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가 밀물이거나/돌아서 썰물일 때도//항상 그 깊이/그 높이로 노래했거늘//그대를/가슴에 넣으면/현악기로 떠는 바다//파도야 네가 언제/내 가슴을 친다 했나//모랫벌 깊이 묻은/상처까지 붉게 덧나//하루를/부둥켜안고/타악기로 우는 바다”

10년을 묵혀온 시인의 시심(詩心)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92년 시집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 이후 꼭 10년만이다. 「가슴에 닿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에는 긴 세월의 간극을 메우는 시의 울림이 들어있다.

4음보의 전통적 운율 속에 실어보내는 고성기 시인의 시편에는 그리움과 회한, 중년의 반성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연대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달리가 찾아든 집 안, 그 팍팍한 시정의 살림살이 속에서도 시인의 시심은 직접적인 분노 보다 애써 갈무리한 회한의 정조에 닿아 있다.

“술병 들고 찾아온 정/안주삼아 찍은 인감//덧날까 묻어두고/유물처럼 잊었는데//집달리/빨간 딱지로/종기 되어 솟는다//믿는 죄값 그 형벌은/연좌제로 곪는 것일까//막내까지 화들짝 놀라/터지는 불신의 늪//빨간 불/건널까 말까/교차로에 선 병신”(‘연대보증’전문)

대천동 조그만 농장에 제주 토종 감나무를 심어 놓고 있다는 시인. 50이 넘은 나이에도 시인은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의 끝을 좇고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사랑의 감성을 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랑한다는 편지를 채 보내지 못하고 끝내 책상 서랍에 숨겨놓거나(‘못보낸 편지’) 그리움의 대상 옆에서 강물로 흐르고 싶어하는(‘오늘은 강물로 흐르겠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웅숭한 세월의 깊이 속에서 곰삭고 있다.

섬과 고독을 고질병처럼 간직한 채 풀어놓는 시인의 시심은 4음보의 또 다른 시의 섬 속에서 끊임없이 곱게 흔들리고 있다.

일상의 소소함도 놓치지 않으려는 시인의 모습은 그의 시편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모두 7부로 묶인 시편의 서두를 장식한 시작메모에서 보다 세밀하게 관찰된다.

시작메모를 일독하고 시인의 시편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시인의 감성을 읽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터. 시집 말미에 수록한 제주민요풀이는 맛깔스런 제주말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한다. 북하우스.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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