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장 그르니에 「섬」

바다는 텅 비어 있다. 빈 바다에는 점점이 섬이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텅빈 공(空)에 대해 생각하고 충만한 영원의 섬을 꿈꾼다. 제주 섬에서 또 다른 섬, 마라도·비양도·가파도·우도·이어도를 바라본다. 

제주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죽음의 섬이면서 꿈에도 그리는 구원의 섬이기도 했다. 이어도는 이 지상에서의 모든 고통도, 인생의 덧없음도, 가신님에 대한 그리움도 없는 사랑과 행복과 축복이 넘쳐나는 피안(彼岸)의 섬이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이어도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섬을 꿈꾸는 것일까. 바다 가까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꿈이며 희망이다. 또한 좌절이며 절망이기도 하다.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 가득하다가 텅비는 바다, 그곳에서는 다 껴안을 수 없을 만큼 유한과 무한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얼마나 엄청난 공허이며 충만인가! 섬, 파도, 개펄, 물…. 참으로 많은 것이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철학가인 장 그르니에는 「섬」에서 바다를 인생과 같다고 말한다.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없을 만큼 구질구질하고 치사스럽다. 삶에서는 언제나 자신을 지켜내어야 하고, '이것'과 '저것'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고, 빼앗기고 빼앗는 연속이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잘 알지만, 세상에 일단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그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한다. 온갖 욕망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만 텅빈 바다와 섬을 바라보는 때는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공(空)의 시선이 나를 뜀박질로 저 멀리 인도하여 껑충껑충 바다로 뛰어들게 한다. 말없이 바다의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과 나쁜 마음은 사라지고 만다. 

사람은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여행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데 성공하고 세상과 함께 배를 타고 어딘가로 멀리 나아간다. 그때의 '자기 인식'이란 반드시 여행의 종착역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바라보는 나와 세상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질 때 여행은 완성된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다로 나아가고자 하고 하늘로 날아가고자 한다. 신화 속 이카루스처럼 인간은 자유의 날개를 펼치고 낡은 이 땅을 떠나 새로운 시작의 땅으로 달아나고자 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 세상을 알고자 하는 것은 '꿈꾸는 자'의 행복이다. 아득한 섬을 바라보면서 '지금, 여기에서'의 고통과 슬픔을 다 버리고, '다음, 저기에서'의 행복을 꿈꾼다. 일상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우리가 찾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과 꿈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바다와 섬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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