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참으로 수상하다. 고사리를 뜻하는 고비에 접두어 '쇠'가 붙었다. 그 앞에 다시 도깨비가 붙었으니 세 단어가 합쳐서 하나의 고유명사를 형성했다. 보통 식물 이름에서 쇠라는 단어는 소 혹은 쇠를 의미할 때 사용한다. '쇠무릎'에서는 소의 무릎과 같은 마디가 있는 풀이라는 뜻이고, '쇠줄고사리'에서는 철사처럼 가늘고 질긴 줄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도깨비는 무엇인가. '능청맞고 변덕이 심한 아비라는 뜻의 돗 아비에서 온 말이다. 우리 민간 설화나 동화 같은 데에 자주 등장하는 귀신의 한 종류로 어리숙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속기도 잘하고 가난하고 착한 사람을 잘 도와주는 모양이 시골 아저씨의 모습이다. 몽당 빗자루나 빨래방망이 혹은 절구 공이 같은 것이 도깨비로 변한다고 동화 속에 말한다.' 네이버국어사전의 풀이다. 

도깨비라는 접두어가 들어간 식물의 이름도 여러 가지가 있다. 도깨비쇠고비를 비롯해 도깨비가지, 도깨비바늘, 도깨비부채, 도깨비사초, 도깨비엉겅퀴 등 하나같이 가시가 나 있거나 기묘하게 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도깨비쇠고비에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 식물은 쇠고비, 긴잎도깨비쇠고비, 참쇠고비, 산쇠고비, 윤쇠고비와 한 무리를 이룬다. 이 6종류의 쇠고비 가족 모두 제주도에 분포한다. 그 중 도깨비쇠고비와 쇠고비가 흔하다. 나머지 4종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도깨비쇠고비는 제주도의 바닷가라면 어디에서든 볼 수 있다. 다른 식물들은 붙어 있기도 힘든 벼랑, 바위틈, 푸석푸석 메마르고 한 움큼씩 부스러져 내리는 흙벽에도 붙어 자란다. 뿐만이 아니다. 마을 안 길가의 도랑이나 돌담에도 붙어 있고, 길이나 건축을 하려고 쌓은 석축에도 자란다. 바다 가까운 저지대라면 어디에나 자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흔한 고사리의 하나일 것이다.

키는 50㎝ 내외, 10~14쌍의 작은 잎 조각들이 깃 모양의 잎을 만든다. 이 잎 조각들은 창날모양이거나 끝이 뾰족한 달걀모양을 하고 있다.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구불구불하다. 표면은 반짝이고, 뒷면에 포자낭군이 특별한 규칙이 없이 흩어져 붙어 있다. 포자낭군을 덮는 포막은 방패모양인데 가운데가 검은색이다.

일본에서는 이 식물을 다양하게 개량해 원예용으로 보급한다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식물을 아름답고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기이하게 생겼다거나 암석과 더불어 조화롭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받지 말란 법은 없다. 잎자루 전체에 가시 같은 비늘이 붙었고, 창날 같은 외모, 그다지 산뜻하지 않은 장소에 자라기 때문에 도깨비나 가지고 놀만한 방망이를 연상한다해서 도깨비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은 아닐까. 얼마나 억세게 생겼으면 '쇠'라는 접두사까지 붙었을까.

도깨비쇠고비의 영어 이름은 하우스 홀리 펀 즉 집호랑가시고사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홀리(holly)는 호랑가시나무를 말하는데 이 나무는 잎 가장자리에 뾰족뾰족한 가시가 돋아 있고 새빨간 열매가 아름다워 흔히 크리스마스 때 장식용으로 쓴다. 사랑의 열매는 아마도 이 나무의 열매를 본 뜬 것일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접하다보면 도깨비쇠고비의 외모가 호랑가시나무의 잎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도깨비쇠고비가 해안 저지대에 흔하게 자라는데 비해서 같은 속 식물로 곶자왈에 아주 흔한 식물이 있다. 쇠고비라는 종으로 거의 모든 곶자왈에서 관찰이 가능하다. 좀 드물거나 거의 없다고 한다면 아주 건조한 지역일 것이다.

키는 보통 50㎝, 비자림이나 교래곶자왈 같은 울창한 숲으로 햇빛이 가려지고 공중습도도 높게 유지되는 곳에서는 이보다 훨씬 크게 자란다. 작은 잎 조각이 16~30쌍으로 도깨비쇠고비에 비해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이 잎 조각은 긴 타원형이며, 잎자루에 붙는 밑 부분이 비대칭이고 귓불 모양으로 된다. 가장자리엔 잔 톱니가 발달한다포자낭군은 잎 뒷면에 5줄까지 배열하는데 이를 덮는 포막은 도깨비쇠고비와 마찬가지로 방패모양이지만 가장자리가 간혹 갈라지고 전체적으로 흰색을 띤다. 

도깨비쇠고비는 건조하고 강한 햇빛에 적응한 식물답게 잎의 표면은 큐티클 층이 발달해 반짝이면서 증산을 최대한 억제한 모습이고, 잎이나 잎자루가 다육식물처럼 두껍고 군더더기 없이 응축했다. 대체로 묵은 잎도 떨구지 않고 오래 간직해 뿌리부분 토양의 건조를 방지하고 바위가 뜨거워지는 것도 막는다.    

이처럼 도깨비쇠고비가 강한 햇빛에 적응했다면 쇠고비는 잎을 구성하는 잎 조각의 수도 도개비쇠고비의 배 정도로 많고,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발달하며, 잎의 표면도 도깨비쇠고비만큼 반짝이지도 않는다. 

흔히 사랑의 열매는 이 나무의 열매라고 알려져 있다. 빨간 열매 3개가 달려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진행하는 국내 소외계층을 위한 공동모금 운동에 참여한 사람에게 제공하고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전라남·북도에도 분포하지만 아주 드물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을 정도다. 제주도에서는 주로 안덕, 대정, 한경, 한림 등 서부지역의 곶자왈에 자란다. 

이 호랑가시나무를 홀리(hollly)라해 사용하게 된 건 왜일까. 사실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만드는 건 유럽의 전통이다. 색깔이 화려한 상록활엽수가 거의 없는 북유럽에서는 전나무를 사용한다. 전나무 무리의 하나인 구상나무는 유럽으로 가져간 후 크게 인기를 끌었다. 유럽에는 유럽호랑가시나무가 있는데 이게 실질적인 홀리다. 유럽에선 드물게 상록활엽수인데다 크리스마스 전후에 빨간 열매를 달아 한결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호랑가시나무의 학명이 아일렉스 코르누타인데 유럽호랑가시나무는 아일렉스 아퀴폴리움으로 다른 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지방에서 정초에 이 나뭇가지를 집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다. 무서운  가시로 악귀가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의 유사한 풍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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