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 내리쬐는 햇빛으로 달구어진 바위는 얼마나 뜨거울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식물이 있다. 석위라는 양치식물이다.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곳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친척 종들과는 사뭇 다르다. 생식에는 물이 필수적이니 물기가 많은 곳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려면 쉽게 마르지 않는 음지가 적격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인 생태를 갖는 것이니 상당히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위나 나무줄기에 붙는 줄기는 직경이 약 3-4㎜ 정도다. 이런 줄기가 바위의 표면을 촘촘하게 기면서 서로 얽혀 마치 그물 같이 된다. 이런 줄기에서 5㎝ 정도 간격으로 잎이 나온다. 별모양의 비늘 같은 털이 촘촘하게 붙는 잎자루는 20㎝에 달한다. 잎몸은 홑잎으로 창날모양인데 가장자리가 밋밋하여 마치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유물인 청동검을 연상케 한다. 다만 드물게 물결모양을 하며, 두꺼운 가죽질이다. 이 잎몸은 대략 길이 10-30㎝, 너비 2-5㎝ 정도 된다. 대체로 영양잎은 다소 넓고 비교적 얇으며 물결모양이고 간혹 잎 끝이 두 개 또는 몇 개로 갈라지기도 한다. 생식잎은 좁고 끝이 갈라지지 않고 뾰족하며 좀 더 두껍다. 또한 생식잎은 뒷면에 적갈색의 포자낭군이 전면적으로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 붉게 보인다.  

이와 같은 잎이 전면적으로 촘촘하게 자라게 되므로 정작 그 바위나 나무는 보이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바위가 완전히 노출됐을 때보다는 덜 뜨거워지겠지만 그래도 부분적으로는 50℃는 훌쩍 넘을 것이다. 뜨거운 바위와 강한 바람은 증산속도를 급격히 상승시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식물이 견딜 수가 없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이 종이 줄기와 뿌리 모두 두꺼운 조직 내에 물을 다량함유하고, 몸 전체에 조밀하게 붙는 비늘 같은 털이 몸을 감싸기 때문일 것이다. 

석위는 제주도에서는 아주 흔한 식물인데 비하여 전국적으로는 비교적 희소한 식물이다. 남해안의 도서지역에서나 간혹 관찰되는 정도다. 국경을 넘어서도 대체로 남방에 분포하는데, 일본, 중국, 타이완, 베트남, 미얀마, 인도 등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위와 혈연적으로 가까운 곶자왈에 자라는 식물로는 우단일엽과 세뿔석위를 들 수 있다. 애기석위라는 종도 있다고 하나 아직까지 제주도에서 본 적은 없다. 우단일엽은 키가 10㎝ 이내의 작은 식물이다. 주로 나무줄기에 붙어 자란다. 자라는 모양은 석위와 아주 닮았으되 전체적으로 소형이다. 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 털이 조밀하게 나 있어 복슬복슬하여 부드러워 보인다. 이런 모양이 우단 같다 하여 이름도 우단일엽이다. 다만 이 털은 자세히 확대해 보면 별모양임을 볼 수 있다. 곶자왈에서도 볼 수 있으나 비교적 드문 편이다. 상록활엽수림이 끝나고 낙엽활엽수림이 시작되는 계곡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 전역에 분포하며, 일본, 중국, 타이완에도 분포한다. 이와 유사한 종으로 큰우단일엽이 바닷가 바위 겉에 자란다.  

세뿔석위는 석위와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잎몸이 마치 손바닥 같이 세 갈래 또는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자라는 곳 역시 석위와 비슷하지만 바닷가보다는 좀 더 곶자왈 쪽에 흔하며 작은 바위나 돌멩이 또는 나무줄기밑동에 붙는 특징이 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건조해지면 석위는 축 늘어지는데 비하여 세뿔석위는 오므라든다는 것이다. 충남, 전남, 경남에도 자라며, 일본과 중국에도 분포한다고 한다.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석위

석위의 학명은 피로시아 린구아(Pyrrosia lingua)다. 피로시아는 '불꽃을 닮은 식물', 린구아는 '혀를 닮은'의 뜻이니 '혀를 닮은 불꽃모양 식물'이라는 뜻이다. 석위라는 식물이 닮았다는 혀는 어떤 모양을 말하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사람의 혀를 닮기도 했지만 그 끝이 갈라진 것도 있는 것을 보면 뱀의 혀를 닮기도 했다. 

세뿔석위의 학명은 피로시아 하스타타(Pyrrosia hastata)다. 하스타타가 '밑 부분이 팽대하여 양쪽으로 기다랗게 돌출한'의 뜻이다. 원래 석위처럼 단순한 잎몸이었던 것에서 밑 부분이 기다랗게 팽대하여 세 개의 뿔처럼 되었다고 식물학자들은 판단한 것이다. 

우단일엽의 학명은 피로시아 리니어리폴리아(Pyrrosia linearifolia)다. 리니어리폴리아는  '가늘고 긴 잎을 가진'의 뜻이니 '잎이 가늘고 긴 불꽃모양 식물'의 뜻이다.   

석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붉고 타오르듯 위를 향한 모습이 처음 학명을 붙인 학자는 인상 깊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영어의 일반명은 펠트고사리(felt fern)다. 펠트란 사전 상 의미로 '모직이나 털을 압축해서 만든 부드럽고 두꺼운 천'을 말한다. 유목민들이 이동식 천막을 만들 때 흔히 이런 직물을 만들어 사용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이 식물에서 두꺼운 섬유인 펠트를 연상한 것이다. 

그럼 도대체 '석위'란 무슨 뜻인가. 사실 이 이름은 중국에서 쓰는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중국명 역시 석위인데 '石韋'라고 쓴다. 석(石)은 돌 또는 바위를, 위(韋)는 가죽을 뜻한다. '바위 위에 자라는 가죽 같은 식물' 정도의 뜻이다. 실제로 이 식물의 잎몸은 두껍고, 질기고, 거칠기도 하면서 반짝거리는 가죽 같기도 하다. '가죽고사리'가 이름으로서는 제격이다. 같은 식물을 두고 문화권에 따라 펠트나 가죽을 연상했다. 이에 비해 그저 이웃에서 쓰는 말을 빌려 쓰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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