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 용암의 땅, 곶자왈 탐사 14. 고사리

이 순간 제주도 산야에는 고사리가 지천으로 돋아나고 있다. 제주도 며느리들은 이때만 돌아오면 평소에는 가지 않던 산으로 들로 나간다. 고사리를 꺾기 위해서다. 과도하다고할 정도로 집착한다. 그러면 어머니를 찾는 자식들의 아우성도 철을 만난 듯 들려오는 것이다. 고사리 꺾는데 몰두하다보면 길을 잃기 일쑤다. 

고사리는 먹기 위해서 꺾는다. 그래도 더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제사상에 올리기 위함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제사를 모시는데 고사리는 필수적이다.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른다. 그러니 며느리들은 제사를 잘 모시기 위해서 아주 깨끗한 곳에서 그 중에서도 아주 어랑진 것만 골라서 정성스럽게 꺾는다. 그게 며느리의 도리요 사명이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사리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고사리라 부른다. 북한에서도 연변에서도 고사리라고 한다. 고사리가 분포하지 않는 한국 땅은 없을지 모른다. 중국. 시베리아, 유럽, 북아메리카, 유라시아의 거의 대부분 지역에도 분포한다. 학명은 프테리디움 아퀼리눔(Pteridium aquilinum)이다. 프테리디움은 고사리를, 아퀼리눔은 독수리를 의미한다. 그러니 학명의 의미는 '잎 모양이 독수리 날개를 닮은 고사리'라고 할 수 있다. 다 자란 고사리 잎 모습이 유럽인들의 눈에는 독수리의 날개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고사리란 이 고사리를 특정해서 말하는 고유명사지만 한편 양치식물을 두루 뭉수리 묶어서 지칭하는 일반명사기도 하다. 양치식물을 고사리류라고도 한다. 그러니 대부분의 양치식물의 명칭에는 고사리가 붙는다.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는 양치식물 250여 종 중 150종 이상에 이 고사리가 붙는 것으로 추산된다. 풀고사리, 실고사리, 꿩고사리, 비고사리, 바위고사리 하는 식이다. 신기하게도 과거에는 양치식물로 봤으나 최근에는 따로 구분하는 석송식물에는 이 고사리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마치 언젠가는 분리될 것이라고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석송, 부처손, 물부추 ····,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엔 고사리 무리에 딱 한 종이 자라기 때문에 그저 고사리라고 하면 우리가 꺾는 고사리만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세계적으로는 11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 고사리는 너무 널리 퍼져 있어서 각각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다양한 모양으로 분화했다. 그러니 그런 부류들까지 고려하면 아종과 변종 11개로 나뉘는데, 그 중 우리나라 고사리도 변종(Pteridium aquilinum var. latiusculum)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고사리라는 식물은 널리 퍼져 있기도 하지만 한겨울을 힘겹게 넘겨야했던 우리의 조상들이 봄이면 먹음직스럽게 돋아나는 고사리의 어린 싹을 보고 그냥 넘어가질 못 했던 같다.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일본과 만주 일대에서 주로 식용하고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는 식용하지 않는다. 고사리나물은 고사리를 꺾어서 삶은 다음 바로 조리해 먹거나 말려두었다가 다시 불린 다음 조리하게 된다. 이런 상태를 고사리나물이라고도 하고 한자로 궐채(蕨菜) 또는 궐(蕨)이라고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한편 이 나물의 모양이 주먹 쥔 손을 닮았다하여 권두채(拳頭菜), 즉 주먹머리나물로 부르기도 했다. 어린아이의 손을 고사리손이라 하는 것도 그런 의미다. 뿌리줄기는 즙을 내어 건조시키면 녹말가루가 나온다. 이걸 식용 또는 약용한다. 이처럼 우리는 이 나물의 식용 방식이 아주 다양하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만주에서도 고사리국, 고사리나물, 고사리밥, 고사리산적 등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 한다'는 속담이 있다. 제상에 고사리를 꼭 놓는데서 모두가 즐겨 먹는 음식임을 에둘러 이르는 말이다. 고사리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기기도 하지만 '고사리는 여덟 번 돋아나온다'는 꺾어도 또 꺾어도 계속 돋아 나오는 고사리 모습을 가리키는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어떤 시련이 있어도 끊임없이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뜻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고사리의 독성

우리는 고사리와 아주 오래전, 수천 년 아니면 수만 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 온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독성이 있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 식물을 먹는 방법을 터득한 것일 것이다. 유럽인들이나 아메리카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소나 여타의 가축들조차도 고사리를 먹지 않는다. 간혹 미국 유학생들이 산야나 공원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고사리를 실컷 꺾어다 먹었다는 무용담을 들을 수 있다. 이걸 본 미국인들이 나중엔 이 고사리 꺾는 것을 금하거나 독점적으로 채취해 비싼 가격으로 팔더라는 얘기도 있다. 

고사리는 섬유질이 많아 장시간 배고픔을 잊을 수 있고, 카로틴, 비타민C, 비타민B2 등 다양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 뿌리줄기 100g에 칼슘이 무려 592㎎이나 함유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과거 칼슘식품이 적었던 시절 칼슘원으로서 좋은 나물이었다. 

문제는 고사리가 쓰고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잎에는 아노이리나제라고 하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는 비타민B1을 파괴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고사리를 지속적으로 다량복용하면 각기병(beriberi)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경우에 더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각기병이란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뜻의 스리랑카 원주민의 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기병에 걸리면 이와 같이 무기력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신경계, 피부, 근육, 소화기처럼 열량대사와 중요한 곳이 비타민 B1 결핍에 더욱 민감하여, 이들 장기에 이상을 초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정도를 극복하지 못할 민족이 아니다. 이러한 쓴맛과 독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삶아 우려내는 방법을 고안해 냄으로써 한 방에 해결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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