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소포클레스 「안티고네의 윤리」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공황 상태라 할 정도의 정신적 혼돈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간신히 지탱해주던 '정의' '도덕' '윤리' 같은 중요한 정신적 덕목들이 극도의 아노미 현상에 빠지게 된 것이다. 우리의 가슴 속에 진정한 윤리와 도덕의 마음이 존재하고 있는가.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사고와 행위가 타자의 힘, 이를테면 정치적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의적으로 쉽게 변질되거나 무화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하여 대체적인 긍정과 공감의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신뢰 없이는 진정한 사회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고통스럽고 혼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혼동하지 않는 기본적 가치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과 규율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우러나온다. 그렇다는 것은 건전한 사회란 기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사회에 대한 일정한 상호 믿음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자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정하면서 누구에게나 동일한 가치의 공유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윤리가 생겨난다. 

안티고네의 윤리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윤리의 문제를 핵심적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비극 작품이다. 테베라는 도시국가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끔찍한 운명을 깨달은 뒤 사라지자 외숙이며 처남인 크레온이 왕위에 올랐다.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은 성장한 뒤 왕좌를 되찾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전쟁은 크레온의 승리로 끝났다. 크레온은 형제의 주검을 매장하지 못하게 명령한다. 대역죄인을 용서하지 않고 사후에도 엄벌에 처해야 국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외동딸 안티고네는 왕명을 어기고 우여곡절 끝에 오라비의 장례식을 치른다. 그녀는 감옥에 갇혔다가 결국 자살한다. 크레온은 잔혹한 독재자였고, 안티고네는 인간적 윤리를 지키려다가 희생된 성녀(聖女)로 해석되거나 권력에 맞선 저항의 화신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오빠의 시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안티고네의 윤리적 투쟁은 눈물겨울 정도이다. 그녀의 행동은 자신의 개인적 이해득실과 무관하고, 그 행동 원리에는 보편적 인간애와 공감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야말로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하는 사심 없는 그녀의 선택은 윤리적 정당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안티고네는 단순히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나 욕망보다는 보편적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윤리적인 삶

동물은 본능에 따라 기계적 반사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윤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삶 전체를 새로운 인식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동물적 삶과 다를 바가 없다. 오로지 자신에 대한 의무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은 독선적이며 이기적이다. 타자와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이 아무리 세속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것일 수는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나란 주체를 위한 윤리도 아닐뿐더러 타자를 위한 윤리도 될 수 없다. 공동의 관계를 외면하면서 오직 자신만을 수립하고자 하는 것은 허구적 공동선에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윤리란, 한 인간이 얼마나 양심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다가 죽느냐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안티고네와 같이 윤리적인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일생동안 부끄럽지 않은 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와 같다. 우리 모두는 얼마나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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