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회적 경제와 함께하는 JDC 7. 제주시 일도2동 신산머루 촐래고팡

높고 낮은 골목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제주 원도심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제주시 일도2동 신산머루는 지은 지 40년이 넘은 노후주택들로 모인 한적한 동네다. 그 고유의 분위기는 사색에 빠질 만큼 포근함을 주지만 시설이 낙후돼 있어 지역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안타까움이 있다. 흩어진 주민들을 다시 모으고 활기가 넘치는 소통의 장을 바랐던 사람들은 신산머루를 재생시키자는 이념 하에 남녀노소가 똘똘 뭉쳐 '촐래고팡'이라는 마을기업을 탄생시켰다. 도시재생 마을공동체사업으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지원을 받은 신산머루 촐래고팡은 정이 가득한 나눔의 문화로 지역 활성화를 실현하며 신산머루의 자랑으로 굳건히 자리 잡는 중이다.

△곱들락한 신산머루 만들기

도시재생뉴딜 로드맵에 따라 제주에서 5곳의 마을이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시 일도2동 신산머루 지역은 주거재생형 우리동네살리기 유형으로 국토교통부의 인가를 받은 마을관리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첫걸음을 했다.

그들은 재개발이 아니라 기존 원도심의 정취를 살리며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자는 취지로 '곱들락한('곱다랗다'의 제주어) 신산머루 만들기'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신산머루 사회적 협동조합의 첫 사업인 '신산머루 촐래고팡'이 JDC 마을공동체 사업 16호점으로 선정돼 지난 7월 30일 개점했다. 촐래는 반찬, 고팡은 제주 전통 가옥의 식자재 창고를 말하는 제주어다. 촐래고팡은 의미 그대로 지역주민들이 직접 만든 도시락과 반찬을 판매하고 케이터링하는 반찬가게다.

신산머루 주민들로 이루어진 직원들은 동네 부엌 쉐프 전문가 교육 과정을 거쳤다. 갈고닦은 솜씨로 잘 차린 '집밥 같은 한정식 뷔페'를 꾸려 남녀노소 모두에게 푸짐한 나눔을 실천한다.

촐래고팡 입구 옆의 빨간 대문을 넘어 계단을 오르면 편안히 쉬어 갈 수 있는 집 한 채가 있다. 근처 일도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돌봄 사업을 위한 공간이다.

신산머루 지역에 놀이터나 학원 등의 시설이 없어 아이들은 방과 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촐래고팡 2층에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돌봄 교사를 배치한 건 아이들이 맛난 음식을 먹으며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난 9월부터 신산머루지구 내 노후주택 집수리 사업도 시작했다. 40년이 넘은 낡은 집들은 가스 배관과 지붕 등이 노후해 위험하고, 정리되지 않은 전선들이 마을 미관을 해쳐 관리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지역주민들은 주민역량 강화 교육에 참여해 방수 페인트 작업, 배관 정비, 보수 기술 등을 배워 '집수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일도초등학교 주변 담벼락에 예쁜 벽화를 그리기도 한다.

올해는 23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내년에 나머지 100여 가구를 순차적으로 추진해나갈 예정이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는 무상으로 수리를 한다는 것도 선한 사업의 증거다.

△생기있는 마을 위한 구심점 역할

촐래고팡은 마을주민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일자리 창출 등의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결과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로 신산머루에 활력을 불어넣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신산머루가 주민주도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모범 사례가 되는 건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주도적인 움직임을 보인 주민들 덕분이다.

주민화합을 이끄는 촐래고팡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로 아우른다. 중장년층의 대부분은 주부 경력으로 노하우가 풍부해 주방에서 노련한 솜씨를 뽐내고 청년층은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뽑아내면서 청년카페를 동시에 운영한다.

특히 올해 77세 김순녀 씨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그는 식당 운영 경력이 30년이 넘어 촐래고팡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직원 모두가 "내가 사장이다"라는 마인드로 움직이는 점 또한 촐래고팡의 큰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충분조건이다.

신산머루 도시재생사업은 총사업비 83억원(국비 50억+지방비 35억)을 지원받아 지난 2017년부터 내년까지 3년간 진행한다. JDC는 사업비 1억원을 지원하고 다양한 분야의 주민역량강화교육을 진행해 주민들의 참여와 교류의 기회를 제공했다.

행정과 JDC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촐래고팡은 앞으로 마을 커뮤니티센터 공간 설계도 진행할 계획이다. 제주폐가살리기 사회적 협동조합과 신산머루 현장지원센터 간 업무협약을 맺어 '도시재생 마을 공용공간 설계 워크숍'을 개최한 바 있으며 주민들의 의견을 설계에 반영하고 있다.

한희랑 신산머루 촐래고팡 팀장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편히 오갈 수 있는 점이 촐래고팡의 장점입니다"

한희랑 신산머루 촐래고팡 팀장은 나눔의 정과 편한 소통을 거듭 강조했다.

한 팀장은 "촐래고팡을 시작할 때 주민들을 위한 '평상'의 모습을 생각했다"며 "사람들이 편히 오고 가는 소통의 장소가 촐래고팡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촐래고팡은 경사진 언덕 중간에 위치해 있어 누구든 지나가다 식혜라도 한잔 마시고 가는 쉼터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반찬 나눔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곳이 촐래고팡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위한 간식, 어르신들을 위한 죽 등 좋은 반찬들을 채워 넣고 편하게 이용하는 나눔냉장고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촐래고팡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맛 좋은 반찬과 나눔 실천에 대해 한 팀장은 "우리는 이틀에 한 번씩 장을 보고 싱싱한 재료들로만 그때그때 만들어 집밥을 재현한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객 120인분의 주문이 들어왔을 때 새벽 5시부터 준비했다"며 "제주에서 나는 재료로 빙떡 등의 제주 음식을 선보이자 반응이 정말 좋았다"고 전했다.

덧붙여 "평소 인기 음식은 촐래고팡의 메인메뉴인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라며 "특히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간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지역주민에 보탬이 되는 마을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촐래고팡의 목표는 신산머루를 더 활성화해 많은 관광객을 유입하고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제주도 하면 촐래고팡이 생각나도록 앞으로도 끊임없이 촐래고팡 운영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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