 그대로 보존해 조성했다.  지하 600m 수직 갱도로 들어가는 승강기, 석탄을 실었던 탄차, 인부를 나르던 인차, 업무상황판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심지어 깨진 유리창도 그대로 있다. 현재는 가동중지 상태지만 운영되던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던 석탄과 탄가루의 흔적들이 지난 시간을 압축해 저장해 놓은 듯 느껴진다. 

곳곳에 과거 치열했던 광산 마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삼탄 뮤지엄 자료실에는 당시 사용하던 구호물품과 장비운용시설, 재정기록부 등이 전시돼 있다. 마인갤러리는 광부들이 이용하던 화장실, 샤워실, 세탁시설, 장화 세탁실 등을 작가들의 손을 통해 예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꾸몄다. '손이나 옷에 탄가루가 묻을 수 있다'는 안내 문구나 녹이 슬거나 깨진 채 남아있는 시설물들이 하나의 전시물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 산업유산 기대감

이 곳의 모델은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이다. '라인강의 기적'의 발원지였던 졸페라인이 그랬듯 보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등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산업 유산적 성격은 고스란히 남겼다. 산업지대에서 관광·문화도시로 탈바꿈한 졸페라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이 곳 역시 조심스럽게 변화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삼탄아트마인이란 이름을 내걸기 까지 총 120억원(국비 77억원, 도비 10억원, 군비 33억원)등 예산이 투입됐지만 시작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랜드 오픈 후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2년여 고전을 하던 차에 '태양의 후예'촬영이 이뤄졌다. 폐탄광과 주변 지역을 고스란히 보존했던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태양의 후예'에서 지진 발생 후 유시진 대위(송중기)가 강모연(송혜교)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장면, 강모연이 무기밀매상에게 납치돼 고문을 당하는 장면,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우르크 발전소 내부 장면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마침 취재가 진행되던 지난 14일 인천관광공사의 해외 대형 여행사 팸투어단이 이 곳을 찾았다. 지난해만 해외 관광객을 포함해 13만명 가까이 '폐탄광'을 목적지로 골랐다. 특별취재팀=고 미 편집부 부국장 대우, 김지석 정치부 차장대우, 한 권 사회경제부, 한지형 편집부 기자

<인터뷰> 이상원 삼탄아트마인 상무

"'노다지'죠. 예전에는 검은 노다지(석탄)를 캤다면 지금은 문화 노다지를 캐는 곳입니다"

이상원 삼탄아트마인 상무의 도시재생론이다. 정리하면 새로 건물을 짓고 현대식 시설을 갖추는 것보다는 이전의 것을 살리며 '관계'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도시재생이란 얘기다.

지난 여름 성수기 동안 5~6㎏은 빠진 것 같다는 너스레에는 자부심이 깔려있다. 삼탄아트마인은 비산업적 도시재생 공간이다. 경제 성장을 감안했다면 실패의 쓴 맛을 봤을 일이지만 사람을 살게 하는 사회적 가치(문화)를 창출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받을 만 하다.

인간 중심의 도시재생과 연결해 이곳은 스스로 즐기고 누기는 기쁨과 사회적 목적을 위해 연대한다는 적어도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매출이나 고용지수가 지표가 되는 경제 중심의 도시재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상무는 "한해 강원랜드를 찾는 500만명 중 카지노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200만명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지난해 드라마 효과가 큰 것도 있지만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꼭 가봐야할 100선이라던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 등의 이미지도 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또 "이 곳에서는 버린다거나 버려진다는 것이란 말이 없다"며 "지역주민들의 문화 향유 공간으로 활용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상무는 "절대 쉬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에도 지자체 관계자며 이곳 저곳에서 전화가 잇따랐다. "반월·시화 공단이 있는 안산시 관계자들이 최근 자주 찾는다"고 귀띔한 이 상무는 "시대 흐름이라고는 하지만 한때 번성했던 곳이 버려지며 골칫덩이가 되는 상황이 늘고 있다"며 "새로운 쓰임이라는 것은 지역의 필요와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전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성급한 결정은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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