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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뛰어놀던 그때로 돌아가 실컷 울고 싶다"
고경호 기자
입력 2018-04-01 (일) 13:25:54 | 승인 2018-04-01 (일) 13:27:44 | 최종수정 2018-04-01 (일) 14:42:39
제주4·3연구소는 지난 30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70년 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을 주제로 제주4·3 70주년 기념 '4·3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사진은 이삼문씨의 증언 모습. 고경호 기자

제주4·3연구소, 지난 30일 4·3증언본풀이 마당 개최
송복희·이삼문·양농옥씨, '비극의 한' 서럽게 꺼내놔
4·3 피해 고향 떠나야했던 생존자들의 삶·아픔 공유

제주4·3의 광풍 속에 바다 건너 또 다른 나로 살아야 했던, 광기 서린 학살의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괴로워했던 이들이 어렵게 고향을 찾아 수십년간 간직해 온 비극의 한을 서럽게 꺼내놓았다. 이들에게 4·3은 결코 잊을 수도, 치유될 수도 없는 상처이자 현재에도 진행 중인 비극의 역사다.

# 송복희씨 "참혹한 기억…고향 못가"

제주4·3연구소는 지난 30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70년 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을 주제로 제주4·3 70주년 기념 '4·3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올해로 열일곱째를 맞이한 이날 증언본풀이에는 16세 때 4·3을 겪고 일본으로 밀항한 송복희씨(87·여)와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이삼문씨(77), 지금도 생생한 학살의 기억을 품고 있는 양농옥씨(87·여)가 증언에 나섰다.

제주4·3연구소는 지난 30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70년 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을 주제로 제주4·3 70주년 기념 '4·3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사진은 송복희씨의 증언 모습. 고경호 기자

송씨는 "4·3 당시 서귀면에 살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보낸 2연대 군인들이 마을 전봇대에 희생된 주민들의 머리를 달아맸다"라며 "군인들은 담배에 불을 붙여 시신의 코에 찔러 넣으면서 놀았다. 그 때 내 나이 열여섯이었다. 이젠 여든 여섯. 아이고…"라며 지금도 뚜렷한 잔인한 기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스무살이 되자마자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밀항했다. 경찰 비옷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영락리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라며 "남편 고향에는 자주 찾아갔지만 내 고향은 차마 갈 수 없었다. 당시의 참혹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울먹였다.

# 이삼문씨 "가족 모두 잃고 목포로"

배고픔을 참지 못해 길거리를 헤매다 목포행 배에 몸을 실은 이씨는 당시 아홉살의 꼬마였다.

이씨는 "4·3 당시 학살의 광풍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큰형, 작은형, 누나를 모두 잃었다"라며 "갈 곳 없이 거리를 헤매던 나를 해군장교 김종군씨가 아들처럼 거둬줬다. 1년 후 다른 지역으로 발령 받은 김씨는 나를 고아원에 맡기고 가면서 목포에 오면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했다"고 70여년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그렇게 목포행 배에 올랐지만 6·25 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혼자 남게 됐다. 결국 해남 산이면 상공리라는 작은 마을까지 피신한 후 박호배씨 댁에서 머슴으로 지내게 됐다"라며 "그렇게 박씨의 양아들로 호적에 올라가게 된 나는 1941년생 이삼문에서 1953년생 박삼문으로 바뀌어 여태껏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66년 만에 고향을 찾아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아버지, 어머니, 형들과 누나, 할머니의 위패가 정성스레 마련된 곳에 내 위패도 있었다. 9살 어린아이 혼자 살아남았을 거라는 생각을 아무도 못했던 것 같다"라며 "우리 집 마당에서 뛰어놀던 그 때로 돌아가 딱 한번만 실컷 울어보고 싶다. 그래야 이 한이 좀 풀리려나…"라며 눈물을 훔쳤다.

#양농옥씨 "애타게 찾은 아버지 결국 총살"

도노미마을(제주시 오라동)에 살았던 양씨는 썰물 때 열리는 바닷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경찰서에 끌려간 아버지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양씨는 "소개령으로 도노미마을이 불타자 우리 식구는 큰언니가 살던 도두리로 피신 갔다. 어느날 군인들이 도두리 사람들에게 도두국민학교에 모이라고 했다"라며 "사람을 실은 지프차가 운동장으로 들어오더니 눈을 가린 채 차에서 내린 9명을 총살했다. 또 아버지를 '히매'(수염)라고 부르며 지프차에 태워 제주경찰서로 데려갔다"고 회상했다.

제주4·3연구소는 지난 30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70년 만의 귀향, 70년의 기억'을 주제로 제주4·3 70주년 기념 '4·3 증언본풀이 마당'을 개최했다. 사진은 양농옥씨의 증언 모습. 고경호 기자

이어 "새벽 밀물 때 바닷길을 이용해 도두에서 경찰서가 있던 무근성까지 걸어갔다. 닷새만에 지프차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하면서 매달렸지만 군인이 나를 떼 놓았다"라며 "그렇게 아버지와 헤어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데 오라리공회당에서 아버지가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얘기했다.

양씨는 "도두에 시집한 언니도 도두지서에서 고문 받다 대창에 찔려 죽었다. 그렇게 언니 형부, 언니 시부모님 모두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라며 "이후 숙모 소개로 결혼했지만 남편은 경찰서에서 맞은 맷독으로 속이 곪아 8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1970년에 제주를 떠나 성남으로 이주한 후 현재까지 살고 있다"고 말했다. 고경호 기자

고경호 기자  kkh@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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