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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기획연재 잊혀져가는 항몽 유적을 찾아서
13세기 삼별초 주도하에 이뤄진 대표적 항몽유적7.삼별초와 대몽항쟁을 위한 축성
김지석 기자
입력 2018-09-02 (일) 16:42:02 | 승인 2018-09-02 (일) 17:18:09 | 최종수정 2018-09-02 (일) 17:22:44
제주 항파두리성.

성곽은 전쟁에서 최후의 방어 공간이며 공격의 공간이다. 전쟁의 승패가 갈리는 처음이며 마지막 방패막이다. 어느 고대 국가를 막론하고 성은 최고의 석축기술을 동원하고 있다.

이처럼 성들은 그 나라의 국력, 상징을 나타내며 이렇게 쌓은 토성과 석성들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상당한 고초를 겪으면서 쌓은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축성 기술과 건축 기법들은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과 다르다. 고구려 성을 비롯해서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맥을 함께 이어오고 있다. 그 축성 공법과 디자인들은 치밀하고 견고하게 축성하고 있으며 여기에 예술성까지 담아내고 있다. 

고려는 중세시기 474년간 한반도에 새로운 통일국가로서 성립했던 동아시아 해상국가다. 

고려의 13세기는 몽골세력의 흥기와 그 침입으로 인한 장기간의 대몽항쟁 등으로 커다란 변동을 겪으면서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 무신정권의 대몽항전과 강화중성의 축성, 무신정권의 몰락과 개경 환도, 삼별초의 대몽항쟁 등으로 이어진다.

대몽항쟁 과정 속에서 축성됐던 강화중성과 진도의 용장성, 제주도의 항파두리성 등을 알아본다.

△대몽항쟁기 축성된 성곽 특징
13세기 축성된 강화중성, 진도 용장성, 제주 항파두리성은 대표적인 항몽유적으로 축성계획부터 과정과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삼별초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대몽항쟁기에 축성된 성곽들은 지리적으로 해도(海島)에 입지하고 있으며, 도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곽의 배치 구조는 강도(江都)와 진도의 용장성, 제주도의 항파두리성은 왕실과 같은 주요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궁성 혹 내성이 축조되었으며, 외곽으로 강화중성, 외성 등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다.

이들 성광의 배치는 강화동읍기는 내성-중성-외성이며, 진도 용장성은 내성-외성, 제주 항파두리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이뤄졌다.

제주도 전체 해안변에 축성된 환해장성을 포함하면 제주 삼별초 항몽유적 성곽은 강화도읍기의 3중 구조와 동일하다.

대몽항쟁기에 축성된 성곽들은 입지에서 해도에 자리하고 있어 당시 몽골과의 전쟁에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었다. 평면구조는 중심부에 최고 권위자를 위한 궁궐과 내성이 있고, 외곽으로 주요시설물을 에워싸는 중성 또는 외성을 쌓았다. 다시 해안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강화도읍기 도성이었던 강화중성의 발달된 판축토성의 축성술은 삼별초와 함께 항몽유적의 중심지였던 진도 용장성, 제주 항파두리성으로 이어졌다.

강화도에 위치한 외규장각.

△ 강화도의 강화중성
강화중성은 강화읍의 월곶리, 대산리, 관청리와 선원면의 선생리, 창리, 신정리 등 1읍 1면 7리에 걸쳐 축조된 성곽이다.

강화내성으로 추정되는 현재의 강화산성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 도성으로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 고종 37년(1250)에 쌓은 판축토성의 구조다.

강화중성은 북산의 북장대에서 남산의 남장대까지는 강화내성과 중첩되며, 이곳에서 북쪽으로 북장대에서 옥림리의 옥창돈대까지 1.8㎞, 남쪽으로는 남장대에서 가리산돈대와 갑곶돈대 사이 외성의 한 지점까지 6.3㎞에 걸쳐 토루가 이어지고 있다. 총길이는 8.1㎞ 상당이며 송악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성벽이 연결된다.

강화중성은 기본적으로 기초 부분에 기단 석축을 배치하고 중심 토루와 내외피 토루로 구성돼 있다. 

토루를 조성하기 위해 목재를 이용해 기둥을 결구해 판축틀을 구성한 후 내부에 흙을 넣어 켜켜이 다짐하는 방식인 판축토성의 구조다.

