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30. 여성영화를 욕망한다

영화 '비밀은 없다'.

여전한 사회적 약자...편견 어린 시선 거둬야
최근 영화속 여성 삶의 주체로 가능성 감지

최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김기옥 원외협 위원장에 대한 '싸가지'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예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여성들을 자극하는, 여성적인 영화는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직도 여성은 사회적 약자이고, 여성이 삶의 주체로 서는 건 공동체의 이익일 될 것이며, 약자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을 거둘 때 그 사회는 진정으로 민주화된 사회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에서의 여성에 대한 시각은 불평등하다. 영화 속에서 여성은 성녀이거나 악녀이거나, 배반과 질투의 화신이거나, 남성권력의 보조자 혹은 조력자이거나 정도에 그치고 있다. 삶의 주인공으로 여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서의 여성을 다루는 전략이 진화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2015), 이언희 감독의 '미씽:사라진 여자'(2016)와 같은 영화들에서 일말의 어떤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비밀은 없다>는 범죄 스릴러 영화다. 스릴러 영화에서 여성의 위치는 언제나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조력자 역할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은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주체성을 확보한다. 

국회입성을 노리는 '종찬'(김주혁 분)은 선거 15일을 앞두고 딸이 실종된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종찬의 아내 '연홍'(손예진 분)은 딸의 흔적을 찾아 추적한다.선거에 집착하는 남편과 딸을 포기할 수 없는 아내 사이에 균열이 일고, 딸이 남긴 단서와 흔적에서 예기치 않은 진실을 맞닥뜨리는 '연홍'. 영화는 플롯의 창의적인 연결, 충격과 감성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섬세한 연출에 힘입어 관객을 흡입하는 탁월성을 보여준다. 마치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2005) '마더'(봉준호. 2009)의 분위기를 연상케한다. 물론 딸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모성애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성이 안고 있는 문제의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와 여성, 즉 인간이 갖는 솔직한 감정을 감추지는 않는다. 질서와 혼돈, 행복과 의심과 이성과 광기의 극한을 넘나드는 감정연기를 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어쩌면 한국 여성영화의 대표명사라 할 수 있는 박찬욱 감독의 각본 참여가 이끌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

'미씽:사라진 여자' 또한 여성의 모성애에 기대고 있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다. 잘 만들어진 영화란 시나리오의 완성도, 카메라 기술의 진화, 편집의 능력을 포함한 개념이다. 더욱이 엄지원과 공효진을 엮어냈다는 것은 충무로 영화의 인적자원을 최상으로 동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뼈대만 보면 유괴사건을 다룬 서사다. 워킹맘 지선(엄지원 분)은 어느 날 보모 한매(공효진 분)와 딸 다은이가 사라진 것을 안다. 지선은 이 사실을 뒤늦게 경찰과 가족에게 사실을 알리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양육권 소송 중 일으킨 자작극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한매를 찾는 일이 급선무인 현실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한매와 관련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들. 결국 한매의 정체가 밝혀진다. 본명은 '김연'이다.그녀는 '매매혼'을 당해 한국에 온 여성이다. 그녀의 부모는 돈을 받고 한국으로 그녀를 팔아버렸다. 그녀의 몸은 하나의 물질덩어리인 것이다. 한국에 팔려온 그녀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시부모의 강요에 시달린다. 땋을 낳은 그녀는 남편과 시부모의 폭력에 시달리고, 딸은 병을 앓다가 죽는다. 그 공간에 지선이 있었다. 딸을 죽게 한 의사의 부인이 지선이었던 것이다.  지선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이혼녀로 생계와 육아를 홀로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한매를 보모로 들였던 것이다. 적과의 동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로의 사정이 여성으로서 많은 부분 공감대를 이루었기에 둘은 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낸다. 그런데 한매가 배신한 격이다. 이언희 감독은 말한다. "처음에는 정말 다르게 보였던 두 여자가 결국에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외모, 처한 환경 등 모든 면에서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같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범죄 스릴러를 그리고 싶은 게 아니라 여성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누가 죄인인가를 찾는 것에 몰입 하기보다 각각의 캐릭터, 감정에 집중하게 한다. 예를 들어, 카메라 렌즈의 사이즈를 달리 함으로써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지선은 좁은 망원 렌즈로, 비밀을 간직한 '한매'는 심도가 깊은 광각 렌즈를 사용하면서 두 캐릭터의 감정 결을 포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선과악의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스토리에 승부를 걸어서는 안된다는 감독의 윤리적 책임감 때문이다. 적어도 영화가 예술이 될 수 있으려면 어떤 이데올로기, 특정 신념이나 가치를 강화하거나 교육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과 악의 이분법을 깨뜨리는 혼란스런 도구여야 한다. 그것은 영화가 예술로서의 존재이유이다.  '비밀은 없다',  '미씽:사라진 여자' 두 편 모두 '모성애'를 바탕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당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가부장제사회는 여성의 목소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남성 권력의 목소리 주변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하나의 소음에 불과하다. 삶의 주변부에서 여성이 위치하려면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생계와 양육, 멸시와 편견을 감수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피해자 진술을 하더라도 주체성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미씽 : 사라진 여자'에서처럼 이혼한 여성 지선의 목소리를 경찰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한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픈 딸을 치료하러 병원에 갔을 때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고 한다. 보호자는 아빠만 될 수 있는 것처럼. 

영화는 이런 두 여성의 목소를 담는데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엄마로 산다는 것,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 자신의 이름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생각하게 한다. 표면적으로 서로 다른 지위를 가진 여성일지라도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를 안고 있고, 비슷한 처지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연민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감싸게 한다. 비로소 영화가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영화가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건 말하는 자와 보는 자의 동일시에 성공했을 때이다. 한마디로 '너나 나나 사는 건 똑 같다'는 동등한 처지에 대한 인식을 보여줄 때이다. 지선이든 한매든 세상이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다는 것을.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영화에게 거듭거듭 박수쳐주어야 한다는 것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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