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를 향유하다 15. 유산 관리 방안과 방향②
업무·운영 평가 기준 과 통·폐합 검토에 해녀 조직 반발
'유산적 접근 한계'노출 지적…'살아있는 사례' 제공 주목
바틱…일상화 통한 정체성·지속성·사회 포용성 성과 획득
지난 6월 제주 해녀들이 바다가 아닌 제주도청 앞에 모였다. 성난 목소리로 "뭘 하겠다는 건지 말 좀해달라"고 했다. ㈔제주도어촌계장연합회 주도라기는 했지만 생업에 치여 좀처럼 자리를 같이 하기 힘든 해녀들이 시간을 쪼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해녀를 뭘로 보고
제주도는 조직개편을 검토하며 해양산업과와 해녀문화유산과를 해양해녀문화과로 통합하는 안을 내놨다. 업무 영역이나 사업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를 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해녀들의 생각은 달랐다.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제주해녀문화'가 등재됐고 이듬해 전담 부서를 만들면서 제주해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불과 3년 만에 축소통합하는 것은 제주도의 정책 의지를 되묻게 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론적으로 '없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하는 큰 과제를 남겼다. 행정이나 정책 기준으로 해녀와 해녀문화 관리와 유산적 접근은 성에 차기 힘들다. 일반 정책사업처럼 성과를 수치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효과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더 어렵다. 해녀 수를 세는 것도, 해녀 축제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검토하는 것도 답이 아니라는 점이 고민을 키운다.
일방적 기준을 적용하기 보다 무형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과 파급 효과를 긴 호흡으로 살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무형'에서 뿌리내린 현재
무형문화유산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대한 살아있는 사례들을 제공한다. 공동체들은 끊임없이 특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그들의 지식, 삶의 기술과 능력을 체계화하고 미래 세대에 전승하려는 방법을 찾아 왔다.
'해녀학'이란 영역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도 이런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시작부터 따지자면 우주론과 물리학에서부터 의료와 자연 자원에 대한 지속가능한 이용,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갈등과 긴장 해결, 사회 속에서 자아 및 타인의 위치를 이해하고, 집단 기억의 생성과 축적, 건축부터 재료공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문과 지식영역은 무형문화유산에서 뿌리내렸다.
해녀문화에 있어 '전승·보전' 이상을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본적으로 해녀들이 물질을 배우는 것은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다. 바다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단계별로 밟아야 하는 과정 보다 습득에 가깝다. 전통 방식이 지닌 잠재력은 성적이나 성과에 집중하는 현대 사회의 속도를 조절하는 제어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무형문화유산은 사회응집과 포용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적 관습, 의식, 축제들은 공동체와 집단의 삶을 구성하며, 포용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사회적 연결을 강화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앞서 사례 조사를 했던 '페칼롱간의 인도네시아 바틱 무형문화유산 교육과 훈련'은 지역 주민을 비롯해 전 국민에게 정체성과 과거로부터의 지속성을 가지게 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강화시키는 공동의 유산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바틱을 학교 교육에 접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공유한다.
△ 공동체 문화에 스며들다
지역·국민성 상징 활용한예를 들어 '바틱 데이'가 있다. 바틱은 천연 밀랍을 방염제로 사용하는 왁스(wax)의 저항력을 이용한 납염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러한 납염 방식은 인도네시아에서만 발견되는 문화는 아니다. 아프리카, 중국,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유사한 납염 방식으로 직물을 제작하는 문화가 내려오고 있다. 특별히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 종교 등이 유사한 말레이시아와 바틱 원조국 논란은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네시아의 바틱을 꼽는 이유는 일상화에 있다.
해녀와 마찬가지로 바틱 역시 원조국 논쟁을 겪었다. 2007년 말레이시아 정부의 관광 홍보물로 본격 점화됐다. 당시 말레이시아가 '진짜 아시아(Truly Asia)'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광 홍보를 하면서 바틱을 꺼냈고, 인도네시아는 대응 전략으로 자국이 바틱 원조국임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오랜 논쟁 끝에 유네스코는 인도네시아 손을 들어주었다. 바틱은 2009년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당시 수실로 밤방 유도유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2009년 10월 2일 모든 국민이 바틱 옷을 입도록 요청하면서 이날은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축제의 날이 됐다.
인도네시아 바틱은 전통과 일상, 현대를 조화시키는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았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전통의상을 입는다. 바틱 천으로 셔츠, 블라우스, 원피스, 얇은 자켓 등의 다양한 형태의 옷을 만들기 때문에 일상생활 옷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바틱 데이에는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바틱을 입고 출근한다. 승리의 기쁨과 전통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보태지며 바틱 데이는 인도네시아의 문화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지역에 따라 금요일이 아닌 목요일, 아니면 매주 또는 매월 1일을 바틱데이로 운영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바틱데이나 공식행사에서 바틱을 입는 것은 인도네시아 인을 배려하는 마음과 바틱 옷이 주는 편안함을 이해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사회적 관습들은 관습을 행하는 이들에게 공통된 정체성을 심어줘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의 사회적 포용성을 강화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