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25. 세기의 여성감독① 아녜스 바르다 편

문화에 도전하는 주체적 의지와 개방성 결과
사람들과 연대감 동지애 나누는 것 중요해

인류 역사에서 여성이 자기발언권을 가지고 역사의 주체로 당당히 나서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다. 또한 예술이 여성을 주체로서 다루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여성이 예술은 한다는 것도 어려웠을 뿐더러 예술가로서 당당한 지위를 획득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류시인, 여류화가, 여성감독이라는 호칭이 지금까지도 낯설지 않게 들리는 것을 보면 아직 갈 길은 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각 분야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활약상은 탁월하다. 그것은 예술가 자신의 예술정신, 즉 세계의 관습과 체제, 문화에 도전하는 주체적 의지와 개방성에 의한 결과이다. 또한 독자주체, 관람자주체들의 자각과 운동에 의해서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예술가들의 예술과 존재가치를 드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영화예술, 특히 여성영화감독에 대한 지지와 조명, 활약은 놀랍게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여성영화인 가운데 가장 국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아녜스 바르다(Agn?s Varda, 1928~)'일 것이다. 지난 2015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모습을 선보인 프랑스 '누벨바그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는 여성감독이다. 물론 그 전에 제3회 서울여성영화제가 마련한 '아녜스 바르다 특별전' 행사를 계기로 방한한 바가 있다. 서울과는 무척 가까운 프랑스 여성감독인 셈이다. 

벨기에 출신의 아녜스 바르다는 프랑스에서 누벨바그가 선보이기 전 이미 누벨바그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당대에 여성이 영화를 만든다는 게 흔한 일도아니었을 뿐더러, 그녀는 이미 사진예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성+사진+영화'적 요소들이 절묘하게 결합된 새로운 예술영화를 획득해낸다. 장르로서는 다큐멘터리, 극영화, 다큐멘터리적인 비평에세이 형식을 넘나들며 영화실제 상영시간과 극에서의 시간을 동일하게 구성하는 특이성도 선보인다. 그녀의 영화 키워드는 일상, 여성정체성, 동시다발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소위 '디렉터 시네마'의 기법은 그녀의 영화에서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수다를 떠는 카페 장면이 그 예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들이 영화사에서 뿐만 아니라 여성운동사에서 의미 있는 것은 여성이 여성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반성, 여성의 욕망,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폭력, 여성의 우정과 여성운동사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영화의 범주에 단연 앞장서고 있다. 우선,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를 보기로 하자. 

동선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트레팅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여성 가수 끌레오(코린 마르샹 분)의 오후 5시부터 7시가지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끌레오는 "미모가 있는 한 난 살아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가진 여자이다. 하지만 병원 진료를 받고 자신이 암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타로점에서도 그런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래서 애인이 바쁘다는 말에도 심통이 나고, 노래연습을 하다가 동료들의 말장난에 짜증이 난다. 

'아무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어'라는 생각에 거리로 뛰쳐나간다. 카페에 가 봐도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고, 거리에서 만난 '개구리 먹는 남자', '팔에 화살을 꽃은 남자', 어디론가 줄지어 가는 낯선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뭔가 불길함을 느낀다. 오랜만에 나체 모델을 하는 친구 라울을 만나고 그 애인의 작업실에서 코믹한 단편무성영화를 보고서야 조금 풀린다. 

끌레오는 라울과 헤어지고 나서 혼자 몽수리공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휴가병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친 김에 병원 진료 결과를 들으러 병원까지 동행한다. 결국, 의사를 만났고, 병은 심각하지 않은 상태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이젠 겁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하며 군인과 헤어진다. 

이 영화의 줄거리만 보면 한 여가수의 불안한 심리상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 트레킹이 흥미롭다. 또한 심리상태의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해내고 있고, 주인공과 대립되는 인물로서 여성 택시운전사를 등장시켜 주인공이 자신의 문제에 함몰되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는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영화 속의 영화를 통해 당대의 사회적 이슈들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 영화 속의 영화에 장 뤽 고다르, 안나 안나 카리나와 같은 당대 누벨바그의 중신 인물들을삽입하고 있다는 점도 이 영화의 새로운 미적장치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지적 영화로의 추구를 짐작할 수 있다. 

