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① 벚꽃 아래 쓰는 이름

봄, 벚꽃 아래를 걷는다. 벚꽃잎은 이다지도 고우나 길을 걷는 마음은 부산스럽다. 어디선가 소녀들이 새로 맡은 담임 이야기를 하는지 웃음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나무 아래 에 모였던 웃음들이 헌꺼번에 까르르 쏟아진다. 꽃잎들이 놀란 나머지 양갈래로 흩어진다. '나도 저럴 때가 나에게도 있었지' 싶다. 

소녀들처럼 하냥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드는데 오래 가게문을 닫았던 옷수선집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남편 병치레를 하다 오래 문을 닫았다고 한다. 안그래도 옷 수선 맡길 게 있다며 애써 말을 붙여본다. 아주머니가 수선할 옷 가져오라며 손을 내저을 즈음, 피자가게 알바생 오토바이가 바람을 가르며 쌩하고 달려간다.

마주오던 승용차 한 대가 주춤거린다. 운전자는 승용차 문을 내려 욕한바가지 해주고 싶은 듯 얼굴을 근육을 잔뜩 모았으나 오토바이는 이미 건녀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주인을 앞세운 애완견 한 마리가 밪꽃 나무 아래 오줌을 눈다. 그것도 모르고 주인은 "예삐, 빨리 안오고 뭐해?"라고 짜증을 낸다. 

길을 걸으며 거리의 풍경과 조우하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다. 간혹 슬플 때도 있다. 제각각 다른 풍경들, 다른 표정들, 다른 소리들, 다른 감정들… . 그것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일은 오로지 내 몫이기에 마음대로 상상하고 마음대로 말은 건다. 분명 내 감정이 주인노릇을 할 것이다. 내 감정에 따라 벚꽃잎도 즐겁게 혹은 슬프게, 아름답게, 천박하게 보일 것이다. 사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 <시>(이창동, 2010)에서 주인공 미자는 빨간 동백꽃을 보며 '고통의 꽃'이라고 말한다. 의사는 "그거 조화에요."라고 담백하게 응수한다. 실제를 보는 일은 이렇듯 어렵다. 어쩌면 "우리의 불행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방에 남아 있을 수 없는데서 온다"고 한 파스칼의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고독의 방에서 무심한 사유가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부러,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부터 아름다운 언어를 길러낸 현자들의 목소리를 떠올려본다. 

가와세 나오미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2015)에서 도쿠에 할머니(키키 키린 역)는 4월의 벚꽃 나무를 오래 쳐다보며 "아아아~"하며 숨을 오래 들이마신다. 하늘 가득 매운 벚꽃들의 속삭임과 일렁이는 합창을 그녀는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시간당 300엔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표정은편안했다. 그녀는 한센병이라는 치명적 병이 있지만 70평생 사물의 소라를 들으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왔다. 닽팥들의 생애마저 마치 사람의 생애사처럼 이해하는 놀라운 통찰력이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단팥소를 잘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도쿠에 할머니는 말한다. "단팥을 만들 때 나는 항상 단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팥이 보아왔을 비오는 날과 맑은 날을 상상하는 일이지요. 어떠한 바람들 속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팥의 긴 여행 이야기들을 듣는 일이랍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어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햇빛이나 바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라고.

할머니 덕분에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던 '도리야기'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실의에 빠진 도리야키 가게 주인 센타로(나가세 마사토시 역)는 엷은 웃음이나마 되찾았다. 할머니가 죽고, 할머니가 살았던 요양원을 찾았던 센타로는 할머니의 할머니의 비밀을 알아낸다.

평생 치유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밝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사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마! 우리는 세상을 보기 위해서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각자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라고 말한 할머니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다. 그러고 나서 4월 어느날, 벚꽃 나무 아래 도리야기 노점상을 연다. 그리고 외친다, "도리야키 사세요."라고. 

다시 길을 걷는다. 건물들에 가려진 사물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바람에 흩어졌던 꽃잎들이 길가 모퉁이에 모여든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꽃잎 위에 새겨진다. 모퉁이에 웅크린 꽃잎들을 주워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본다. 아직 따스하다. 내일이면 사그라들 목숨처럼 여겨져서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붙여주고 싶다. 순간 내 입술에서 '사쿠라'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무의식에 아직 남아 있는 남의 나라 이름, 사쿠라. 

우리의 말을 잃었던 한 때가 있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서자(庶子)의 한 같은 게 새겨진 36년의 세월이다. 창씨를 개명하고, 일본어 노래를 배우고, 학교에서 창수니 영철이니 하는 친구의 이름을 불러도 매를 맞았다. 내 어머니 이름은 정자. 이모 이름은 춘자다. 일본인 이름 '미찌꼬'는 한자어로 '美子'다. 한국인이라면 우리 어머니들 이름에서 정자니 춘자니 미자니 하는 이름이 많은 사연을 모르는 이는 없다. 우리이 언어를 잃어버렸던 설움과 치욕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조례 시간의 첫마디는 으레 일본과 조선은 하나이고, 천황폐하는 우리들의 어버이시니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황이란 말을 할 때의 선생님은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서 차렷 자세를 했습니다. 그러고선 일본 쪽을 향해 구십 도로 허리를 꺾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놀이라니요?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자, 이걸 봐라."가로 삼 센티, 세로 십 센티 정도의 나무패가 높이 치켜졌습니다.

횃불마냥 우뚝 솟은 나무패는 굉장한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아주 천천히 나무패를 움직였습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작은 나무패가 가는 대로 이 쪽에서 저 쪽으로 따라갔습니다."이게 뭔지 알겠나?"교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반장, 일어나라!"준식이가 발딱 일어섰습니다."받아."나무패가 붕 떴습니다. 준식이는 두 손을 마주 펴 손목에다 찰싹 붙였습니다. 손바닥 안에서척! 소리가 났습니다.'위반.' (손연자 동화, 『마사코의 질문』 중에서)'

「꽃잎으로 쓴 글자」라는 동화는 우리의 말을 잃어버렸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승우의 일본인 담임 다나카 선생은 지각하는 아이들에게 따귀를 때리고, 조선말을 쓰는 아이들에겐 손바닥 열대를 때렸다.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래서 가슴 한 켠에서 울고 있는 우리말을 소반 위에 써본다. '산', '하늘', '별'이라고.  나도 써 본다. '하늘 바람 시'라고. 동주가 남의 나라 땅을 걸으며 되뇌었을 하늘과 바람 과 시. 잊지 말아야 할 우리들의 이름이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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