馟(도)·栖(서)·關(관)프로젝트 / 도서관, 마을 삶의 중심이 되다 <10>서울시 돈의문박물관마을

‘지역 적응·삶 재설계’과제…‘머물고 싶은’해법 접근

근린공원에서 지붕없는 박물관, ‘유령마을’오명 벗기 고심

쓸모를 채우는 대신 쓸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구 활용

 

 

 

언제부턴가 예능프로그램에 ‘시골’이 대세다. ‘살아본다’에서 ‘살아보니’로 진화도 했다. 도시 청년들의 지방살이를 지원하는 ‘청년마을’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도시 청년을 인구 유출로 고민하는 지방 소도시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공감은 하지만 현실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역에 적응하고 삶을 재설계’하는 일이 한 두달 살이로 가능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마을에 살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가 더 기분좋게 들리는 이유다.

 

 

△ 정말 여기 사는 것이 괜찮아?

인구절벽 위기감이 높아지며 ‘청년마을’사업에 탄력이 붙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청년들이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목포 '괜찮아 마을'의 후속으로 ‘삶기술학교’운영 계획을 밝혔다.

전남 목포에 이어 충남 서천 한산면이 대상지로 낙점됐다. 빈집과 오래된 대장간 같은 버려진 공간을 학교 부지로 제공하고 공모로 선정한 청년기업이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교육비(9억원)와 지역정착 경비는 국고로 지원한다.

잘 짜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아쉽다. 앞서 진행한 ‘괜찮아 마을’의 성적표는 53점이다. 지방 생활을 희망한 청년 60명이 나름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6주 후 32명만 남았다. 이들 역시 지역주도형 일자리와는 상관없는 ‘사장님’을 택했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낙관적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쉬움이 큰 결과다. ‘몇 명이 남았는가’가 답은 아니라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남은 이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는 누구도 답을 하기 어렵다.

△새문안동네→과외방·식당→기억보관소

지역 동력 역할을 할 ‘청년’에 대한 갈증 해소까지는 아니지만 지역 내 유휴공간 활용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또 있다. 서울 ‘돈의문 박물관마을’도 그 중 하나다. 행정구역상 또는 뜻 맞는 이들이 모여, 아니면 특별한 콘텐츠로 연결한 등 여러 형태의 마을이 있지만 이 곳은 마을인 동시에 지붕없는 박물관 컨셉트를 취하고 있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큰 문, 서대문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1396년 세워졌지만 1413년 경복궁의 지맥을 해친다는 이유로 폐쇄됐다가 1422년 현재 정동 사거리에 새롭게 조성됐다. 이때 붙은 새문(新門)이라는 별칭을 따 돈의문 안쪽 동네를 새문안골·새문안 동네로 불렀다. 그리고 1915년 일제 강점기 돈의문은 도로확장의 이유로 철거된다.

 

이후 사정은 근·현대사 흐름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주변에 서울고와 경기고, 경기여고 등 명문학교가 있다보니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가정집을 개조한 과외방이 성행했다. 1970년대 이후 명문고들이 강남으로 옮겨간 뒤에는 고층빌딩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업체를 따라 식당도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는 60여개 식당이 성업을 하던 식당골목으로 제법 명성이 높았다. 2003년 인근 종로구 교남동 일대와 더불어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된 이후 크게 몸살도 앓았다. 당초 기부체납 형식으로 확보한 건물을 전면 철거해 근린공원을 조성하려던 계획이었지만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후 장소성을 감안해 보존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며 구조보강 등 재생 작업이 진행됐다.

2017년 도시건축비엔날레 일환으로 작가 창작공간 임대 등의 방식으로 문을 열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개관 당시 반짝 관심이 시들해지며 건물만 있고 사람은 없는 '유령마을'로 전락했다.

서울시는 마을 활용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 방향을 수정했다. 기존 건축 관련 부서에서 문화 관련 부서로 관리 주체를 조정했다. 관련 부서 10여곳이 모여 치열하게 논의한 결과다. 박물관마을팀도 만들었다.

△‘참여형’실험은 진행중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로서 새문안 동네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마을의 삶과 기억이 보존한 역사문화자산으로 새 기능을 열었다.

마을이지만 사람이 살지는 않는다. 대신 일 년 내내 전시, 공연, 마켓, 일일 체험교육 등이 열리는 참여형 공간으로 사람들이 오고 간다. 지난 4월 재개관한 이후 5~6월 두 달 동안 총 11만1000명이 방문했다. 7월 부터는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 주제로 진행한 시민참여 공모사업을 통해 선정한 13개 문화행사를 풀어놨다. 쉴 틈이 없다.

마을 조성에는 예산 340억원, 새 단장에는 추가로 25억원이 투입됐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레트로(복고) 감성에 맞아 떨어지는 분위기가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유도하고 있다. 1931년 지어진 유한양행 사옥 등이 역사성을 담당한다. 영화 '고교얄개' '맨발의 청춘' '고래사냥'의 포스터를 붙여 놓은 '새문안극장'에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고전 영화를 무료로 상영한다.

‘박물관 마을’에만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아니다. 홍우석 서울시 문화정책과 돈의문박물관마을팀장은 “인근 주민들이 산책하러 나오는 일도 흔해지고 마을 주변에 젊은 상권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도시에서 ‘마을’의 역할은 다양하다. 정서나 문화적 공감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은 유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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