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정읍 일과리 장수원(웃동당)물

식수가 풍부한 마을 '일과1리' 유명
바닷가 천연지하수 샘솟는 '장수원'
콘크리트 등 정비로 본래 모습 상실
용출량 등 최하점…보존관리 절실

물은 지구상의 모든 만물이 생명을 유지를 위한 생명 순환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과거 제주인 역시 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만들고 이 마을에서 살아가며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제주의 물 용천수가 우리의 무관심과 욕심으로 고갈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난개발과 무분별한 사용은 지속가능한 자연자원으로서 용천수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장수원(웃동당)물 사례를 살펴 제주의 생명수인 용천수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한다.

△역사 간직한 마을 일과1리

제주시에서 일주도로변을 따라 54.4㎞의 거리에 위치한 대정읍 일과1리는 옛날에는 숲으로 우거져 있었던 곳이라 해 '서림'이라고 불렸으며 연대 이름도 서림연대라 했다.

일과1리에는 많은 용천이 있어 대정읍에서 가장 식수가 풍부한 마을로 이 지역에 분포한 고인돌이 아주 오랜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음을 말해 준다.

대정읍과 안덕면 일대에 생활용수를 공급하던 서림수원지는 지금은 기능을 못하지만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앞쪽 바닷가엔 환해장성 및 서림연대가 위치해 유서 깊은 역사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고 용천수가 샘 솟는 능갯물 야영장에서는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용천수 집중 장수원

장수원(長水源)은 바닷가 일대에서 천연지하수가 솟아나는 샘이 수십 곳이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위쪽에는 '웃동당물', 아래쪽에는 '알아기물'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밀물 때는 '알아기물'부터 차츰차츰 올라와서 만조가 되면 '웃동당물'만 남게 돼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한 것은 물론 제사 때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가서 이 물을 떠다가 제사를 지내곤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마을 주민들이 장수원물을 신성한 물로 여겼다는 반증이다.

장수원은 주로 여성들이 도란도란 모여 목욕을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마을 사랑방 역할을 했다.

△멸실 위기 직면

이처럼 일과리 주민들에게는 신성한 물로 삶을 함께해온 '장수원물'이 멸실 위기에 처해있다.

제주연구원이 지난 2016년 12월 제주도에 제출한 '제주특별자치도 용천수 관리계획 수립' 용역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장수원물'은 역사문화와 접근성, 용출량, 수질, 주민이용, 환경 등을 평가한 보전관리평가 점수에서 20점 만점에 9점을 받는데 그쳤다.

항목별(5점 만점) 점수를 보면 수질은 3점을 받아 그나마 양호한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접근성은 2점을 받는데 그쳤다.

특히 역사문화와 용출량, 주민이용, 환경은 최하점인 1점을 받아 보전관리가 시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수원물'의 멸실 위기에 놓인 것을 두고 다양한 원인과 가설이 대두되고 있지만 콘크리트 등 과도한 시설정비로 인한 원형 훼손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과도한 정비로 인해 지금은 원래 모습을 잃어 주민은 물론 관광객 등 방문객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제주 생명수 보존 절실

제주인의 생명수 역할을 한 용천수가 난개발과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

용천수 고갈은 제주인이 쌓아온 역사와 문화의 쇠퇴를 의미한다. 제주인은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을 일구며 담수(淡水)가 흐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해 살아왔으며 용천수를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물 보전과 이용에 대한 연대의식이 생겨나고 물허벅과 물구덕, 물팡 등 제주만의 독특한 물 문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용천수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가치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가 용천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제주의 생명수인 용천수는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제주인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용천수는 현재 세대가 사용하고 버리면 끝나는 자원이 아닌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 보존해야 하는 제주인의 얼이다.

지금이라도 우리의 소중한 자연자원인 용천수가 본래 모습을 찾도록 보존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인터뷰 - 정성필 향토역사가

"음력 7월 15일인 '백중'날이면 용천수 장수원에 모여 함께 시원한 물을 맞았던 하나의 문화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한평생을 대정읍 일과1리에서 보내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해 온 정성필 향토역사가(75)는 "백중 때 물을 맞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설 때문에 음력 7월 15일만 되면 일과1리 주민들은 물론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장수원은 항상 인산인해를 이뤘다"며 "지금은 그 문화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역사가는 "예로부터 대정읍 일과1리는 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유명했다"며 "장수원도 많은 용출량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은 샘통이나 허벅에 물을 길어 집으로 가져갔고 아낙네들은 빨래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장수원은 지역주민의 삶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곳"이라며 "집마다 소를 길렀던 시절에는 사람은 물론 소도 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장수원에 모였다"고 덧붙였다.

정 역사가는 "지금은 주민들이 장수원을 목욕탕으로 이용하기 위해 지어 놓은 시설도 노후화됐다"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장수원을 볼 때면 안타깝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마을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용천수 장수원을 보존하기 위한 개선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지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