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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짭조름한 쑥버무리사물과 풍경 23. 쑥버무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입력 2019-04-01 (월) 17:23:57 | 승인 2019-04-01 (월) 17:27:04 | 최종수정 2019-04-01 (월) 17:27:00

4월이다. 사방에서 온갖 향기가 발걸음을 부른다. 벚꽃이 만개한 덕분에 밤길마저 환하다. 가로등이 따로 없어도 될 정도다. 이런 봄날을 만끽 할 수 없다면 참으로 불행하다 싶다. 책상머리에서 온종일 서류더미와 싸워야 하는 처지는 이런 날일 수록 덧없이 느껴질 것이다. 겨우 시간을 내어 걸을 수 있는 여유는 점심시간뿐인 사람도 많다. 그것마저 여유롭다 할 처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한 바퀴를 느리게 걷는다. 안보이던 건물이 어느새 불쑥 세워져 있기도 하다. 자고일어나면 집 한 채가 뚝딱 지어지던 한 철이 있었는데, 불경기라 해도 여전히 집은 새로 지어지고 길을 뚫리고 있다. '지어지는 것은 지워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길을 걸으며 하게 된다. 포클레인 소리가 날 때마다 어느 집, 어느 길이 지워지고 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어 피는 꽃들이 있다. 돌담에 핀 꽃을 볼 때마다 식물들의 생명력에 대해 고개를 숙이게 된다. 감히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강인함, 돌담에 혹은 시멘트 벽 틈에 핀 꽃들이 증명하고 있다. 

어디를 걷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풍경 중 하나는 돌담에 핀 꽃이다. 한 알의 씨앗안에 어떤 힘이 있길래 뿌리를 내리고 저 바위를 뚫고 나올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돌담에 핀 꽃의 정체가 궁금해 작은 꽃 가까이 가본다. 아마 자주 괭이밥꽃이다. 

하트 모양의 앙증맞은 꽃잎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다가갈수록 수줍게 오므라든다. 밤에만 꽃잎이 접힌 다고 알았는데, 낯선 이가 다가오니 저절로 몸짓이 오므라드는 모양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마당에 잡초를 뽑아 낸다어린 시절부터 늘 해오던 일이다장갑 끼고 날카로운 호미 들고, 자란 새우란 수선화를 추스르며 어디서 숨어들었는지 모르는 개민들레 엉겅퀴 쇠비름을 단숨에 뽑아 낸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괭이밥작은 발로 잘도 멀리 기어가 있는 괭이밥에 손을 대려는데 
앙증맞게 핀 노란 꽃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초롱같은 시선들에 놀라 흠칫손을 뗀다아, 오종종하게 숨어서 피어난 이 작은 꿈들!유년 시절 내 꿈이 이렇게 숨어 있었구나내 곁에서 늘 이렇게잘게 잘게 꿈을 펴고 있었구나 (양전형, 「괭이밥꽃」전문)

들꽃들은 아무리 밟아도 새봄이면 다시 피어난다. 눈이 걷히면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워 어느 틈엔가는 와글와글 피어 있다. 개불알꽃, 양지꽃, 광대나물, 쇠별꽃… 등. 눈 밝은 이가 아니면 쉽게 지나치기도 하고 밟고 지나가도 아무 소리 없으니 알 턱이 없다.

사방에서 유채꽃잔치니 벚꽃 축제니 하면서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다. 그래도 정겹고 반가운 것은 쑥 캐러 가자는 소리가 아닐까. '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푸르고 깊은 쑥 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모리 준이치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을 보고나서인지 봄나물 캐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누군가 쑥을 캐왔으니 나눠가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쑥국, 쑥떡, 쑥부침개, 쑥버무리...,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어려서 이맘때는 쑥버무리를 자주 해먹었던 것 같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도 쑥은 지천에 있어 한바구니 캐는 건 일도 아니었다. 바구니 하나 들고 남의 밭 둘레를 한 바퀴만 돌면 한바구니 가득 쑥이 담겨져 있었다.

그때는 쑥 캐는 법이니 뭐니 배운 것이 없다. 캐는 게 아니라 뜯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어린 쑥으로 뜯어 집으로 가져가면 할머니도 어림짐작으로 밀가루에 설탕이나 소금 약간을 쳐서 쓱쓱 버무리고 솥에 찌어내셨다. 가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봄철 간식이 쑥버무리가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쑥버무리를 해먹었다. 온갖 래시피를 뒤지면서 간과 비율을 맞추면서 하였으나 간이 달게 쳐졌다 싶다. 그래도 이 얼마만이냐 싶게 급하게 두어줌 맛을 본다. 깊은 쑥 향이 코를 뚫고 심장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무렇게나 쓱쓱 버무려서 솥에 쪄도 맛있기만 하던 그 시절과는 맛이 약간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빠진 게 있다면 할머니의 손맛이지 않을까. 

그리운 할머니의 손맛. 거친 손으로 쑥과 밀가루를 설렁설렁 섞다가도 쓱싹 쓱싹 힘을 주어 비비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수 불을 떼서 밥을 해먹던 시절이라 머릿수건을 올리며 땀을 닦던 모습도 선하다. 어쩌면 할머니가 해준 쑥버무리에는 할머니의 땀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래서 맛은 짭조름하고 달콤하였던 것인지도. 멕시코의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작품 제목 중에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있다. 이를 차용해 나는 이렇게 쓴다. 아, 그리운 달콤 짭조름한 쑥버무리여!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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