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은 멀리서 보면 울창한 숲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연주에 몰두해 있는 오케스트라다. 악기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내는데 정신이 없다. 소리야말로악기의 특성이다. 크다고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생겼다고 소리까지 단순한 건 더욱 아니다. 소리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무게도 없고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많은 악기와 연주자와 온갖 장치와 조명과 시설을 갖추는 노력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는 그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저 파동일 뿐이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서다.

용암숲 곶자왈 식물들은 그 종류만큼이나 크기와 생김새도 각양각색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식물들은 선태식물들과 그보다 더 원시적인 식물들을 제외하고도 적게는 600에서 많게는 800가지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한 공간에 살고 있는 종류의 다양성과 그들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본다 해도 이 용암숲이 얼마나 다이내믹한 지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물며 시시각각 바뀌는 계절의 순환에 따른 구성원의 교체, 그들의 생태학적 기능의 변화까지 포함하면 얼마나 복잡다양하단 말인가.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이 숲은 이토록 아름다워 지는 것이다.

바닷가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정말로 제주도 용암숲다운 곶자왈이 있다. 이곳에 가면 어두컴컴한 상록활엽수만으로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울퉁불퉁한 용암파편들만이 구르는 삭막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종가시나무를 대표로 하는 20~20그루 정도의 짙은 상록활엽수군락, 인근의 마을과 연결하는 팽나무며 멀구슬나무들, 한라산과 이어지는 생태계의 징검다리 단풍나무들, 신기하게도 이곳 말고는 거의 볼 수 없는 무환자나무 자생지들이 세모, 네모, 그렇지 않으면 동글 둥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이 숲을 지나노라면 간간이 나무들 사이로 멀리 산방산이 언 듯 언 듯 보인다. 그러다 숲을 다 빠져나왔다싶으면 높이 2~3m의 윤노리나무, 쥐똥나무, 실거나무, 두릅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가축들에게 뜯겨버린 풀들이 마치 잔디처럼 밟힌다. 그런 사이사이로 멀리 5~7m의 머귀나무며 팽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역삼각형으로 서 있어 마치 아프리카의 사바나초원이나 북방 어느 스텝지대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이런 식생은 특히 가을에서 겨울이 끝날 때까지가 제 맛을 내는 철이다. 상록수와 낙엽수가 섞이는 곳에는 겨울이면 여름에 비해 햇빛이 훨씬 많이 들어오는 것이다. 바람은 차단되어 고요한데 나뭇잎이 떨어진 잔가지들 사이로 반짝반짝 비치는 햇빛이야말로 가뭄의 단비다. 한 여름 그 많던 하록성 풀들이 서서히 저음화하면서 사그라지면 이때를 기다려온 땅바닥이나 누워 있는 바위 표면에 붙어있던 각종 선태식물들은 물론 작은 종류의 상록성 양치식물들이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큰봉의꼬리다. 겨울이 되면 용암숲의 지붕이 되어 주던 큰 나무들도 나뭇잎을 떨구며 그저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다만 그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몇 종의 덩굴식물들, 그 아래 용암 틈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썩어가면서내는 따뜻한 열기를 난방삼아 살아가는 작은 식물들이 나름의 연주를 하고 있어 아직도 오케스트라는 계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정도다.

그런 황량하거나 다소 빈한해 보일 수도 있는 숲을 생기가 돌게 하는 식물이 바로 이 큰봉의꼬리다. 한겨울에도 변형하거나 드러눕는 일 없이 꼿꼿하여 숲속의 신사 같다. 높이 약 70㎝ 정도다. 보통 30㎝ 정도의 포기를 형성한다. 다만 이곳에서는 1m2의 군락을 이룬다. 이 큰봉의꼬리는 십중팔구 지표면이나 지표면과 유사한 수평적 입지를 갖춘 바위 위에 자란다.

이와 비슷하게 생긴 봉의꼬리라는 식물도 있다. 높이 50cm 정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봉의꼬리는 벼랑이나 바위, 나무 등걸 심지어 돌담이나 건물 같은 인공구 조물의 벽면과 같이 수직적 입지환경에 자란다. 큰봉의꼬리와는 자기의 터전을 선택하는데 상당히 반대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봉의꼬리라는 식물이 좀 더 강한 햇빛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뿐 아직까지 그 원인을 정확히 밝힌 사례는 없다.

이런 생태적 차이와 함께 모양에서도 이 두 종은 다른 점이 많다. 이들은 모두 영양엽과 포자엽 두 가지의 잎을 가지고 있다. 두 종류를 구분하는 가장 두렷한 차이점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잎 모두에서 봉의꼬리에는 중축에 날개 있는데 비해서 큰봉의꼬리에는 없다는 것이다. 영양엽만을 보면 봉의꼬리의 잎 가장자리에는 매우 크거나 작은 또는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톱니가 있는데 비해서 큰봉의꼬리엔 잎가장자리가 엽록소가 없이 흰색을 띠며 크기와 모양이 거의 일정한 가시 같은 톱니가 나 있다. 잎맥도 별도의 처리없이 관찰 가능한데 봉의꼬리는 잎의 가운데 있는 중륵에서 잎 가장자리 중간 정도에서 두 가닥으로 갈려 있는데 비해서 큰봉의 고리는 거의 까지 중륵에서 갈리기 때문에 마치 외줄기 잎맥이 평행으로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치식물의 영양엽과 포자엽

양치식물에는 두 가지의 잎을 갖는 경우가 있다. 하나는 생식기관은 가지지 않고 오로지 영양분 생산 기능만을 수행하는 영양잎이다. 보통은 광합성을 활발히 하며 질소대사를 비롯한 많은 영양적 물질대사의 중심이 된다. 마치 꿀벌 중의 일벌에 비교됨직 하다. 나엽이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생식에 직접 관련하여 포자형성기능을 갖는 포자엽이다. 전적으로 생식에만 관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광합성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잎도 있다. 홀씨잎, 실엽, 생식엽이라고도 한다. 보통 이 둘은 형태와 기능에서 상당히 다르다.

한편, 엽록체가 풍부한 보통 영양엽의 일부분에 포자를 분화하여 포자산포 후에도 영양엽과 동등하게 기능하는 종이 있다. 이러한 잎을 영양포자엽이라고 한다. 양치류에서는 이처럼 영양엽, 포자엽에로의 분화가 철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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