아녜스 바르다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를 통해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영화를 제작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이 성공을 위해서는 남성 스폰서와 미모 등이 절대적 가치라고 여기는 주인공을 내세워 이에 대해 반문하게 한다. 예를 들어 친구 라울의 대사를 통해서이다.라울은 셰익스피어 작품 『맥베스』의 한 구절을 읊는다. "아름다운 것은 추한 것, 추한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며. 이러한 대사는 우회적으로 여성의 성공은 미모라는 공식에 일침을 가하는 우회적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병원 진단에 대한 지나친 염려증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지를 묻고 있다. 물론 그 기저에는 여성의 몸이 상품화되는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아녜스 바르다의 또다른 영화 '방랑자'는 모나(상드린 보네르 분)의 방랑생활과 죽음과 관련한 이유를 캐묻는 영화이다. 겨울날, 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농촌의 도랑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 여성의 이름은 '모나'이며,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 방랑의 여정을 그녀와 만났거나 함께 지냈던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달한다. 

관찰자로 읽어낸 사회적 욕망

인터뷰에서 남자들은 말한다. "미친 여자인 것 같았어요.", "방랑하는 여자들이란 뻔하죠. 남자 밝히는 게.", "게으르고 더러운 여자였어요."라고. 반면 여자들은 "나도 자유를 원해요.", "천사처럼 자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녀가 왜 방랑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출신이 어디인지, 무엇을 하는 여자인지는 영화에서 생략한다. 단지 방랑생활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그들의 욕망을 다룰 뿐이다. 

모나는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일탈을 즐기기만 하거나 노동을 기피하거나 인간관계에 대해 냉담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특히 나무를 대하는 모나의 태도에서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그녀는 여러 사진 중에서 유독 나무 사진에 시선이 머문다. 나무가 은유하는 것은 강한 생명력, 뿌리내리고 싶은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는 이런 모나의 심상을 대신하기 위해 그녀의 걸음보다 앞서 가거 머물거나 오래 자주 멈춘다. 

방랑생활은 당연히 평탄치 않았고, 갈수록 피폐해져가기만 한다. 마음을 주었던 다비드와의 동거, 포도나무를 자르는 노동자 아순과의 관계에서는 일시적으로 사랑과 위안을 느꼈으나 모모두가 허탕이 되고 만다. 집이 불타거나 "친구들이 여자를 싫어해"라는 이유로 함께 머물지못하는 등. 결국 나모는 농가의 도랑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영화는 황량한 들판의 풍경들을 사진처럼 담아낸다. 방랑하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선명하게, 모나의 위치는 주변으로 내몰면서 방랑하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 심리적 상태를 대변해준다. 아무리 자유를 찾아 길을 나섰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오만방자할 수밖에 없으며 하나의 성적 먹잇감 혹은 가지고 놀다 버리는 장난감 정도로 취급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네스 바르다의 카메라적 시선은 그러한 여성에 대한 동정 혹은 연민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영화 '방랑자'를 만들고 15년 후 '이삭 줍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제는 정치, 철학, 사회문제 등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큰 주제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어떤 느낌을 나누고 연대감과 동지애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아녜스 바르다가 영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의 시사회를 마치며 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의 작들은 어둡고 음침하기 보다는 따뜻하고 화려한 색감을 쓰고 있다. 초반작품들에서 무겁고 다루어지고 있던 것들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아마도 연륜이 주는 지혜라 할 수 있기도 하거니와 즐거움과 유머의 미학이야말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통찰의 결과가 아닐까. 어쨌든 아흔을 앞둔 여성감독 아녜스 바르다, 세상과 스스로에게 갇힌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었듯이 그녀 또한 변화하는 세상으로부터 여한 없는 보람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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