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를 향유하다 5. '페칼롱간의 인도네시아 바틱 무형문화유산 교육과 훈련'

다양성·지속가능성 전제한 무형유산 보호 주목
등재 과정 인근국가 갈등을 국민 집결 동기로
정규·비정규 교육 접목 시도 모범사례로 극대화

문화 다양성과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무형유산 보호의 핵심은 공동체에 있다.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지 올해로 3년이 됐지만 아직까지 해녀는 고령화와 개체 감소로 인한 소멸 위기 대상 1순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녀공동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하고 간직해온 산물의 의미는 아직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모범사례에 주목하는 이유다.

△너도 나도 '바틱'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는 매주 금요일 '바틱 데이'를 운영한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일반 직장에서도 이날 하루는 바틱을 근무복으로 입는다. 물론 자율이다. '원하는 대로'를 전제로 했지만 '전통'을 입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2년차 회사원인 루마티씨(여·23)는 "디자인이나 문양이 다른 바틱을 4벌 정도 가지고 있다"며 "너나 할 것 없이 입고 있어서 부담이 없다"고 귀띔했다.

인도네사이의 바틱 예술은 오랜 세월 지역 공동체의 자연과 문화, 역사, 사회적 지위 등을 상징하며 전승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10월 2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등재 이후 여러 박물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바틱 예술의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지면서 '모범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바틱 예술은 단순한 수공예 차원을 넘어 발전해 왔다. 공인들은 전통 직물을 우선적 재료로 활용할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의상의 전면에 전통 직물을 내세우고 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바틱 산업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번영기를 누렸지만 1980년대 이후 비실용적이고 구세대적이라는 인식과 함께 쇠퇴하기 시작했다. 직물산업 발달 역시 바틱에는 위협적이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과정은 제주해녀문화와 비슷했다. 인근 말레이시아와 바틱 소유권 갈등을 빚었고 결국 인도네시아가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그 과정이 인도네시아 국민의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다.

이른바 '바틱 내셔널리즘'이 일어났다. 바틱 내셔널리즘은 말레이시아 정부에 대한 공식·비공식 항의, 말레이시아의 행동을 비방하는 글을 신문 사설란에 싣는 것, 각종 행사에 바틱 착용을 권장하는 것, 바틱의 날 제정, 바틱과 관련된 세미나 및 문화행사 등을 포함한다.

△'수공'에 대한 인정

한 나라의 문화를 바꿨다고 하지만 바틱은 전통 방식으로 손으로 작업하는 직물공예다. 수백 년 전 서민들의 예술적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창조된 이 독창적이고 정교한 예술은 삶의 철학을 담은 상징물과 문자들을 직물에 채색함으로써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하고 있다.

직물 가치 외에도 신의 중재와 보호를 청하는 의식에 필수적인 요소로 인도네시아인의 정신을 상징한다. 전통 직물의 정신적, 제의적 중요성은 그 신비성과 화려함에 반영되어 있다. 정교하고 복잡한 문양으로 뛰어난 전통 직물 기술을 통해 문직과 염색, 방직, 장식, 수예 등 바틱 공예의 수준을 엿 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액체 밀랍으로 채운 '칸팅(canting)'이라는 그림도구로 천 위에 문양을 그리는 방식으로 직조한다. 밀랍이 굳어 염료에 담기면, 밀랍은 천 위에 칠해진 부분이 염색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최상급 바틱은 직물 양면의 대칭적인 위치에 밀랍을 도포하여 제작한다. 방염이 필요한 부분에 밀랍을 바르는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하여 의도한 특정한 무늬를 만들어 낸다. 밀랍으로 모티프를 그리는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이 요구된다.

19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복잡한 공정을 단축하기 위해 밀랍 도장이 고안됐다. 지금은 공장형으로 대량 생산하는 곳도 있지만 수공예품의 가치를 월등히 친다.

이런 분위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계승자·감상자 양성

현대사회에서 무형문화유산의 지속가능성은 현재와 미래세대로의 전승에 달려있다. 이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전승의 목적은 무형문화유산의 계승자와 감상자를 양성하는 것인데, 이들이 없다면 무형문화유산은 점차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봤다.

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다른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무형문화유산을 어떻게 현재의 연행자로부터 젊은 세대로 전승할 수 있는가를 걱정한다. 무형문화유산협약은 각 국가가 무형문화유산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진흥하기 위한 노력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일반 대중, 특히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이나 관련 공동체나 단체에서 특정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에 기반을 둔 지식이나 문화는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지도 못한 채 교육과정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

'무형문화유산과 접촉 기회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공동체 내에서 전승되던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미래 세대가 무형문화유산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는 고민 끝에 전통 전승방법에 의지하는 것에서 벗어나 무형문화유산 교육을 정규교육에 편입시켜 새로운 전승의 장을 만드는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전세계적으로도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학교교육과정에 무형문화유산 현장 견학을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페칼롱간의 인도네시아 바틱 무형문화유산 교육과 훈련'은 전통의 전승 방식을 보완·강화하기 위해 정규교육과 비정규교육을 통합한 사례로 일찍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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