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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산다馟(도)·栖(서)·關(관)프로젝트<8> 전북 고창군 책마을해리
고 미·이은지·우종희 기자
입력 2019-07-16 (화) 17:00:24 | 승인 2019-07-16 (화) 17:06:03 | 최종수정 2019-07-30 (화) 23:05:15

"'책'으로 살아보면 어때" 생각이 만든 의미 있는 변화 눈길
우리나라 12번째 아쇼카 펠로 이대건 대표 '발상 전환' 씨앗
다음세대·지역주민이 생산자, 지속·생명력 갖춘 공동체 실현

책마을 해리는 '변두리'에 있다. 도심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 한참 차를 달려 닿는 바닷가 마을(전북 고창 해리면 월봉마을)의 한 귀퉁이에 있다. 한때 학교였던 덕에 마을 어디에서나 닿을 수 있지만, 지난 2001년 폐교라는 상처를 하나 입은 공간이기도 했다. 오래된 폐교를 쓸모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는 그동안 많았다. 그럼에도 이 곳은 확실히 특별하다. 도축장이 될 뻔한 공간은 이제 온통 '책'투성이다. 책마을이라는 이름이 거저 만들어질 리 없다. 2006년 시작한 작업이다.

이대건 촌장

△ 살만하기 보다 살 맛 난다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이란 책마을 해리 '선언'을 알아채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기증받은 책들이 길을 내고 누구든 그 안을 헤매고 부대끼는 것으로 마을을 이룬다. 안내를 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따로 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뭉쳐지며 대단해졌다. 마을이란 것도 사실 그렇다. 처음 몇 명이 모여 살다 필요한 것을 찾고, 필요를 찾아 모이면서 마을을 이룬다. 1939년 증조부가 만들어 기증한 학교가 농촌 고령화 바람에 문을 닫고 팔리게 됐다는 얘기에 귀향을 선택한 이대건 촌장(49)이 아내 그리고 두 딸과 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 2012년. "그 때와 비교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늘었냐?"는 질문은 우문이다.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는 현답이다.

'왜 책마을인가'라는 물음에도 "책 만드는 것을 제일 잘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책을 만들고 인문학을 하는 것으로 먹고 살만은 한지'하고 옆구리를 쿡 찔러봤다. '먹는 것은 모르겠고 살 맛은 난다'고 어깨를 툭 친다.

책이 설 자리를 잠식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애써 '종이책'으로 공동체를 회복하겠다고 나선 것만도 놀랄 일이지만 지금까지 꺼낸 결과물은 더 놀랍다.

△'시골다운'정서의 회복

'책'이라고 어딘지 고리타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책마을해리에서는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읽고 경험하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할 언어를 만들어 쓴다. 기증받아 채운 책만 17만권이 넘는다. 밑밥이다. 관계라는 것을 만들고 소통을 하는 방법을 책에서 찾는다. 뭔가 하고 싶으면 방법을 찾고, 묻고, 궁리하고 해낸다. 마을 안에서 그렇게들 살아왔다. "시골다운 정서 회복의 열쇠로 책을 택했다. 지역에서 사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면 소멸 시기를 늦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이 촌장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반적으로 '책마을'하면 책이 있고, 또 그 책을 읽거나 파는 '소비'의 성격이 강하지만 이 곳은 '생산'에 무게 중심이 가 있다.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를 빛나게 하는 언어를 생산하는 인큐베이팅 공간에는 쉬지 않고 학교가 선다. 시인학교, 만화학교, 그림책학교, 서평학교, 생태학교, 책학교, 책영화학교, 건축학교 등등 다양하다. 초등학교 문을 닫고 다시 열지 못했을 만큼 아이들이 없는 마을이지만 학교는 늘 만원이다. 고창군 초·중·고등학생들은 물론이고 주말이나 방학 프로그램에는 한 참 떨어진 도시 아이들까지 대기표를 받는다.

책마을해리를 중심으로 이웃한 성산마을과 월봉마을에는 30여 가구 정도가 산다. 70~80대가 대부분이고 60대 이장이 가장 젊다. 중간 지역인 책마을해리에서는 너도 나도 학생이다. 월봉마을 아짐과 할매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은 '밭 매다 딴짓거리'다.

학교라고 하지만 계약서부터 쓴다. 마지막 '책'을 펴내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마을학교를 통해 지금까지 출판된 책은 이미 90권이 넘는다. 지난 5월 고창군이 전국단위 지역출판축제를 열 수 있었던 배후에 책마을해리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잘 만들어서 지역 살리는'

문화콘텐츠에 꼭 '잘 팔리는'이란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책마을해리는 거침없이 "무슨 소리?"하고 반문한다. 이내 '잘 만들어서 지역을 살리는'이라고 고쳐 적는다. 도시재생, 공동체 회복에 있어 경제 원리는 맞지 않는 옷, 어울리지 않는 장신구와 같다. 지역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마을이라는 이름의 유기체에 생명력과 지속력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책마을해리는 말한다.
이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읽고 하고 쓰고 펴내는 과정은 씨앗을 뿌려 키우고 수확해 다시 심는 것과 같아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 곳에서는 그래서 책을 짓는다. 농사를 짓듯 책을 공동을 생산해낸다.

이 대표가 우리나라의 12번째 아쇼카 펠로(새로운 아이디어로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낸 이)로 선정된 이유도 바로 이런 생각에 있다. 아쇼카는 사회혁신기업가들을 돕기 위해 만든 글로벌 비영리 조직이다. 이 대표를 낙점하며 아쇼카는 "보통 지역재생이라고 하면 관광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차원의 개발에 그치면서 그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은 소외되곤 했다. 책을 통해 지역 공동화 문제를 해결한 것은 책마을해리가 처음이다. 지역주민들이 문화의 생산자가 되도록 접근한 방식도 그렇다"는 선정 이유를 밝혔다.

'책마을해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공간의 쓰임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버들눈도서관과 누리책방, 책마을갤러리, 꿀밤나무, 책감옥 등등 어디서나 책을 접할 수 있다. 좀 더 뭔가를 생각하고 있지만 금방 들통날 '영업비밀'이라 일단 접어두기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학교 참가자뿐만 아니라 지자체, 도서관, 도시재생 관계자 등 벤치마킹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책마을해리가 기획한 마을교육공동체 프로그램도 꽤 많이 뿌리내렸다. 물론 마을을 운영하기 위한 공모사업도 꾸준히 이행하고 있다. 건강한 땅은 부지런함과 진심을 읽고 풍성한 결과물을 내준다. 책마을해리 역시 건강한 꿈을 꾸고 있다.

취재팀=고미 경제국 부국장, 이은지 정치부 기자, 우종희 교육문화체육부 기자

고 미·이은지·우종희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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