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제주환경 자산 용천수를 찾아서] 11. 한림읍 수원리 '큰물'

드넓은 평야 가진 마을 '수원리'
큰물 주민 삶과 밀접…멸실 위기
보전관리평가 7점…4개 항목 1점
"용천수 보존·관리 선택 아닌 필수"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땅을 일구고 하루 종일 바다에 몸을 의지한 채 고된 노동을 해야 했던 제주인들에게 땅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그 자체였다. 섬사람들이 식수 등 생명과 직결되는 담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용천수와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봉천수(奉天水)가 유이했다. 제주에서 용천수는 섬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수' 자체였다.

하지만 제주인의 생명줄 역할을 해온 용천수가 난개발과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 일대에서 수량이 가장 많아 '큰물'이라고 불리던 용천수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큰물'의 사례를 살펴 용천수의 가치와 보존 방안 등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옥토 간직한 수원리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는 제주시내에서 서쪽으로 28㎞떨어진 곳에 넓은 해안과 잘 정리된 농경지로 광활한 옥토를 이룬 넓은 평야를 가진 마을이다. 예전에는 38개 성씨를 가진 523세대가 모여 살았던 비교적 큰 마을이다.

1970년대 초 전국 최초로 밭 100㏊가 경지정리 돼 지금도 수원리에 가면 드넓은 밭에 여름이면 기장이나 밭벼가 푸르름을 간직한 채 펼쳐져있고 가을부터 겨울에는 양배추와 브로콜리, 비트, 콜라비, 쪽파 등 월동채소가 재배되고 있다.

마을공동어장에서 생산되는 소라와 성게, 톳 등 각종 해산물은 해녀들의 소득원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3㎞에 달하는 해안은 전국에서 유명한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민 삶과 함께한 '큰물'
한림읍 수원리(대수동 731-1번지)에 있는 '큰물'은 이름 그대로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던 용천수다.

수원리 전동과 대수동, 상동 주민들의 식수로 주로 이용됐다. 또 빨래와 목욕 등 생활용수로도 활용됐다.

마을 주민들은 여름이면 '큰물'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무더위를 피했다.

원래는 남자들이 목욕을 하던 '큰물'과 여자들이 목욕을 하던 또 다른 '큰물'이 있었지만 남자들이 목욕을 하던 '큰물'은 현재 매립으로 사라진 상태다.

△멸실 위기 직면
이처럼 수원리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온 '큰물'이지만 지금은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제주연구원이 지난 2016년 12월 제주도에 제출한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큰물'은 역사문화와 접근성, 용출량, 수질, 주민이용, 환경 등을 평가한 보전관리평가 점수에서 20점 만점에 7점을 받는데 그쳤다.

항목별(5점 만점) 점수를 보면 접근성이 2점을 받았으며 나머지 항목은 1점을 받아 보전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큰물'의 멸실 위기에 놓인 것과 관련해 원인을 두고 많은 가설이 있지만 콘크리트 등 과도한 시설정비로 인한 원형 훼손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생명수 보존 시급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인들에게 용천수는 말 그대로 '생명수'나 다름없다.

제주인들은 담수(淡水)가 흐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하고 살았다. 용천수를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물 보전과 이용에 대한 연대의식이 생겨나고 물허벅과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만들어졌다.

아울러 시간이 흐를수록 용천수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용천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용천수는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원인 용천수가 본래 모습을 찾도록 보존하고 관리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인터뷰] 하성천 전 수원리청년회장 (사진)

"마을주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용천수를 후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체계적 관리·보존 대책이 필요합니다"

하성천 전 수원리청년회장(78)은 "한림읍 수원리는 예로부터 좁쌀, 보리쌀 등을 재배해 제주의 곡창지대라고 불리던 곳"이라며 "큰물은 이름 그대로 많은 용출량을 자랑하던 용천수로 수원리 농업의 밑천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큰물은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 여러 마을주민의 식수를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축산용수 등 필요한 물을 대부분 얻었을 정도로 마을 주민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곳"이라며 "지금은 용출량도 줄어들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큰물은 농업·축산용수 외에도 아낙네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방,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 역할을 한 곳으로 수원리 지역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곳"이라며 "지금은 본래 기능을 잃고 외면받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하 전 회장은 "몇 해 전 용천수 정비사업이 이뤄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부유물과 쓰레기로 뒤덮이고 시설물도 노후화됐다"며 "하루빨리 효율적인 관리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선 큰물 보존가치 등을 마을주민들과 머리를 맞대 의논한 후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보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며 "마을주민과 늘 함께 했던 큰물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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