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만의 폭염, 111년 만에 가장 기온이 높은 열대야. 아무리 덥다 해도 요즘처럼 더운 때가 있었던가 싶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Chris Van Allsburg의 그림책 『이건 꿈일 뿐이야』에서처럼 어제 내가 버린 쓰레기 때문인가 싶어 무서워진다. 그림책 에서는 쓰레기더미가 마을을 덮치고 파도가 침대로 밀려드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라오스 댐이 무너져 수 백 명이 사망·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남의 일 같지 않다.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앞에 있는 것도 죄짓는 것만 같아 불안하다. 자동차가 폭발하고 산불이 온 산야를 덮치고 이러다 물난리까지 겹치는 건 아닌지 하는 불안함이 밀려든다. 부러 창문을 열고물걸레질을 한다. 집안의 온기를 식혀 줄 방도가 없잖은가. 

거미 한 마리가 죽은 듯이 벽에 붙어 있다. 거미도 이 더위에 난공불락이다. 벽을 타고 어디론가 가서 먹이를 구하고 둥지를 틀 모양인데 인기척이 들리자 꼼작 않고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를 떠올리게 한다.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벌레가 된 것을 알았을 때의 심정이 저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신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이제까지 자유롭게 그러나 영혼 없이 떠돌았던 삶에 잠시나마 휴식 아닌 휴식이 생긴 것이다. 이제 회사를 안가도 되고, 기차를 놓칠까봐 조바심내지 않아도 된다.

비록 작은 방 안이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힐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로소 네 개의 벽에 갇힌 그는 생에 가장 큰 변신을 시도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전을 하게 된 것이다. 여러 개의 다리를 겨우 움직여 침대 밑으로 내려가 보기도 하고, 벽을 타고 천장에 매달려 있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심심풀이로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는 특히 천장에 매달려 있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마룻바닥에 누워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게 하면 보다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었고 쉽사리 몸을 흔들 수도 있었다.

그레고르는 천장에서 갖게 되는 거의 유쾌한 방심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떼고 방바닥에 찰싹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자기 몸을 훨씬 더 잘 다룰 수가 있어서 그렇게 높은 데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다."(『변신』중에서)

땀이 주르르 흐르는 것도 잊고 거미를 관찰하다가 이제 거미를 놔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념 촬영 한 컷 찍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날에는 찬물에 발 담그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게 최고다. 더위가 가져다 준 여유다. 얼마 전 구입한 옛날 타자기에 눈이 간다.

'아, 타자기로 시라도 베껴봐'하는 생각에 갑자기 생기가 돋는다. 타타타타탁탁탁…, 타자기 소리는 나에게 기운을 돋게 한다.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는지라 받침을 찍는 게 아직도 서툴다.

겨우 한 자 한 자 찍어본다. 어머니가 한글을 배울 때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경험하지 않고 남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임을 새삼 깨닫는다. 방금 찍었던 받침도 '어떻게 그렇게 된 거지' 하고 한참 생각한다. 이 정도면 치매 수준이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져보려 노력한다.

타자기로 시 한 편 멋있게 쓰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 까닭이다. 연필로 글을 쓰고 타자기로 시를 쓰는 낭만을 얼마간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게 소리 없이 진행되는 안드로이드 세상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재미없다.

어쩌면 너무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다. 연필로 글을 쓰는 것보다 자판을 누르며 글 쓰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옛날 타자기, 옛날 재봉틀, 옛날 괘짝 등이 그리워진다. 나이가 드는 것인가? 그 옛날 것들이 이제는 보기 드문, 낯선 것들이 돼버렸다. 어쨌든 낯섦은 분명 삶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활력제임이 분명하다. 변신의 계기를 제공한다.

머레이 쉬스갈의 희곡 『타이피스트』(1963)는 사무실에 갇혀 지내는 실비아와 폴이라는 두 남녀의 대화를 통해 인생 전체를 통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시간의 흐름은 인생의 마디 하나씩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때마다 그들의 한탄, 고백, 증오, 환희, 절망의 음성이 들린다. 생의 주기마다 어쩔 수 없이 따라붙게 되는 과제들이며, 실패의 연속 혹은 행운 같은 것들에 의해 감정은 파도를 타고, 삶은 오르락내리락 어쩌면 벽 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타이피스트』에서 폴은 말한다.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노라"고.

전 부룩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만나면 다투는 게 일이었고 제 어린시절은 정말 불행했죠. 전 형제도 없어요. 단 세 식구만이 낡은 집에서 살았는데 골목에서 밤새도록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집이였어요. 전 우리 부모가 왜 결혼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다투면서 살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중략)
전 집밖으로 나와서 마구 뛰었어요.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서 코피가 났죠. 전 그때 결심했어요. 내 힘으로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구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일은 하지 않을 것이며 가고 싶지 않은 곳은 가지 않겠다구요. 난 내 자신을 찾으리라. 다시는 남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으리라구요. 그렇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어요. 나 정도의 배경을 가지고는 항상 뒤처질 수밖에 없었어요. 마치 다른 사람보다 두 발짝쯤 늦게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머레이 쉬스갈 『타이피스트』 중에서

인생이 제 뜻대로 되는 게 어디 있겠는가. 그레고르 잠자는 벽에 갇혀 지내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등짝을 맞아 죽었고, 기적을 만들고 싶다던 폴은 퇴근 시간이 되자 다시 집으로 간다.

그는 내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끔은 거미를 발견하고, 하수구에 빠진 새를 보고, 죽었다가 다시 핀 백합의 향기를 맡을 것이다. 삶은 내 안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밖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바깥에서 오는 어떤 이미지들로부터 새로운 발견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벽에 붙은 거미로부터 카프가를 읽고, 결국은 머레이 쉬스갈의 '타이피스트'를 응원하는 시간에 이르지 않았는가. 이렇듯 이미지와 심상의 흐름을 좇는 일도 가끔은 재미있다. 말이 나온 김에 옛날 타자기를 구해 타타타탁탁탁…,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편지 대신 비 소식이 먼저 들린다. 반가운 일이다.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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