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제주환경 자산 용천수를 찾아서]

아낙 사랑방·아이들 놀이터 역할
콘크리트 타설 등 원형 훼손 심각
보존관리평가 점수 9점…대책 시급
미래세대 위한 용천수 보존 '필수'

예전 제주인들은 용천수와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봉천수(奉天水)를 통해서만 생명의 근원은 물을 확보했다. 제주에서 용천수는 섬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수' 자체였다.

제주인의 생명의 근원이며 역사와 문화의 원류인 용천수는 1960년대 상수도 보급 등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우리 기억에서 점차 멀어졌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용천수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면서 원형을 잃는다.

최근 들어서는 난개발과 무분별한 사용, 과도한 정비 등으로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 '돈지물'은 풍부한 수량과 좋은 물맛을 자랑하며 일대 주민들과 함께 살아왔다. 이런 돈지물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돈지물' 사례를 살펴 용천수의 가치와 보존 방안 등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이다.

△용천수 잠기는 조물케
수원리(洙源里)는 예전에는 '조물케'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조물케는 마을이 생긴 이후 마을 사람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던 큰물과 생이물, 돈지물, 개물, 솔패기물, 엉물, 쇠물, 중이물, 모시물, 엉물 등 11곳의 용천수가 만조 때는 전부 바닷물 속에 잠기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잠수포(潛水浦)라 했다.

그러나 넓은 해안지대 공동어장에서 생업을 위해 물질을 하던 해녀들의 사망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1882년 마을 사람들이 협의해 '수원리'로 개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원리는 공자가 제자들을 훈육하던 곳의 지명을 가져온 것이다. 그만큼 마을 이름 개명 당시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깁게 자리 잡았던 마을이다.

귀덕 쪽에서 보면 길게 뻗은 동산이 완만하게 뻗어있어 개미도 기어오르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개엄지머를'이라고 하며 한수리 쪽에서 보면 암반 위에 성곽을 두른 듯 마을이 형성돼 있어 '빌레모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주민 삶과 밀접
한림읍 수원리(952-2번지)에 있는 '돈지물'은 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돈지물은 안치동네 사람들의 식수는 물론 빨래와 목욕 등 생활용수로 이용됐다.

마을 사람들은 여름이면 돈지물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더위를 이기곤 했다. 또 아낙들에게는 시집살이의 서러움을 토해내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동네 아이들에게는 옷을 벗어던지고 들어가 더위를 식히며 물장구를 치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멸실 위기 직면한 돈지물
이처럼 수원리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온 '돈지물'이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제주연구원이 지난 2016년 12월 제주도에 제출한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돈지물(3)'은 역사문화와 접근성, 용출량, 수질, 주민이용, 환경 등을 평가한 보전관리평가 점수에서 20점 만점에 9점을 받는데 그쳤다.

항목별(5점 만점) 점수를 보면 접근성과 용출량, 주민이용은 2점을 받았지만 나머지 항목(역사문화, 수질, 환경)은 1점을 받아 보전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돈지물'의 멸실 위기에 놓인 것을 두고 다양한 원인과 가설이 대두되고 있지만 석축 신설과 콘크리트 타설 등 과도한 시설정비로 인한 원형 훼손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과도한 정비로 인해 지금은 원형이 완전히 사라져 주민은 물론 관광객 등 방문객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제주 생명수 보존 절실
오랜 시간 제주인의 생명수 역할을 한 용천수가 사라지고 있다.

용천수 고갈은 단순한 자연자원의 훼손을 넘어 제주인이 쌓아온 역사와 문화의 쇠퇴를 의미한다.

제주인은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을 일구며 담수(淡水)가 흐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해 살아왔으며 용천수를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물 보전과 이용에 대한 연대의식이 생겨나고 물허벅과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천수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가치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가 용천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난개발과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제주의 생명수인 용천수는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제주인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용천수는 현재 세대가 사용하고 버리면 끝나는 자원이 아닌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 보존해야 하는 제주인의 얼이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원인 용천수가 본래 모습을 찾도록 보존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림읍 수원리 마을주민의 삶의 터전이었던 용천수 돈지물 보전방안을 하루빨리 고민해야 합니다"

8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한림읍 수원리를 지키고 있는 주민 김문치 전 개발위원장(79)은 "마을주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돈지물이 본래 기능을 잃고 외면당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이 같이 말했다.

김씨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 놀기도 하고 여름철 마을 주민의 땀을 식히던 용천수 돈지물은 물도 풍부하고 맛도 좋아 인근 주민들이 항상 붐비던 곳"이라며 "마을주민들은 돈지물에 모여 빨래를 하고 가정에서 이야기하기 힘들었던 고민을 털어놓는 등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 식수뿐만 아니라 생활용수, 농업용수, 축산용수 등 주민 삶에 필요한 물을 대부분 이곳에서 얻었을 만큼 남또리물은 마을주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곳"이라며 "지금은 수량도 줄어들고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주민 발길이 뚝 끊겼다"고 전했다.

김씨는 "몇 해 전 용천수 정비사업이 이뤄졌지만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됐다"며 "하루빨리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 보전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씨는 "용천수는 마을 주민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기에 우리세대에서 사용하다 고갈되거나 사라지면 되는 것이 아닌 우리 후손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며 "마을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용천수의 숨이 완전히 끊기지 전에 마을주민이 나서서 용천수 보전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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