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화산섬 용암의 땅, 곶자왈 탐사 / 풀고사리

곶자왈을 탐방하다보면 아주 크게 자라는 양치식물을 만나게 된다. 줄기는 가늘지만 높이가 1.5m는 넘긴다. 대부분의 식물도감에서 이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식물의 신장 생장 특징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스스로 곧추 설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다른 물체, 예컨대 나무나 바위 위를 기거나 감아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냥 슬그머니 기대어 자란다. 그러니 담쟁이처럼 흡착근도 없고 호박이나 하늘타리처럼 덩굴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칡처럼 다른 물체를 칭칭 감는 건 더욱 아니다.

그러니 기댈 나무가 주위에 없으면 그냥 버틸 만큼만 자란다. 그런 경우에는 1m도 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곶자왈처럼 어수선하게 다양한 나무들 특히 곰솔, 사스레피나무, 청미래덩굴 같은 햇빛을 적당히 통과시키면서 서로 얽혀있는 이웃들이 같이 있으면 상당히 높이 자랄 수 있다. 곶자왈에서도 2m를 넘기는 것은 흔히 있다. 심지어 10m까지도 자란다는 문헌도 있다. 풀고사리라는 종이다.

사람들은 이 식물을 왜 굳이 풀고사리라고 해 풀임을 강조하는 것일까. 사실 풀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한 번의 생장기간을 거치면서 키가 결정돼 버린다. 예컨대 나무이기도 하고 풀이기도 한 대나무만 보더라도 한번 자라면 높이가 결정되는 것이다. 죽순이 자라서 대나무가 되고 대나무가 다음해 봄에 다시 더 높이 자라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풀고사리는 이듬해 봄이 되면 또 다시 자라기 시작하여 지난해 자랐던 높이보다 더 높아진다. 이건 분명 나무의 속성이다. 혼자 서지 못하고 이웃에게 기대어 자라기 때문일까. 아무튼 이 풀고사리야말로 거의 300종에 달하는 우리나라 양치식물 중 가장 크게 자라는 종이라 할 수 있다.

풀고사리과에 속한다. 전 세계에 15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발풀고사리와 함께 2종이 있다. 이들은 모두 지하줄기로 옆으로 뻗으면 서 잎몸을 내기 때문에 흔히 큰 군락을 형성한다. 잎자루는 둥글고 성장하면서 마치 끝이 포크처럼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가운데에 눈이 생긴다. 이 눈이 다음해 봄이면 다시 생장하는 것이다. 잎몸은 수많은 작은 잎 조각으로 되어 있는 깃털모양이다. 이 잎 조각을 자세히 보면 중앙에 맥이 있고 여기에서 잎 가장자리로 벋어나간 측맥이 있는데 이들은 서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이다.

포자낭군은 보통 2~15개 정도가 하나의 집단을 이뤄 대포자낭을 만든다. 포자낭군을 덮는 포막이 이 과에서는 없다. 그러므로 동그란 구슬모양의 포자낭군이 선명하게 드러나 영롱한 느낌을 준다. 풀고사리에서는 대포자낭이 5개 이하로 그 수가 적은데 비해 발풀고사리는 대포자낭이 5개 이상 15개까지 하나의 대포자낭군을 이룬다.

그 외에도 이 두 종간에는 몇 가지 선명한 구별점이 있다. 문헌들은 두 종 모두 높이 1.5m라고 하지만 실제 풀고사리는 2m에 달하거나 그보다 큰 경우도 많다. 발풀고사리는 1m를 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지표면을 뚫고 올라오는 잎자루가 어느 정도 자라면 두 개로 나뉘어져 각각 잎몸을 만드는데 이것을 우편이라고 한다. 이 우편의 모양과 크기가 아주 다르다. 발풀고사리는 이 우편에 자루가 없고 길이 30센티m, 너비 7센티m 이하다.

그러나 풀고사리는 자루가 있으면서 길이 1m, 너비 30센티m에 달하는 대형이다.

이듬해에 자랄 눈은 발풀고사리가 지하줄기에 나오면서 마치 잘 감긴 미끈한 철사가 풀리듯 올라오는데 비해서 풀고사리는 두 갈래 우편 사이에서 비늘조각으로 덮인 채로 숨어 있다가 풀리면서 생장한다.

이들은 모두 전남, 경남, 제주도에 자란다. 곶자왈에서도 볼 수 있지만 서귀포의 선돌앞이나 효돈천, 신효동의 월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 중 풀고사리는 비교적 습하고 그늘진 곳에 자라고 있다. 발풀고사리는 풀고사리에 비해서는 훨씬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양지에 자라며 다소 건조한 곳을 선호한다. 

쓸모 있는 고사리

마을에 인접한 발풀고사리 밭은 아주 요긴한 땔감 공급처였다. 베어도 베어도 다시 돋아났다.

사람도 가축도 이 고사리를 먹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몸에 가시도 없고 비늘도 없다. 그냥 적당한 높이로 자라고 표면은 반짝일 뿐이다. 비에 젖어도 그냥 흘러내리니 젖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는다. 한 짐 지고 가면 그냥 바로 불을 피울 수 있다.

이 고사리는 수확하지 않고 놔두면 묵은 잎이 바싹 말라 불쏘시개로는 그만이지만 산불의 원인이 되기 십상이다. 너무나 빽빽이 나기 때문에 그 위에 드러누워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어서 시골아이들에게는 친숙하지만 여타의 식물들은 들어오지도 못한다. 요즘 말로 종 다양성에는 아주 부정적인 식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그들과 여타의 생물들과의 관계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풀고사리는 대형으로 자라긴 하지만 어쩐지 친숙한 식물은 아니다. 이들이 집단으로 자라는 면적은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땔감으로도 크게 쓰이지 않았다. 어린잎을 고사리처럼 먹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 식물은 독성이 없기 때문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전에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제주도에선 흔히 식용으로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종들은 기후변화로 널리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자료에 풀고사리는 중국의 여러지역, 인도, 일본에, 발풀고사리는 중국의 여러 지역을 포함해 네팔, 말레이시아,
베트남, 스리랑카,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호주 등에 분포한다고 친절하게 기재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자란다는 사실은 누락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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