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제주환경 자산 용천수를 찾아서] 15. 구좌읍 평대리 큰물통

구좌읍 중앙 위치…마을 이름 '벵디'서 유례
평대리서 가장 큰 용천수…주민과 동고동락
공유수면 매립으로 제기능 상실…멸실 위기

지하에서 물이 흐르는 층을 따라 이동하던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솟아나오는 곳을 '용천'이라 하고 이 물을 '용천수'라고 한다.

제주 섬의 마을은 이 용천수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해안에 마을이 집중된 것은 이 때문이다. 제주 사람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마을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삶을 영위했다. 용천수는 제주 사람들의 삶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이렇게 제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용천수가 무분별한 난개발과 과도한 사용 등으로 인해 멸실 위기에 처해있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큰물통'은 마을의 자랑으로 주민들의 삶과 함께 했다. 평대리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큰물통'이 사라지고 있다. '큰물통' 사례를 살펴 제주 용천수의 현 주소와 미래를 모색한다. 


△구좌읍의 중앙 평대리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坪岱里)는 행정구역상 구좌읍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쪽은 세화리, 서쪽은 한동리와 인접해 있으며 남쪽은 돋오름을 경계로 송당리와 접해 있다.

평대리는 일주도로와 비자림을 경유해 송당으로 들어가는 제2산업도로의 교차점에 있는 구좌읍의 중심지이면서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해안선은 단조로운 편이며 수심은 깊지 않으나 근해에는 수산자원이 풍부해 연해어업이 활발한 편이다.

△벵디에서 따온 마을 평대
'평대'라는 마을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유례는 아직 찾을 수 없다.

옛날에는 '괴벵디'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평대하면 '괴벵디므슬'이라고 이야기하는 촌로(村老)들의 회고만 있을 뿐이다.

지금은 폐동돼 없어졌지만 평대리 탈전동(脫田洞.탈밭동네)과 한동리 방축동(防築洞.방추굴)이 이웃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건데 평대(벵디)와 한동(괴)이 하나의 마을로 생활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후 인구 증가와 산업이 점차 발달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다스리기 어렵게 되자 한동리 상동(웃한동)과 하동(알한동)을 '괴벵디'에서 분리해 한동리로 하고 방축동을 포함하는 현 평대구역을 묶어 '벵디'로 하는 두 개의 마을로 구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벵디'가 '평대'로 변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평평한 들판이라는 '벵디'의 어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평대리서 가장 큰 용천수 '큰물통'

제주 어느 마을을 가던 '큰물'이나 '왕물' 등의 이름이 붙은 용천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보통 마을에서 가장 크고 용출량이 많은 용천수를 불렀던 이름이지만 이것은 자기 마을 용천수가 더 컸다는 자랑보다는 물로 인해 마을이 크게 되기를 염원해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평대리 '큰물통'은 예전 상수도가 없을 때 용천수를 가둬 주민들이 우물처럼 사용한 곳이다. 두 곳으로 나눠 한 곳은 식수로 사용하고 다른 한 곳은 식료품을 씻거나 목욕 등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주민들은 여름이면 '큰물통'에 모여앉아 더위를 식히며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지 못한 아이들은 한쪽에 모여 물장구를 치며 물놀이를 하는 놀이터로 이용했다.

△사라질 위기 놓인 '큰물통'
평대리 주민들의 자랑으로 마을을 지켜온 '큰물통'이 지금은 보존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연구원은 지난 2016년 12월 제주도에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도내 산재한 용천수의 이름과 위치, 용출량, 수온, 보전관리평가 점수, 관리수준, 보전가치 등 용천수 관리에 필요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큰물통'은 이름만 올리고 있을 뿐 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제주도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는 도내에 있는 1025개 용천수 가운데 보존 가치가 있는 661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며 "'큰물통'은 역사적 가치와 주민 이용 등 점수가 낮아 보존.관리대상 용천수로 지정만하고 점수를 기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큰물통'이 이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을 두고 다양한 원인과 가설이 나오고 있지만 인근 공유수면을 매립하는 과정에서 수량이 감소하고 본래 모습을 잃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본래 모습을 잃은 '큰물통'은 현재 보전을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주민은 물론 관광객 등 방문객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용천수 대물림 노력 필요

제주인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고 공존했다. 또 용천수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물 보전과 이용에 대한 연대의식이 생겨났다. 이렇게 꽃핀 연대의식 속에 물허벅과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뿌리내리게 된다.

특히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용천수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천수 고갈은 단순한 자연자원의 훼손을 넘어 제주인이 쌓아온 역사와 문화의 쇠퇴를 의미한다.

제주인의 생명수 용천수가 우리의 무관심과 방관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날로 가치가 커지고 있는 소중한 자연자원인 용천수를 지금 세대를 넘어 미래세대에까지 대물림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적 보존가치가 컸던 평대리 큰물통이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84년 동안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에서 한 평생 살고 있는 김봉림씨(84·사진)가 애석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평대리 큰물통에서 유익하고 좋았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김씨는 "50년 전만해도 평대리 큰물통 주변은 바다와 모래로 둘러싸여 있었다"며 "그 때는 순환도 잘 되고 용천수도 맑아 장어 등 물고기들이 존재했다. 이에 너 나 할 것 없이 그물을 이용해 고기를 잡은 적도 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또 "큰물통 주변에는 남자목욕탕이 존재했다"며 "이 목욕탕 물은 깨끗하고 시원해 여름철, 대부분의 마을 남성들과 어린이들이 큰물통을 찾을 정도였다. 아울러 세화, 한동 등 다른 지역 사람들도 찾아와 몸을 식히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와 함께 "당시 평대리 주민들 대부분이 밭농사를 하고 있어 일을 마치면 큰물통으로 갔다"며 "그 곳에서 몸을 씻는 것은 물론, 작업복을 빨고, 함께 일한 소를 몰고 와 물을 먹이고 갔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처럼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큰물통을 애용했다"며 "하지만 30여년 전 매립을 하고 난 이후 물이 줄기 시작해 현재는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도 끊겨 옛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더불어 김씨는 "현재 큰물통에는 담배를 비롯해 비닐, 캔, 박스 등 다양한 쓰레기들이 방치돼 있다"며 이어"관리가 안 되다 보니 현재 매립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너무 서러울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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