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었다. 유럽문화의 중심지, 유행의 첨단을 걷는다는 프랑스 파리의 시가지 한복판에서 느끼는 나른함이라니.

 제주의 신화에 대한 강의를 의뢰 받고 유럽에 갔을 때였다.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잔뜩 별러서 들른 파리는 왠지 모르게 활기가 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도시 곳곳에 중세기부터 내려온 웅장한 문화유산들이 남아있고 거리에 즐비한 식당마다 관광객들이 북적거리고 있다.그리고 뭐니뭐니해도 파리가 아닌가. 그런데 왜 자극이 없는 것일까.

 한참 거리를 살피고 난 후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식당과 호텔이었다.그리고 돈을 교환할 수 있는 작은 환전소들,블록마다 한 두 개씩 있는 섹스숍,선물가게·수퍼마켓이 대부분이다.컴퓨터통신기기를 판매하는 곳이 드물다.더욱이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입하는 ‘PC인터넷방’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다.악을 쓰듯이 노래를 불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노래방도 없다.

 이들은 안주하고 있는 게 아닐까.우리의 회사들이 부도내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회사원들이 직장에서 내쫓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쓸 때 이들은 여유있는 미소를 띠고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데 만족하고 있는 게 아닌가.그렇다면 우리가 이들을 따라 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난 연말 타임지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수는 1천만을 훌쩍 넘어섰다. 홈트레이딩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비율도 40%가 넘어 세계1위의 인터넷주식시장이 됐다.인터넷검색엔진인 ‘야후 코리아’의 하루 접속건수는 1400만회를 돌파,프랑스뿐 아니라 서유럽전역의 ‘야후’접속건수보다 많다는 것이다.

 정보산업의 약진은 아찔할 정도다.이들 업체 위주의 코스닥시장은 주목을 받기 시작한지 1년여만에 하루 거래액이 거래소시장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벤처기업의 주가총액은 대기업을 능가했다.정부일각에서는 벌써 산업구조 개편에 관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기업들이 그만큼 성장을 한 것일까?규모만 키우다가 결국 망해버린 대기업들처럼 허우대만 커지고 실속은 없는게 아닐까.대표적 인터넷 포털업체인 ‘다음’이나,가장 유망한 소프트웨어업체중 하나인 ‘새롬기술’의 주가는 액면가 5천원기준 27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그러나 정작 그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영어변환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인터넷이라고 하면서도 정부기관이나 일부 특급호텔등을 제외하고 한국의 사이트들은 대부분 한글로만 서비스하는 수준이다.인터넷이라기보다 차라리 ‘도메스틱넷’이나 ‘로컬넷’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우리는 빌 게이츠가 말한 이른바 ‘미래로 가는 길’의 어느 언저리에 서 있는 것일까.희망과 우려가 교차한다.<고대경·경제부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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