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 세계가 달린다 <3>핀란드 야르벤빠 고교

독특한 원형광장 구조 교사·학생 소통과 효율적 공간활용
학급·학년별 아닌 수강과목 선택해 '대학생처럼' 수업받아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교육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등학교의 무학년제와 학점제도 그중 하나다. 핀란드의 야르벤빠 고등학교(Jarvenpaa Lukio)는 바로 우리나라 '캠퍼스형 고등학교'의 모델이 된 학교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지게 하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자율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핀란드 교육의 모험을 지난 5일 야르벤빠 고등학교를 방문해 들었다.

△실용적이면서 편안한 구조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위치한 야르벤빠 고등학교는 독특한 공간구조로 유명하다. 

대개의 북유럽 학교들처럼 밖에서 보면 학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 학교 정면에는 학교명이 들어간 작은 간판과 소박한 출입문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진다.

학교 건물은 중심부에 천정까지 시원하게 뚫린 원형의 광장과 같은 로비가 있다. '아레나'라고 불리는 이 원형 로비 둘레를 따라 교실과 건물이 방사형으로 설계됐다.

아레나는 카페테리아처럼 꾸며져 평소 식사를 하거나 공연을 하기도 한다. 20분 가량의 깜짝공연이 벌어지면 이같은 구조 덕분에 학생들이 교실에서 한 걸음만 나와 각 층 어디서든 쉽게 무대를 볼 수 있다.

야르벤빠 고교의 내부 구조는 학생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야르벤빠의 자존심이자 교사·학생·학부모의 소통 공간으로, 학생들은 각 층마다 광장을 주변으로 배치된 책상과 소파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대화하며,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도 한다.

대학생같은 학교생활

교육과정도 건물 만큼이나 독특하다. 우선 30명 내외의 하나의 고정된 그룹인 학급을 없앴다. 학급 없이 어떻게 학교를 운영할까 궁금증이 들지만 대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졸업에 필요한 기간도 3년으로 고정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빠르면 2년, 늦으면 4년 동안 자신의 역량과 희망에 따라 졸업시기를 정한다.

학생들은 총 300개의 과목(course) 중 필수과목 47~51개를 선택하고, 나머지 원하는 분야에서 선택해서 모두 75개 과목을 들으면 졸업할 수 있다. 선택과목 개설은 교육당국의 간섭 없이 학교 스스로 결정한다. 

담임 제도도 없는 대신 학생 30명당 교사 1명 정도의 멘토가 졸업할 때까지 학생을 도와준다. 

학기는 우리나라의 2학기제와 달리 5학기제로 운영된다. 핀란드 대부분의 학교가 1년 수업일수 190일을 5학기로 나눠 운영하며, 일부 6학기도 있다. 각 학기(period)는 7주에 해당한다. 학생들은 대학생처럼 매 학기 개설과목을 수강신청하며, 1학년때 3학년과 함께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도 있다.

우리나라의 생활기록부 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와 비슷한 'Wilma'라는 프로그램을 쓰는데, 수강신청에서부터 수업 내용까지 기록된다. 17세까지는 학부모들도 내용을 볼 수 있다.

시험은 보통 학기 마지막에 실시해왔지만 현재는 중간중간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시험기간을 따로 두고 지필고사를 보는게 아니라 수행평가 등 수업과정에 평가하는 것이다. 또 점점 컴퓨터로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학생·교사 자율성 강조

야르벤빠 고교의 특징은 학생과 교사, 학교 운영 등에 높은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입학하면서부터 3개의 계획을 세운다.

75과목을 수강하기 위한 개인적 학습계획과 수능시험(matriculation examination)을 언제 어떻게 볼 것인지 고교 생활 초기부터 수립해야 한다. 또 대학 진학을 포함해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등의 인생 설계를 고등학교 후반기나 마지막 학기에 세우도록 한다.

계획은 희망 진로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윌마시스템으로 관리받으며 상담사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계획은 아니지만 과목을 정하고 시간표를 짜는데 활용되며,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제공하지 못할 때는 다른 학교에 보낼 수 있고, 수준이 높을 경우 대학에 보내는 등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특별한 학생의 경우는 강사로 활용하기도 한다.

전교생중 100명 정도는 직업계열 희망하기 때문에 1개 학기를 직업과정으로 구성하거나 스페인 등 타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수업받고 돌아올 수도 있다.

즉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하는 경험을 고등학생 단계부터 일찍 겪는 셈이다.

야르벤빠 고교는 이처럼 학생들에게 높은 자유를 주지만 교사들에게도 다양하게 과목을 개발하고 운영하는데 큰 자율성을 준다. 

마리야 리사 교장은 "지금까지 20년간 해왔지만 지금까지 교사들에게 수업외 업무를 시키거나 따지지 않았다"며 "교사들은 1년에 학교교육계획 보고와, 20쪽 분량의 학년말 학교자율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게 행정업무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김봉철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마리야 리사 야르벤빠고교 교장

"우리는 중학교같은 고등학교보다 대학교같은 고등학교를 추구한다. 이것이 고등학교 교육을 개혁한 이유다"

마리야 리사 레티니에미 (Marja-Liisa Lehtiniemi) 야르벤빠 고등학교 교장은 학교의 목표를 이처럼 설명했다.

마리야 교장은 "기존 클래스(학급)라는 개념은 30명 이내의 하나의 고정된 그룹으로, 이를 없애고 개인별로 자유롭게 원하는 수업을 듣도록 했다"며 "학생들은 필수과목 외에는 모두 관심분야나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수업을 듣기 때문에 어느 학교보다 수업 집중도가 높다"고 자부했다.

이어 "학생들은 300개에 이르는 선택과목과 필수과목중 과목을 골라 시간표를 짜는 과정에서 선택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동시에 배운다"며 "고등학생 정도면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을 성인처럼 대한다"고 강조했다.

야르벤빠를 비롯한 핀란드 고교 교육제도의 특징에 대해서는 3가지로 설명했다. 철저한 평등과 유연성·자율과 책임이다.

마리야 교장은 "평등은 단순히 학비를 국가가 해결해주는 개념이 아니라 불우한 가정환경·학습이 더딘 학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며 "유연성은 인문계 고교생도 가까운 실업계·예체능 학교나 대학과 연계해 학습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며, 자율과 책임은 개인 학습계획에 따른 2~4년 선택 졸업제도 등으로 설명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나아가 필수과목을 줄이고 선택과목을 늘리는 방향으로 핀란드 고교 교육추세가 변화하고 있다"며 "여러 교과가 함께 하는 융합교육과 프로젝트 수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학생을 돌보는데 필요한 보건교사와 심리학자·간호사 같은 인적 자원을 학교에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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