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JDC 공동기획/ 제주환경 자산 용천수를 찾아서] 16.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펄개물(웃물)

별방진성·철새도래지 등 자리
생활용수로 사용되던 '펄개물'
남탕으로 이용…이야기꽃 피워
용출량 감소…보존관리 낙제점
"용천수 보존은 선택 아닌 필수"

마을마다 공동수도가 설치되기 이전인 1970년대 제주에서는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물'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해안마을은 용천수가, 중산간 마을은 봉천수의 존재가 특별했다. 해안마을에서 용천수는 인구수에 따른 마을의 크기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요인이었다.

근본적으로 제주도의 마을들이 해안지역을 따라 분포하는 배경도 생활용수인 용천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민들에게는 용천수가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상수도 보급 이후 용천수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제주인의 생명수인 용천수가 위협받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펄개물은 긴 해안선을 따라 용출하는 여러 개의 용천수로 마을을 지키고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이런 펄개물이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멸실 위험에 놓여있다. 펄개물 사례를 살펴 제주 용천수의 미래를 살펴본다.

△별방으로 불린 마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는 제주시내에서 동쪽으로 40㎞ 지점에 위치하며 옛 이름은 '별방(別防)'으로 불렸다.

마을에는 옛 북제주군 군화(郡花)인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문주란섬(토끼섬)이 있으며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로 쌓은 제주도기념물 제24호인 별방진성(別防鎭城)이 있다.

또 눈부시게 푸른 바다와 하얀 백사장, 뛰어난 절경의 해안도로, 수십 종의 철새가 사시사철 쉬어가는 철새도래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물이 풍부한 마을 하도리

국립민속박물관 자료를 보면 하도리의 용천수는 17곳에 이르고 있다. 이를 미뤄 볼 때 하도리는 상당히 물이 풍부한 마을이라 평가할 수 있다. 용천수 위치를 자연마을 단위로 보면 면수동 6곳, 서문동 3곳, 창흥동 7곳, 굴동 1곳 등이다.

하도리에는 많은 용천수가 존재하지만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용천수는 들렁물, 알찍물(말찍물), 펄개물(웃물), 펄개물(알물), 서느렁물 등 일부에 그쳤다.

특히 하도리는 공동수도가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해안가의 용천수보다도 마을 내에 인위적으로 만든 두레박물(두레박으로 뜨는 물이라는 의미)을 생활용수로 사용해왔다. 다시 말해 자연마을 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930년대 초부터 1960년대 말까지는 속칭 두레박물통을 1개씩 만들어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자연마을마다 두레박물통을 설치한 이유는 많은 용천수들이 해수와 섞이면서 용출하는 관계로 식수로 사용할 수가 없었으며 또한 일부 사용이 가능한 용천수도 거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많은 여성들이 불편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탕으로 사용된 '웃물'
돌담으로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는 펄개물은 바닷가 북쪽에 있는 알물과 남쪽에 있는 웃물로 나눠져 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한 때는 멱을 감고 빨래를 할 때 사용했다. 또 일부는 인근 양식장에서 고기를 기르는 용수로도 이용됐다.

특히 웃물은 마을 남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곳으로 지금으로 치면 '남탕' 역할을 했다. 마을 남정네들은 고단한 일과를 끝내고 이곳에 둘러앉아 몸을 씻으며 세상사는 이야기부터 마을 대소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보전관리 낙제점

하도리를 지키며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온 '펄개물(웃물)'이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제주연구원이 지난 2016년 12월 제주도에 제출한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펄개물(웃물)'은 역사문화와 접근성, 용출량, 수질, 주민이용, 환경 등을 평가한 보전관리평가 점수에서 20점 만점에 8점을 받는데 그쳤다.

항목별(5점 만점) 점수를 보면 역사문화와 접근성은 2점을 받았고 용출량, 수질, 주민이용, 환경 등의 항목에서는 최하점인 1점을 받아 보전관리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펄개물(웃물)'의 용출량 감소를 두고 두고 다양한 원인과 가설이 대두되고 있지만 중산간 지역의 과도한 개발과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으로 인한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용천수 보존은 필수
제주에서 용천수는 섬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수' 자체였다.

오랜 시간 제주인의 생명수 역할을 한 용천수가 사라지고 있다. 용천수 고갈은 단순한 자연자원의 훼손을 넘어 제주인이 쌓아온 역사와 문화의 쇠퇴를 의미한다.

제주인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해 살아왔으며 마을 주민들이 용천수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물 보전과 이용에 대한 연대의식이 생겨나고 물허벅과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천수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용천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난개발과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제주의 생명수인 용천수는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원으로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용천수가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고 관리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용천수 보존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현재 펄개물의 용출량이 과거만큼 세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인터뷰 - 고영봉 구좌읍 하도리 주민


68년 동안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서 한평생 살고 있는 고영봉씨(68)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하도리 용천수를 조사해오다 밝혀낸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영봉씨는 "100여년 전 펄개물 웃물 인근에는 창흥동 주민들이 살았다"며 "창흥동 주민에게 펄개물 웃물 주변은 일터이자 쉼터였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창흥동 주민들은 펄개물 웃물 인근에서 논, 밭도 가꾸고 송어 양식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다"며 "창흥동 주민들이 일을 마치고 나면 '웃물'과 '아랫물'이라는 곳을 이용했다. '웃물'에서는 남성들이 몸을 씻으려고 달려 들었고, '아랫물'에서는 여성들이 빨래를 하거나 야채를 씻고 목욕을 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과거 펄개물 웃물 인근에는 서늘엉물 웃물·아랫물를 비롯해 구명물, 몽근이물, 탕탕물, 아랫물, 까마귀물 등 용천수가 8곳이 존재할 정도로 용출량이 풍부했다"며 "하지만 현재 용출량이 줄어들어 '몽근이물'이 멸실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나머지 7곳에서도 용천수 양이 줄고 있다"며 "아마 중산간 개발이 이뤄지고 제주에 유입된 많은 인구들이 지하수를 이용하다보니 용출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짐작했다.

이와 함께 고씨는 "하도리 용천수들 일부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며 "앞으로 펄개물 웃물을 비롯해 하도리에 있는 용천수를 잘 관리해 현재 남아있는 용천수가 잘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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