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 용암숲 곶자왈 자연유산으로] 17. 용암 함몰구

사진은 용암 함몰구의 식생으로, 지하의 찬 공기와 지상의 더운 공기가 만나 김이 서린다.

조천 거문오름 중심으로 곶자왈 내 17개 확인
생달나무, 가는쇠고사리, 한들고사리 등 분포
지사적 측면의 연구재료로 중요한 의미 가져

△북방·남방계 기준 모호

곶자왈은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인터넷을 통해 곶자왈을 검색해 보면 이와 같은 설명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져서 처음 이 말을 누가, 무슨 뜻으로 썼는지 알 수조차 없게 됐다.

식물분포를 설명하면서 사용하는 '북방계'와 '남방계'는 무슨 뜻일까. 짐작하기엔 아마도 주로 추운 지방 즉 북쪽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를 북방계 식물, 주로 더운 지방 즉 남쪽에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를 남방계 식물로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지금 이와 같이 종을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누는 기준이 아주 모호하다는 것이다.

공존이라는 말의 뜻도 모호하기는 매 한가지다.

기생이나 공생은 있어도 공존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공존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거나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이 공존과 같은 것인지는 역시 의문이다.

생물학에서 이런 말들을 찾기는 어렵다.

이런 용어를 사용할 때는 그 뜻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그저 막연히 그렇지 않을까 정도로 지레 짐작해 써 버리면 혼란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빙하기 잔존식물중 하나인 한들고사리.

△빙하기 잔존식물

곶자왈에는 용암 함몰구라는 지형이 있다.

용암류가 지형 경사를 따라 흘러가다 표면이 먼저 식으면서 용암류의 표면에 0.3~1m 두께의 얇은 암석층을 만드는데, 계속해 분화구로부터 용암이 공급되면서 용암류는 굳어진 용암표면의 내부로 흐르게 된다.

그러다가 두께가 얇은 부분에서 용암류가 들어 올려지면서 깨지고 하부에 큰 공동이 생긴 곳에서는 대규모로 무너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간이 용암 함몰구다.

용암 함몰구는 거문오름을 중심으로 한 곶자왈에서만 해도 17개가 확인되고 있다.

이들 용암 함몰구에 자라고 있는 식물 중에는 생달나무와 가는쇠고사리 같은 아열대성, 한들고사리와 좀나도히초미 같은 한대 또는 고산식물들이 섞여 있다.

한대 식물들은 백두대간의 고산준령과 만주, 시베리아 등에 분포하는 것으로 정확히 표현한다면 빙하기 잔존식물들이다.

△온도 분포로 혼생

이와 같이 같은 공간에 아열대성과 한대성 식물들이 혼생하는 것은 이 함몰구의 온도분포 때문이다.

이 내용은 김찬수 등이 2011년도에 제주녹색환경기술센터에 제출한 보고서에 포함돼 있다. 표본으로 분석한 용암 함몰구는 직경 50~60m, 깊이 25~35 m다.

이러한 함몰구들의 온도변화를 층위별로 조사한 결과 지표면의 한 여름(6~8월) 온도는 23.1도인데 비해 함몰구 바닥은 8.4도 정도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제주시의 겨울(12~2월) 평균기온 6.7도보다 다소 높은 정도의 기온이다.

또 용암 함몰구 내부는 지하에 공기가 끊임없이 유입되기 때문에 일 년 내내 거의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함몰구의 지표면과 바닥 간의 14.7도나 되는 온도 차이는 해발고도로 볼 때 2200m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것은 지하로 1 m 하강 시마다 온도는 0.59도가 떨어져 해발고도로는 대략 90m 상승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였다.

실제로 식생조사 결과 함몰구 바닥에는 한들고사리, 좀나도히초미, 좀고사리, 골고사리 등 백두산 이북에 주로 분포하는 한대식물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종 잔존

이렇게 좁지만 국소적으로 일찍이 넓은 분포권을 가졌던 식물이 환경조건의 변화 등에 의해 분포권을 이동 축소해 현재 한정된 좁은 지역에서만 생육하는 현상을 잔존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빙하시대의 한랭기에는 그 이전에 극지부근에 있었던 식물이 분포권을 남하시켰으나 후빙기의 온난화에 따라 고산대나 풍혈지 그리고 찬물이 솟는 못에서만 살고 있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원 또는 종 다양성 측면에서 가치를 지니지만 지사적 측면의 연구재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곶자왈의 경우 북방계와 남방계의 식물이 공존한다기보다 제주도를 포함하는 같은 식물구계 내에서 지사적 과정을 공유하는 다양한 종들이 잔존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취재팀=한 권·고경호 사회경제부 기자,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

식물구계로 알아보는 제주의 식물상

'전북식물구계계' 속해
소나무·밤나무 등 대표

식물구계는 세계 각지의 식물상을 형성하는 식물 종을 비교해 각각의 특징을 갖는 몇개의 지역으로 분류했을 때의 각 구역을 말한다.

식물구계는 생태적인 기후조건보다도 그 지역의 지사에 영향을 받는 곳이 많다.

예를 들면 같은 열대강우림이라도 말레이시아와 남아메리카에서는 식물상의 구성요소가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별개의 식물구계로 취급된다.

식물구계의 구분은 생물학사전(아카데미서적 간)에 따르면 지구상 전체의 육지에 대해 전북, 구열대, 신열대, 오스트레일리아, 케이프, 남극 등 6개의 구계계로 구분한다.

우리나라는 전북식물구계계에 속한다.

이 식물구계계는 열대를 제외한 북반구의 대부분을 포함하며, 소나무, 버드나무, 밤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대표된다.

식물구계계 속에는 다시 구계구로 세분한다.

전북식물구계계는 북극, 유럽-시베리아, 지중해, 흑해-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인도, 북아메리카태평양, 북아메리카대서양, 그리고 우리나라가 포함돼 있는 중일식물구계구의 8개의 구계구로 나뉜다.

제주도의 경우 특히 곶자왈을 포함하는 저지대 상록활엽수림대는 전북식물구계계의 남단에 위치해 구열대식물구계계의 요소도 다수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속한 전북식물구계계 중에서도 중일식물구계구는 아시아동부의 남쿠릴, 남사할린, 흥안령 이동의 중국동북지방, 한반도, 일본, 중국 동부, 서남부에서 히말라야회랑을 지나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이 해당한다.

면적이 넓고 세게 최고의 산지를 가지며 지형적으로 생육환경이 다양하고 빙기에 빙하활동이 인접한 유럽 및 북아메리카에 비해 훨씬 소규모로 머무는 것, 거기에다 중국 서부부에 님북방향의 산골짜기가 발달해 기온 저하 대에도 많은 식물이 남북 이동을 쉽게 한 점 때문에 고등

식물의 종류에 잔존과 분화를 초래해 많은 종류와 고유속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제주도의 경우 이 중일식물구계구와 공통으로 아열대림에 녹나무속, 난대림에 구실잣밤나무, 떡갈나무, 후박나무 등의 여러 속, 낙엽수림은 벚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 소나무속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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