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 용암숲 곶자왈 자연유산으로] 16. 밤일엽

곶자왈을 형성하는 기반인 용암은 식물 분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안덕-한경곶자왈지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밤일엽.

밤일엽, 안덕-한경곶자왈에서만 서식 흥미
바위 겉이나 나무줄기·바닥에 붙어서 자라
투수성 높아 건조한 아아용암 지대에 분포

△특정지역 서식 '미스터리'

제주도 서부지역 곶자왈에서만 자라는 식물종이 있다.

사례를 들자면 꽤 많지만 대표적인 종으로 밤일엽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안덕-한경곶자왈지대에서만 자란다는 점에서 흥미를 끄는 종이다.

왜 다른 지역에서는 자라지 않고 서부지역 곶자왈에 한정해서 자라는지는 미스터리다.

밤일엽은 고란초과에 속한다.

2007년 송관필 박사의 학위논문 '한라산 동서사면 상록활엽수림대의 식물상 및 식생'은 제주도의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식물분포상황을 상세히 비교했다.

그 중 고란초과의 식물 13종이 이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여기에서 동부지역에만 분포하는 종은 5종, 서부지역에만 분포하는 종은 3종이었다. 나머지는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에 공통으로 자라고 있다.

분포가 특정지역에 편중하는 종이 꽤 여럿 있는데 고란초과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수분조건에 민감한 착생식물이라는데 있다.

우리나라에 고란초과식물은 24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제주도에는 22종이 있다. 이들 모두가 착생식물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 과에 속하는 1600여종이 거의 모두 착생식물이다.

착생식물이란 바위나 나무겉에 붙어 자라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다른 물체에 붙어 자라면서 공중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양분도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물에서 얻는다. 그러므로 수분의 양과 계절적 분배에 민감하다.

△수분조건 직접적 영향

특별히 양치식물에서 수분조건은 분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양치식물은 수정을 하는데 반드시 액체 상태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꽃피는 식물이 바람이나 곤충이 매개체가 되는 것과는 양상이 다른 것이다.

안덕-한경곶자왈지대에 자라는 밤일엽은 주로 바위 겉에 붙어 자라고 있다.

다음으로는 나무줄기에 붙어 자라거나 어떤 경우는 지표면을 기기도 한다.

이 종 외에 같은 과에 속하는 종으로 주걱일엽과 우단일엽이라는 종이 있는데 이들도 서부지역에만 분포하는 종들이다.

이 3종은 이처럼 좀 더 건조한 지역에 적응해 자라는 종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서부지역에 한정해서 자라는 주걱일엽은 중국, 타이완, 일본에도 자라는데 제주도 서부지역 곶자왈은 밤일엽과 함께 이 종들의 북방한계선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 풍부한 지역서 자라

동부지역에 한정해서 자라는 종으로는 손고비, 큰고란초, 고란초, 산일엽초, 창일엽 등이 있다.

이 종들은 구좌-성산곶자왈지대와 교래곶자왈지대에 비교적 흔히 자라는 종들이다.

그 외로는 효돈천계곡, 탐라계곡 둥 한라산 남북사면의 계곡이나 한라산 고지대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종들이 포함돼 있다. 모두 물이 풍부한 지역에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도 물론 대부분이 따뜻한 기후대에 분포하는 종들이지만 서부지역 곶자왈에 분포하는 종들에 비해서는 분포범위가 좀 더 넓은 특성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산일엽초는 우수리, 시베리아까지 고란초는 히말라야까지도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종은 국내에선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는데 그 중 고란초는 충남 부여 고란사의 고란초가 유명하다.

밤일엽처럼 건조한 환경에 적응한 식물이 투수성이 높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하는 아아용암지대인 안덕-한경곶자왈에 한정 분포하는 것 역시 곶자왈을 형성하는 용암의 유형이 식물분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게 아닐까.

특별취재팀=한 권·고경호 사회경제부 기자,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고란초 명칭 유래
"닭이냐 달걀이냐"

명명 과정 여전히 의문
절명 차용 자연스러워

고란초라는 명칭은 고란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고란사라는 절 이름은 고란초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이거야말로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가 아닌가.

고란초(皐蘭草)는 '고;란초'인가 '고란;초'인가.

고란사가 이 풀 이름에서 유래했다면 '고란'이 어근일 것이다. '고란이라는 풀'의 의미에서 고란초라는 식물 이름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거다.

만약 '난초'가 어근이라면 '고'라고 하는 난초거나 '고'가 물가를 뜻하므로 '물가에 자라는 난초'라는 뜻일 거다.

「한국의 속 식물지」라는 문헌에는 총 88종의 난초 종류가 나온다.

그 중 한란, 풍란처럼 '~난' 또는 '~란'으로 끝나는 이름과 방울난초, 은난초 등 '~난초'로 끝나는 이름은 각각 40여 종에 이르지만 이 중 고란초는 없다.

난초 종류 외로는 자란초, 엽란, 나도사프란, 문주란, 군자란, 용설란 등이 있다. 그리고 고란초가 있다.

이 식물들의 공통점은 뚜렷한 게 없어 보인다. 중국과 일본에도 고란이나 고란초라는 식물명은 없다. 우리가 말하는 고란초도 다른 이름으로 쓰고 있다.

부여 부소산에 있는 고란사라는 절은 한민족대백과에 따르면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된 것을 고려시대에 백제의 후예들이 중창했는데, 그 뒤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기 때문에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식물이름은 처음 학계에 보고한 학자가 붙이게 된다. 이 때 우선 그 식물이 자라는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을 채용하게 된다. 그런 이름이 없으면 그 식물의 산지나 외부형태 등 그 특징을 이름에 포함시켜 짓는다.

식물학에서 고란초에 대한 첫 기록은 1936년 정태현과 임태치가 쓴 「조선산야생약용식물」이라는 문헌이다.

이후 꾸준히 나타나지만 이 이름이 고란사라는 절 이름에서 차용했다는 경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문헌은 없다.

그런데도 지금의 많은 식물관련 문헌에 '고란사 인근 바위에 살기 때문에 고란초라고 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1926년 5월 19일 동아일보에는 '고란사는 부소산 북록에 있는 백제고찰로 암석사이에 고란초가 발생한다고 해 고란사라 이름 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한편 조선후기 학자로 이사질(李思質)이 남긴 시에 '산유화여! 고란초여! 고란은 길고 푸르고 메나리는 붉네(이하생략)'라는 구절이 있다. 이 시는 적어도 1700년대 후반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고란초라는 명칭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절 이름을 불교와 어떤 관계도 없는 풀의 이름으로 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스럽다.

식물의 이름을 인근의 절 이름에서 차용했다는 게 좀 더 자연스런 게 아닐까.

중국의 난주(蘭州)는 고란산(皐蘭山)에서 유래했다고 하고, 그 산에는 고란사(皐蘭寺)를 비롯해 많은 불교유적이 있었거나 남아있다고 한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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