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세계의 일상성」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서 오랫동안 집안에 갇혀 지내던 사람들의 인내가 한계에 이른 듯하다. 아직 지구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기저기에서 철없는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유혹하는지라 사람들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거리로 뛰쳐나온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얻은 것

세상은 아우성치지만 아랑곳없이 봄은 찬란하다. 꽃은 제가 피어날 시기를 어찌 저리 기막히게 아는지 철쭉이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이팝나무가 눈꽃처럼 봄바람에 흩날린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감사해야 할 대상 중 으뜸은 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이 아닐까 싶다.
질병이 아직 완전히 물러가지 못한 마당에 봄타령 꽃타령이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꽃놀이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는 일상의 시간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불편한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것에서부터 그동안 우리가 겪은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나마 우리가 거둔 수확 중의 하나는 일상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은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아침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아웅다웅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식사 때가 되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원하는 곳을 언제든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일상들은 우리가 지겨워하고 힘들어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일들이다. 이런 작은 일상이 모여 나의 전체 삶이 이루어진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상은 정말 보잘것없는 일로 가득하다. 지루한 임무, 복잡한 인간관계, 해결되지 않는 욕망과 억압, 이런 것이 일상성의 비참함이다. 그러나 일상에는 비참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창의성과 기쁨과 쾌락도 들어 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것은 지루한 일상적 하루 중에서였고,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이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 것도 힘들고 고달픈 일상 속에서였다. 

일상의 소중함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에 의하면, 일상에 빠져든다는 것은 추락도 봉쇄도 장애도 아니며, 삶의 터전인 동시에 단계이며 도약대이다. 일상은 욕구·노동·생산을 하면서 삶의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일상이 위대한 이유는 그 완강한 지속성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 지속하는 한, 일상은 땅에 뿌리박고 계속된다. 일상에서 탈출하여 여행을 다녀와도,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축제를 벌여도, 그들이 끝나면 다시 일상은 집요하게 계속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이 일상적이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비일상적이라고 생각해 보라. 지난 얼마 동안 체험했듯이, 가고자 하는 곳을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가.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은 바깥세상에서 마음껏 다니면서 일상적 자유를 누리는 건강한 사람을 가장 부러워한다. 사형수는 죽기 전에 단 하루 동안이라도 일상의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상이 우리에게 주는 이런 자유와 행복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그동안 우리는 일상의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고귀함을 다시 한번 깊게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모두 하루빨리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와 밝고 건강한 생활이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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