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섬 용암의 땅, 곶자왈 탐사 15

고비라는 고사리가 있다. 양치식물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고사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고사리처럼 식용하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고비를 식용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어쩌면 먹을 수 없는 고사리라고 여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육지 사람들은 이 고사리를 아주 즐겨 먹는다. 북한이나 만주사람들도 먹고, 일본사람들도 식용하며, 저 멀리 티베트사람들도 먹는다고 한다.  

아주 건조하지 않은 양지바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보통 50㎝에서 잘 자란 것은 80㎝에 달하는 것들도 볼 수 있다. 어린잎은 돌돌말린 모습으로 나오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펴지게 된다. 다 자라면 폭이 20~30㎝ 정도가 된다. 이 펴지기 전 어린잎을 꺾어다 조리해서 먹게 되는데 처음 꺾을 때는 가는 솜털로 싸여 있어서 이걸 어떻게 먹나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손으로 아주 쉽게 제거되고 일단 제거하고 나면 양치식물 고유의 비늘이나 여타의 털이 없이 매끈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곶자왈에서는 햇빛이 잘 드는 바위틈이나 경사가 심하여 다름 식물들이 자라지 않는 곳을 차지하여 자란다. 포자가 달리지 않는 영양잎과 포자가 달리는 포자잎이 처음부터 구분해서 자란다. 아주 초기 아마도 전년도에 땅속줄기에서 다음해 나올 잎의 형태와 기능이 이미 정해져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기능의 구분이 어떤 조건에서 정해지는지는 아직 연구사례를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재배하게 된다면 이런 분야의 연구도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먹기에는 포자잎보다는 영양잎이 보기에도 좋고 식감도 좋아 더 경제성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땅속줄기는 짧게 기거나 서는데 아주 많은 잎들이 모여 나는 형태를 하므로 뭉툭한 게 보통이다. 봄이 되면 이 부분에서 10~20개, 많으면 40개까지 굵은 줄기가 나온다. 고사리가 길게 땅속을 기는 줄기에서 드문드문 하나씩 나오는데 비해서 이 고비는 여러 개가 나오기 때문에 한 두 포기만 채취해도 한 끼 반찬으로 족할 정도다. 잎은 대체로 포자잎이 먼저 나와 포자가 날리기 시작한 후에 영양잎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영양잎을 떠받치고 있는 잎자루는 아랫부분이 부풀어 있고 날개를 형성한다. 잎몸은 녹색이긴 하지만 많은 경우에 누르스름한 빛이 돈다. 잎맥은 Y자로 갈라진다.  

고비의 학명은 오스문다 야포니카(Osmunda japonica)다. 오스문다의 어원은 분명하게 알려진 바 없는데 양치류의 일종에 대한 중세 영어와 중세 프랑스어 단어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고사리를 영어로 브라켄(bracken)이라고 하는데 비해서 고비는 아시아왕고사리(Asian royal fern)라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사할린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동양에서는 피들헤드요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고사리를 먹는 민족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먹는 양치식물은 단연 고사리를 꼽을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이 고사리를 먹는 방식은 어린잎을 꺾어다 삶은 후 데쳐 먹는 방식과 삶은 후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린 후 조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외국에도 고사리를 식용하는 민족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먹을까? 물론 우리나라와 대동소이한 방법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방식이 피들헤드(fiddlehead) 혹은 피들헤드 그린(fiddlehead green)이라는 야채요리다. 피들헤드란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 끝에 있는 두루마리처럼 휘어진 장식을 말하는데 이걸 닮았다고 해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어떤 고사리 종류의 어린 순의 머리 부분을 사용한 요리다. 그런데 말린 게 아니라 싱싱한 상태로 머리 부분의 모양이 으스러지지 않게 하는 요리다. 

북프랑스의 여러 지역에서는 중세기 초부터 이런 요리가 알려져 있다. 오랜 옛날부터 아시아 전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전통적인 이런 요리가 식단의 일부가 되어왔다고 한다. 러시아 극동지방에서는 가을에 야생에서 채집해 겨울에 소금에 보존한 다음 봄에 먹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건 아마도 땅이 얼기 전 다음해 봄에 나오게 될 어린 싹을 채취하는 것일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는 고추, 갈랑갈, 레몬그라스, 터머 잎과 다른 향신료를 넣은 풍부한 코코넛 소스로 만들어 먹는다. 필리핀에서는 디플라지움 에스큘란툼(Diplazium esculentum)이라는 고사리의 피들헤드를  토마토, 소금에 절인 달걀 조각, 그리고 간단한 비니그레트 드레싱을 곁들여 샐러드로 만들어 먹는다. 이 고사리는 대만을 비롯한 여러 동남아시아 나라에서 식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고비나물을 젠마이라고 하여 고사리와 함께 즐겨 먹는다. 인도에서도 양치식물 요리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네팔에서는 버터와 함께 조리해 먹는 니유로라고 하는 계절 음식이 유명하다. 

오늘날 피들헤드요리로 사용하는 고사리는 단연 북아메리카에서 널리 알려진 오스트리치고사리다. 이렇게 표현하면 상당히 외국 풍으로 들리지만 실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자라는 청나래고사리(Matteuccia struthiopteris)를 말한다. 영어의 또 다른 이름은 아예 피들헤드고사리라고 한다. 북미에서는 주로 북동부의 습윤한 지역에서 자란다. 동부 캐나다와 메인 주의 페노브스코트 민족은 전통적으로 이 고사리를 수확해 왔으며, 18세기 초 이 지역 이주 유럽인들에게 처음 소개되었다. 피들헤드는 지금까지도 이 지역에서 전통 음식으로 남아 있으며, 대부분의 상업적 수확은 뉴브런즈윅, 퀘벡, 메인에서 이루어진다. 봄에 수확하여 삶은 다음 냉동 보관하여 유통한다. 이 지역에서는 이 피들헤드 채소로 슈퍼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청나래고사리는 제주도에는 자라지 않지만 북한이나 만주에서는 고사리보다도 더 즐겨 먹는다. 고사리보다는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고사리는 충청남·북도, 경기도, 강원도 이북, 만주, 러시아, 일본, 중국, 유럽에 널리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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