판축토루의 중심부인 중심토루 내외측에 기단석렬과 영정주가 놓이기 위한 주초석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보강하기 위해 덧대어 내외피토루를 조성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판축토성의 구조는 한국 성곽 발달사에 있어 토축으로 이루어진 성곽의 가장 발달한 형태로 완성된 구조라 할 수 있다.

강화중성은 강화를 요새화해 국난을 이겨내고자 한 고려의 의지가 담겨 있는 항몽 유적 중 하나다. 

진도 용장성 성터.

△진도의 용장성
용장성은 진도군 북동부에 속하는 군내면 용장리, 고군면 벽파·오류·유교리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고대부터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자 진도에서 육지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했다. 

삼별초가 진도에 설치한 대표적인 항몽 시설이며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해 독자적인 정부를 세웠고, 그 뒤 1270년(원종 11) 삼별초군이 진도에 입거한 후 이듬해 5월까지 이곳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아 몽골에 대항했다. 

특히 용장성은 명량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용장성의 지리적 이점은 40여년간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도와 흡사해 삼별초가 대몽항쟁의 새로운 거점으로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용장성의 왕궁지 건물은 개경의 고려궁성을 비롯해 강화 도성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제주도 항파두리 내성 건물지와는 건축 양식과 기법이 일치한다.

이미 운영되고 있던 사찰 공간을 활용해 궁성을 조성했다. 외성과 궁성 사이 공간에는 제사유적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외성에 해당하는 용장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13㎞ 정도 규모로 석축과 토축으로 이루어진 나성(羅城) 형식의 산성이다.

해발 264m의 용장산 좌우의 능선을 따라 약간씩의 석축이 부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성내에 용장사지(龍藏寺址)와 왕궁지(王宮址)가 남아 있다. 

용장산성은 1243년(고종30)에 이미 축조됐으며 1270년 삼별초군이 진도에 들어오면서 내성과 외성으로 이뤄진 도성체제(都城體制)를 갖추었다. 

△ 제주도 항파두리성 
1271년(원종 12) 5월, 진도의 싸움에서 패한 삼별초가 제주도에 들어와 이곳에서 내외 이중으로 된 성을 쌓았다. 

해발 140m~200m의 중산간지역의 남고북저의 구릉에 축성된 항파두리성은 동쪽과 서쪽으로 고성천과 소왕천이 해안으로 흐르고 있어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내성은 평면 사다리꼴이며 석성이 아닌 판축토성으로 이뤄졌다. 

내성은 항파두리성 북쪽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고북저의 지형에서 비교적 평탄한 대지가 형성돼 있는 해발 160m~165m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외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중앙부가 만입된 형태로 둘레는 약 3.85㎞다.

삼별초는 항파두리성에 4대문을 설치하고 성 안에는 대궐을 비롯해 관아·병사·군기고·후망소(?望所)·옥사·훈련장 등을 시설하였으며, 우물과 저수지도 마련했다.

삼별초는 항파두리성 외에도 명월과 애월에는 목성(木城)을 축조하고, 조공포(朝貢浦: 제주시 외도 포구)·귀일포·애월포·명월포·조선포 등에는 군항시설을 갖췄다.

항파두리성 일대에는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돌쩌귀·기와·자기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됐다.

특히 항파두성이 삼별초의 이전 항전지인 진도 용장성의 건물지와 유사한 건축방식으로 축조됐다.

항파두리성과 용장성은 입지 조건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건물지의 기단과 초석을 '할석재'를 이용해 구성하고 있는 점과 벽체건물, 다듬은 석재로 아궁이의 뒷벽을 시설한 점에서 용장성 건물지에서 나타나는 형식과 공통요소를 보이고 있다. 

특히 모든 건물이 회랑으로 연결된 양상은 진도 용장성 내성지 건물지군과 유사하다. 

또 강화도 고려 중성과 진도 용장성의 축성 기술도 유사성을 보이고 있어 항파두성 내성지의 건물지는 삼별초 내 건축기술자에 의해 건축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6년 9월 항파두리항몽유적지(缸波頭里抗蒙遺蹟址)라는 이름으로 사적 제396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1978년 유적지정화사업을 벌여 이곳에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비롯한 관리사·전시관·휴게소 등을 설치,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김지석 기자  kjs@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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