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 주는 남자] 이반 일리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어린 시절,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자전거였다.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귀중한 물건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아이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씽씽 달려가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신이 난다.
그렇지만 요즘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볼일을 보러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이제 우리는 집 밖을 나서는 즉시 자동차를 타지 않고는 한 걸음도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 겨우 몇 킬로미터를 가는 데도 차를 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자력 이동능력을 퇴화하고, 기계에 얽매이는 모든 일에서 그렇듯이 자동차에 인간의 에너지를 예속화시켜 노예화되고 말았다.
서가에서 책을 찾다가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가 눈에 들어온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니?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책을 뒤적여 본다. 책의 원래 제목은 '에너지와 공정성'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에너지의 위기와 교통의 산업화, 수송산업의 근본적 독점, 가속의 비효율성을 이야기하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인간의 이동능력에 대한 '근본적 독점'이며, 공정하지 못한 에너지 낭비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탈산업적 효율성을 가지고 일상의 활동반경을 늘리면서 자유와 공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는 사회에서는 공동체적 선택과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자전거를 버리고 모두 자동차를 타는 것은 무엇보다 속도에 대한 유혹 때문이다. 실로 현대적 삶은 속도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속도는 중요하다. 최근 에는 기존보다 열배나 더 빨라진 5G 이동통신이 나왔으며, 다운을 받아야 볼 수 있었던 영화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매사에 빠른 속도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특히 산업적으로 상품화된 에너지는 사회 환경을 퇴화하고 탈진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제주에 많은 관광객과 이주민이 오는 것을 장려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제주 고유의 자연환경과 미풍양속이 훼손되고 쓰레기와 하수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에너지 위기란 에너지를 더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이반 일리치는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탄소 없는 섬을 만들기 위해 태양광, 풍력, 전기자동차 등 신재생에너지원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모 자체를 줄이는 일이다. 사람들의 무한한 욕망을 억제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많은 신재생에너지원을 만들어도 그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책을 읽다가 창고에 있는 자전거가 떠올랐다. 타이어만 고치면 금세 탈 수 있는 멀쩡한 자전거다. 그동안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전거이지만, 이제 곧 행복을 가져올 자전거가 되어 파란 신호등을 기다릴 것이다.


